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 31. 수요일
날씨 : 어제보다 근소하게 맑음.
다시 돌아온 여행지 옮기는 날이다. 짐 싸서 체크아웃 준비하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또 복잡한 기차역과 지하철역을 헤치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체크아웃 후 캐리어를 끌고 교토 역으로 가서 JR 서일본 간사이 패스를 수령할 발권기를 찾았다. 발권까지는 순조로웠는데 갑자기 발권기에서 기차표 비슷한 것이 6장이나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티켓 한 장이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나는 크게 당황하였다. 심지어 QR코드가 크게 박힌 가독성 좋은 티켓이 아니라, 다 똑같이 신칸센 기차표 형태의 청록색 배경에 작은 일본어들이 쓰인 표였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비슷하게 생긴 6장의 표들을 천천히 읽어보다 JR 기차표로 추정되는 표를 찾아 개찰구에 넣어 봤는데 다행히 성공이었다. 교토 역에서 난바역까지는 여러 번의 환승을 필요로 했다. 오사카역과 신이마미야역에서 환승하여 교토역, 난바역까지 합쳐 총 4개의 역이나 거쳐야 했다. 캐리어를 끌고 역 한두 개만 거쳐도 지치는데 역 4개를 통과하니 녹초가 되어 버렸다. 교토역이나 나고야역에서처럼 길을 잃어버릴 뻔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사람과 외국어로 된 이정표,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외국어 사이에서 무거운 짐을 끌고 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사카 숙소 로비에 도착하니 아직 체크인 가능 시간 이전이라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작년 여행 때 오사카에 방문했을 때는 머무른 시간이 너무 짧기도 했고, 난바와 도톤보리 쪽을 구경했던 첫날 저녁땐 카드가 고장 나 패닉 상태였기 때문에 제대로 여행하지 못했었다. 사실상 난바와 도톤보리를 제대로 여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우선, 숙소 근처 “도톤보리 거리” 일대를 걸었는데 확실히 내가 가본 그 어떤 지역보다 “관광지” 느낌이 강했다. 쇼핑 거리나 기념품과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들이 교토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었고 나고야는 그 규모가 작아 역과 연결된 쇼핑몰 등에만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많긴 했어도 그곳 외에는 관광지 느낌이 덜 했는데 오사카는 마치 도시 자체가 관광지 그 자체인 듯했다. 낮 시간대인데도 도톤보리 거리에는 많은 인파가 움직이고 있었고 기념품가게, 드럭스토어, 쇼핑몰 등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점심 식사를 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식당에도 사람들이 많았고 딱히 구미가 당기는 메뉴도 보이지 않아 근처의 “스키야”에 들어갔다. 스키야는 앞서 말했던 나카우, 마츠야와 같이 덮밥과 가정식 등을 판매하는 일본의 대표 체인 음식점 중 하나다. 이번 여행에서 나카우와 마츠야는 이미 먹어 보았고, 작년 일본 여행 때 요시노야를 가 보았으니 이로써 일본의 주요 체인 음식점들을 다 방문해 본 셈이다. 이번엔 덮밥류가 아닌 가정식 메뉴를 시켜 보았는데 맛이 꽤나 괜찮았지만 그래도 내 입맛엔 마츠야와 나카우가 조금 더 맛있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이번 숙소는 직전 세 번째 숙소보다 방이 조금 더 작고 TV 등 편의시설이 조금 아쉬웠다. 두 번째 숙소였던 나고야 숙소가 지금까지 가장 좋았고, 그 이후로 조금씩 다운그레이드되어 가는 느낌이지만 혼자 2박 3일을 보내기에는 손색없는 방이다. 신기한 건 조금씩 다운그레이드되었다 해도 방 크기나 시설이 첫 번째 숙소보단 좋다. 여러 숙소에 머물러 볼수록 진짜 첫 번째 숙소는 다 위치 좋은 값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쉬면서 한국에서 미리 구매해 온 오사카 주유패스로 어디를 갈 수 있나 확인하였다. 원래는 우메다 공중정원과 헵파이브 등을 보고 구매했는데 자세히 보니 도톤보리 강에서 배를 탈 수 있는 탑승권이 있었다. 이왕 오늘은 난바와 도톤보리에만 있기로 한 거 배라도 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예약 가능여부를 확인했더니 오후 6시에 한 자리가 있어 바로 예약한 뒤 숙소에서 쉬다 예약시간에 맞춰 나갔다. 선착장으로 가서 표를 발권한 뒤 선착장 근처 호프집으로 갔다. 호프집에서 탑승권 구매자 대상으로 생맥주를 할인해 주어서 맥주까지 한 컵 사서 6시 10분쯤 배에 올라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약을 하고, 취소 표 발생 시 입장 대기 인원도 꽤 많았던 것을 보면 이미 유명한 관광 코스인가 보다. 도톤보리 강의 폭이 워낙 작다 보니 배 위에서 보는 도톤보리의 풍경과 다리 위나 강가에서 본 풍경이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맥주를 마시며 다리 위나 다른 배의 사람들과 서로 인사하는 건 나름 재밌는 경험이었다. 오사카 주유패스를 구매했다면 한 번쯤은 배를 타 봐도 좋을 듯하다.
20분 정도의 배 타기가 끝나고 바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오사카는 오코노미야끼나 타코야끼 등 일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다른 지방의 음식이 “아 여긴 이런 게 유명해?” 이런 느낌이라면 오사카는 “아 이게 오사카에서 유명한 음식이었어?”와 비슷한 느낌이다. 마침 난바 쪽에 유명한 오코노미야끼 식당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대기 인원이 꽤 되었다. 원래 어느 맛집이던 20분 이상 대기하는 것을 크게 안 좋아하지만, 상황을 보니 지금쯤이면 괜찮은 식당들에는 다 대기 인원이 있을 듯하고 밥 한 끼 먹겠다고 다시 도톤보리를 뒤지고 다니기엔 피곤해서 그냥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거의 내 차례가 와서 일본어로 미리 주문을 하였다. 그런데 내 바로 뒤에 서서 기다리던 중국인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 중 어머니로 추정되는 분이, 내가 한국인으로 보이는데 일본어를 잘한다며 일본에서 거주 중이냐고 물어보셨다. 갑자기 말을 걸어 깜짝 놀랐지만 일단 일본어 실력을 칭찬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이 아주머니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내가 본 일본에서 본 중국인 중에 가장 조용하면서 차분했고 일본어와 영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셨다. 내가 아는 짧은 중국어를 몇 마디 해 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셨다. 대기번호가 이웃된 탓에 식당 안에서도 바 테이블의 옆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자리에 앉은 뒤 내게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다. 건축학과 대학원생이라 대답했더니 놀라시면서 본인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말해주셨다. 또, 주문하신 교자 맛을 보라며 나눠 주셔서 나도 내가 주문한 음식을 같이 나눠 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분인 것 같다.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큰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식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밤의 도톤보리와 신사이바시 거리를 걸었는데 그새 사람이 또 1.5배는 늘어 있었다. 못 걸어 다닐 만큼 위험하게 많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진짜 사람이 정말 많았다. 마치 한국의 홍대나 건대 같은 큰 번화가에 종로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그대로 추가한 느낌이었다. 시끌벅적하고 상점가와 식당의 불빛이 번쩍거리는 모습이 오사카 다워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없어 도톤보리 강가는 카모강처럼 오래 걸어 다니고 싶은 느낌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는 엔저 현상 때문에 관광객이 늘어서 지금 오사카에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내 생각엔 그냥 오사카라는 도시의 특성상 번화가와 관광지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 원래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작년에도 오사카 도톤보리엔 사람이 많았고, 그동안 사람들이 올린 도톤보리 사진에도 항상 사람이 많았다.
근처 타코야끼 맛집에서 파는 타코야끼를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밀린 빨래를 하려 하는데 숙소의 공용 세탁기 3대 중 1대가 고장 나서 세탁기 경쟁이 치열했다. 세탁실에 갔다가 허탕치고 다시 올라와 기다리다를 반복하다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 장기 여행을 계획할 땐 고작 빨래가 이렇게 날 힘들게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오사카 여행이 끝나고 나라 여행을 할 때 머무를 숙소는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저렴한 숙소라 오늘 빨래 후 나라 여행이 끝나고 교토로 돌아올 때까지 입을 옷이 충분하길 바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