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8. 02. 금요일
날씨 : 쾌청한 하늘. 그만큼 강력해진 무더위
또다시 돌아온 여행지 옮기는 날. 9시쯤 일어나 체크 아웃 준비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씻는 시간은 주로 일과가 끝난 후인 오후나 저녁이었지만, 오늘 새로 가는 숙소가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숙소이기 때문에 혹시 모르니 미리 씻어두자는 생각으로 빠르게 샤워를 했다.
짐을 싸고 11시에 맞추어 체크아웃을 한 뒤 곧장 나라로 출발했다. 오사카부터 나라까지 가는 길은 다른 지역을 이동할 때에 비하여 훨씬 편했다. 숙소부터 JR난바역까지 걸어가는 길이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난바역에 사람이 많이 없었고 기차 탑승이나 환승도 복잡하지 않아서 크게 헤매지 않고 평화롭게 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지 이동 중에서 가장 편안한 이동이었던 것 같다.
나라에서의 숙소는 “나라 사슴공원” 안쪽에 있어 JR나라역에서 버스를 타고 공원 입구까지 들어왔다. 그런데 공원 입구부터 숙소까지의 거리가 1.5km 가까이 되어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기엔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가장 무더운 시간인 오후 1시쯤이었고 길도 비포장 산책로 같은 곳이어서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내가 여행 중인지 군대 훈련 중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쯤, 공원 초입을 지나서부터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사슴들이었다. 나라에 사슴공원이 유명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저 우리 안에 있는 사슴들을 구경하거나 공원 내에서도 어떤 특정 코스나 구역에 다시 입장해야만 사슴에게 먹이를 주며 같이 사진을 찍는, 다소 평범한 동물원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여긴 그냥 온 공원이 사슴 그 자체였다. 사슴들은 한강공원의 길고양이들 마냥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며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사람들과 접촉하였다. 마치 사슴과 사람이 같이 공원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행로에는 사람과 사슴이 같이 걸어 다녔고 나무 밑 그늘에서는 사람과 사슴이 같이 쉬었다. 사슴 생활공간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모든 공간이 사람과 사슴의 공동생활공간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자연친화형 공원이었다. 문득 이러면 여러 사고 위험이나 배설물 문제는 어떻게 관리할까 걱정이 되긴 했으나, 일단 사슴들이 마치 인간처럼 천연덕스럽게 같이 걸어 다녀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공원 입구에도 별다른 제제가 없어서 사슴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는데 그건 어떻게 관리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사슴 똥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긴 했는데 엄청 많진 않았고,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크게 지독한 냄새가 나진 않았다. 다만 공원 전체에 토끼우리 비슷한 냄새가 났다.
옆에서 나에게 고개를 내밀거나 같이 걷는 사슴들을 길동무 삼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숙소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짐을 맡기고 나가서 점심이나 먹으려 했는데 숙소 직원 분이 마침 내가 머물 방의 정리가 끝났다며 이른 체크인을 해 주셨다. 덕분에 일찍 짐을 풀 수 있었다. 나라에서 머물 숙소는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소다. 다행히 방은 개인실이지만 우연히 큰 방이 남았었는지 큰 침대 하나가 아니라 일반 침대가 두 개 있었다. 마실 식수는 밖에서 사 와야 했고 동네 작은 술집 화장실에도 있던 비데가 숙소 공용화장실에 없던 것은 조금 아쉬웠다. 한국에는 비데 없는 화장실이 많지만 일본여행에서는 비데 없는 화장실을 처음 본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에어컨은 잘 작동되고 작은 책상도 있으며, 나라 사슴공원 안에 있어 다른 숙소들과 차별화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물론 다른 숙소처럼 4박 5일이나 6박 7일 정도 길게 머물렀으면 조금 불편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2박 3일 정도 머물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숙소까지 오느라 너무 지친 탓에 더위를 피해 4시 반 정도까지 숙소에서 쉬었다. 더위를 조금 먹었는지 미약한 두통이 생겨서 에어컨을 튼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래도 두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아까 오는 길에 대충 본 사슴 공원이 더 궁금하기도 하고 오늘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해 점심 겸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다. 아까는 완벽한 고생길이었지만 한낮의 더위도 한 풀 꺾이고 짐도 가벼워지니 나름 걸을 만했다. 사슴 공원의 여러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공원을 나왔다. 긴테쓰 나라역 근처 상점가를 돌아다니며 식당을 찾았는데, 내가 미리 찾아 둔 돈까스와 우동은 뭔가 별로 당기지 않았다. 좀 더 근처를 둘러보던 와중 맥도날드가 보였는데 그걸 보니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어 곧장 들어갔다. 늘 먹던 햄버거 세트와 샐러드를 먹고 주변에 할만한 것이 있나 둘러보았는데 딱히 할 게 없었다. 심지어 사슴공원 내에 있는 다른 관광지들도 문을 닫아버린 뒤였다. 그래서 아직 두통도 가시지 않은 김에 그냥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숙소에서 마실 생수와 녹차를 사서 왔다. 오늘은 좀 쉬고 내일 본격적으로 사슴공원 내부 관광지와 나라의 다른 유명 사찰들을 방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