2024. 07. 28. 일요일
날씨 : 아름다운 하늘. 시원함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 하늘이 바뀌지 않았으면 함.
오늘 친구가 오후 2시쯤 교토역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출발해서 오전에 관광지 한 군데만 더 방문하기로 했다. 함께 많이 놀지도 못한 것 같은데 어느새 친구의 귀국 날이 왔다. 아쉬움은 잠시 뒤로 미뤄둔 채 마지막까지 알차게 교토를 둘러보기 위해 빠르게 숙소를 나왔다. 친구는 짐을 다 정리한 뒤 아예 다시 숙소에 들르지 않을 생각으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친구와 함께 방문한 마지막 관광지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였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풍요, 상업, 안전 등을 관장하는 “이나리 신”을 모시는 신사로, 일본 각지에 있는 3만여 개의 이나리 신사들의 본부가 되는 곳이다. 이곳도 교토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이지만 작년 교토 여행 당시 방문해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매우 기대되었다. 친구가 교토에서의 마지막 날인 만큼 한 끼라도 더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여행 중 처음으로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다행히 숙소 근처의 고조 역에서 후시미 이나리 역까지 바로 갈 수 있는 지하철이 있어 신사에 금방 도착하였다. 후시미 이나리 역은 거의 두 줄 철도와 야외 승강장만 있는, 매우 작은 규모의 지하철 역이었지만 후시미 이나리 신사가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덕에 수많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였다. 역을 빠져나와 인파를 따라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 도착했다. 신사 입구에 코인 락커가 보여서 캐리어를 끌고 온 친구에게 캐리어를 맡기는 것을 제안했지만, 친구는 그 돈으로 차라리 생맥주를 사 마시겠다며 거절했다. 여러 큰 신사 건물들이 있는 신사의 입구 쪽 마당은 야사키 신사 등 일반적인 큰 신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토리이 길”이 다른 신사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토리이는 일본 신사의 입구에 세워져 있어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조형물로 신사 입구에 하나를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토리이 길은 신사의 입구 외에도 뒷마당 쪽에 수많은 토리이를 연속적으로 세워 통로와 같은 형태의 길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신사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이색적이고 신선했다. 다만 코인 락커에 캐리어를 맡기지 않고 들고 온 친구는 토리이 길을 보자마자 좌절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락커 값 절약을 향한 그의 마음이 그만큼 단호했던지, 혹은 다시 락커가 있는 입구 쪽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더 귀찮았던지 친구는 그냥 캐리어를 끌고 토리이 길을 다녔다. 토리이 길은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만큼 관광객들로 가득했지만, 가끔 사람이 적을 때 친구와 서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친구와 함께 방문한 마지막 관광지도 알차게 잘 즐기다 나온 것 같다.
신사를 나와서 바로 교토역으로 향했다. 고조 역에서 후시미 이나리 역까진 게이한 선을 타고 왔지만, 교토역까지는 나라 선을 타고 가야 해서 후시미 이나리 역이 아닌 근처의 이나리 역으로 향했다. 이나리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 두 명이 내게 이 역에서 게이한 선을 타는 것이 맞냐고 물었다. 아까 게이한 선을 타 보았기에, 두 명에게 영어로 게이한 선은 이 역이 아니라 근처의 후시미 이나리 역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별거 아니긴 했지만 설명을 해주고 나니, 문득 나도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일본 길을 알려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대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교토역으로 가서 친구의 간사이 공항 행 하루카 열차 티켓 수령을 함께 기다려 주었다. 처음엔 지하 2층 티켓 발권기에서 수령을 하려 했는데 문제가 생겼는지 QR코드가 인식이 되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 교토역 1층 로비에 있는 발권기에서 시도했더니 다행히 성공하였다. 일본의 대중교통 체계는 언제 봐도 상당히 복잡한 것 같다. 친구가 발권하는 것을 미리 본 덕에 여행 마지막 날 내 하루카 열차 티켓은 헤매지 않고 잘 수령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와 마지막으로 교토역 내 라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부터 다시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친구가 오기 전 열흘 가까이 혼자 잘 다녔었는데, 친구랑 잠깐 같이 여행하다가 다시 혼자 다녀야 한다 생각하니 괜히 더 외로워진 느낌이다.
혼자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밀린 빨래를 했다. 2시에서 3시 사이에 빨래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 지 세탁기가 모두 만석이었다.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겨우 빨래를 마치고 7시쯤 저녁 식사를 할 겸 카모강 산책을 하러 나왔다. 진짜 교토에서 별다른 일정이 없을 땐 그냥 카모강변만 걸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고조 다리부터 시조 다리까지 산책을 한 뒤 시조 거리 근처에 있는 일본식 카레 식당을 갔다. 저번에 시간이 애매해서 못 갔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타이밍이 좋아 대기 인원 없이 식사할 수 있었다. 일본식 카레와 서양식 카레가 살짝 합쳐진 듯한 카레였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항상 대기 인원이 있던 이유가 납득이 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산조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잔 마신 뒤 니조 다리 쪽 강변까지 올라가서 고조 다리 쪽 강변까지 다시 산책을 이어갔다. 산조 다리와 시조 다리 사이의 활기찬 분위기의 강변 외에도 비교적 조용한 니조 다리와 고조 다리 부근 강변 산책도 매력적이었다. 서울에서도 집 근처 잠실대교 부근부터 영동대교 부근의 한강 산책로를 즐겨 걷는데, 내가 만약 교토에 살았다면 거의 매일 카모강을 걷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이번 여행을 시작하며 유독 자주 듣는 일본 노래가 있는데, 바로 <베텔기우스>이다. 물론 일본어 실력이 출중하진 못해 들으면 실시간으로 가사가 해석되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밤산책할 때 특히 잘 어울린다. 게다가 카모강은 하늘이 탁 트여 있고 밝은 고층 건물이나 조명이 적어, 별이 나름 잘 보이기 때문에 노래의 감성을 한층 더 살려주는 듯하다. 이어폰으로 <베텔기우스>를 들으며 카모강을 산책하면 그보다 더 평화롭고 행복할 수가 없다.
비교적 시원한 저녁이었음에도 꽤나 오래 산책을 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땀이 많이 나 있었다.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니 피로가 금방 풀렸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