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숲에서 배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법
오늘 아침 공기가 유난히 차가웠습니다. 숲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안개가 발목 아래까지 낮게 내려앉아 있더군요. 가까운 나무들조차 흐린 실루엣만 간신히 보일 정도였어요. 보통 이런 날은 앞이 가로막힌 듯 답답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오히려 잠잠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 하얀 고요함을 잠시 바라보게 됐습니다.
멀리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처음엔 사람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만큼 희미했어요. 안갯속에서 흐릿하게 흔들리던 형체가 조금씩 가까워지자 노란색 상의가 서서히 또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별 특별한 순간도 아니었는데, 참 이상하게 시선이 오래 머물더군요. 안개를 가르며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어쩐지 제 삶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거든요.
요즘 저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결정이 맞는 건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나에게 어울리는 곳인지 계속 불안하고 확신이 안 서요. 솔직히 말하면 두렵기도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선명한 길을 원하잖아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뚜렷하게 보인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어요. 현실은 그런 날이 거의 없더라고요.
안갯속 자전거를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기만을 기다리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는 것을요. 그 사람도 아마 처음부터 길이 훤히 보였던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저 속도를 조금 줄였을 뿐, 페달 밟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냥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습니다. 모든 게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오늘 딱 내 앞가림할 만큼만 가도 충분하다는 듯 말이에요.
살다 보니 확신이라는 건 참 오래 머물지 않는 것 같아요. 꽉 붙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모래알처럼 사라지고, 다시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기 일쑤니 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거창한 결심 때문이 아닐 겁니다. "그래, 딱 한 걸음 정도는 더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용기 덕분이겠지요.
안개는 사람의 속도를 늦추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잠시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흐릿한 날이 꼭 나쁜 날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헝클어진 마음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자전거를 타던 사람은 결국 다시 안갯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멀어질수록 윤곽은 희미해졌지만, 그 뒷모습을 보며 오히려 한 가지 단단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길이 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으려는 마음이니까요. 그날 아침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이렇게 적었습니다. "안갯속에서 길을 잃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오늘 딱 보이는 만큼만 나아가면 된다."
안개가 조금 걷힌 것 같은데, 여전히 공기는 차갑네요. 편의점에서 따뜻한 캔커피 하나 사서 손을 좀 녹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