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 29. 월요일
날씨 : 어제보다 구름이 현저히 적고 쾌청함. 무덥지만 필요 이상으로 아름다운 하늘.
알람이 아침 9시에 맞추어져 있던 탓에 눈을 떴으나 평소보다 침대에서 더 게으름을 부렸다. 오늘은 왠지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날이라 오후까지는 숙소에 있고 늦은 오후부터 나가서 근처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일분일초가 소중한 해외여행에서 이런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행동이지만, 장기 여행에서만 가능한 일정이기에 이런 여유도 한 번 즐겨 보기로 하였다.
정오가 넘어서까지 시원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숙소 근처 나카우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지금까지 나카우에서 우나기동만 먹어 봐서 이번엔 다른 메뉴를 주문해 보았다. 닭고기 덮밥 같은 음식이었는데 오야코동처럼 계란이 풀어져 있진 않았다. 꽤나 맛있었다. 식사 후 바로 숙소에 돌아와 가장 더운 시간대가 끝날 때까지 다시 누워서 쉬었다. 하루종일 침대 위에 있으니 마치 서울에서 약속이 없는 날 집에서 쉬는 느낌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숙소가 집보다 더 시원하고 침대도 더 크고 푹신해서 훨씬 쾌적했다. 오후 4시가 넘어서까지 침대에 있다 보니 계속 누워있는 것도 심심하고 더위가 절정인 시간대도 끝나 간단히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집 앞 산책로처럼 익숙해진 카모강변을 따라 산조 거리까지 걸어갔다. 더위도 잠시 피할 겸 산조 스타벅스에 들러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일본어 책을 보았다. 내가 교토의 카모강, 그중에서도 산조에서 시조거리 사이의 구간을 특히 좋아하다 보니 그 구간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는 산조 스타벅스의 단골이 되어버린 것 같다. 잠시 앉아있었던 줄 알았는데 시간을 보니 어느새 6시 반이 되어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카페를 나오니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 중 교토에 있는 동안 단 하루도 카모강을 안 간 날이 없는데, 갈 때마다 항상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구름의 양과, 낮에서 저녁을 거쳐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활기 등 모든 상황에서 항상 가지 각색의 매력으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는 카모강이다. 오늘 내가 반한 풍경은 평소보다 맑아 낮은 부분에만 조금 떠 있는 약간의 구름에, 해 질 녘의 노을이 투영되어 옅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하늘과 강물, 그리고 평소보다 살짝 적은 사람들이 완벽하게 조화된 모습이었다. “교토의 평화로움” 그 자체를 명확히 묘사하는 광경에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쉬운 대로 연신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행문에 카모강의 아름다움을 진부하게 주장하는 나지만, 그 또한 카모강이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진부하게 아름다웠던” 탓이다. 카모강의 풍경, 그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교토에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아름다운 광경이 기행문을 쓰는 지금 이 밤에도 뇌리에 선명하다.
저녁 식사는 산조 거리의 마츠야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오늘은 여유를 가지기로 한 날인 만큼 유명한 맛집보다는, 현지인처럼 나카우나 마츠야 같은 일본의 저렴한 가정식 체인점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해보고 싶었다. 마츠야의 기본 규동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맛과 양이 저렴한 가격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괜찮아서 다른 비싼 맛집들의 입지가 걱정될 정도였다. 앞으로 남은 여행 기간 동안 괜히 비싼 식당들 보다는 체인점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조 거리 일대를 산책하다가 문득 첫 번째 숙소가 있는 거리 근처를 가 보고 싶어졌다. 무슨 집 이사한 뒤에 예전 집 찾아가 보고 싶은 것 같은 감성이 고작 1주일 전 머물렀던 숙소에 왜 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간은 많으니 찾아가 보았다. 첫 번째 숙소를 보니 괜히 반가웠다. 이번 여행 첫날 우여곡절 끝에 교토에 도착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갔었던 숙소 옆 이자카야도 보였다. 이왕 근처까지 간 김에 그 이자카야에도 들어가서, 그날 못 먹어봤던 메뉴를 주문했다.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간대인대도 여행 첫날보다 훨씬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인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터무니없는 일정을 짜고 그 속에서 숨겨진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혼자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다시 카모강변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전체 여행 23일 중에 오늘이 13일째 되는 날로써, 벌써 전체 일정의 절반이 지나갔다. 뭔가 13일 간 이것저것 한 게 많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체감 상 일주일 정도 지난 것 같다. 여행의 남은 절반은 어떻게 채워질지 기대가 되면서도 여행 마지막 날 느껴질 허탈감이 벌써 무섭기도 하다. 괜히 쓸데없는 걱정이 시작되기 전에 빠르게 잠을 청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