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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Review <<바늘 구멍>>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고전 첩보물

by 금사대제

1. 영화 소개


- 제목: 바늘 구멍(Eye of The Needle)

- 감독: 알렉스 가랜드(Richard Marquand)

- 출연: 도널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 케이트 넬리건(Kate Nelligan),

이언 배넌(Ian Bannen), 크리스토퍼 카제로브(Christopher Cazenove) 등

- 장르: 전쟁, 첩보 스릴러

- 제작 국가 및 연도: 영국 / 1981년作

- 제작 및 배급사: Kings Road Entertainment(제작), United Artists(배급)

- 관람 등급: R(17세 이하 관람 불가)



2. 줄거리


<Die Nadel: 독일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The Needle'이다.>이라는 압호명을 가진 나치 독일의 스파이 헨리 파버(Henry Faber: 도널드 서덜랜드 扮)는 전쟁 전부터 영국에 잠입해 정체를 숨긴 채 암약 중이다. <바늘>은 '스틸레토(Stiletto)라 불리는 길고 날카로운 접이식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냉혹한 킬러다. 1944년 봄, 연합군의 유럽 본토 상륙이 임박한 시점에 바늘은 독일 최고 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영국 동남부 도버에 주둔하고 있는 패튼 장군의 기만 작전을 위한 위장 기지에 잠입해 연합군의 상륙 지점이 히틀러와 참모들의 예상대로 파 드 칼레(Pas de Calais)가 아니라 노르망디(Normandy)가 될 것이라는 정보를 알아낸다. 바늘은 위장 기지를 촬영한 필름을 독일 최고 사령부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 영국을 탈출해 독일로 귀환하려 한다.


<패튼 장군의 위장 기지에 잠입해 정보를 빼낸 바늘은 영국군의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된다. 다음 순간 바늘은 두 영국군을 스틸레토를 휘둘러 순식간에 처치한다.>


오래전부터 바늘의 뒤를 쫓던 MI5 요원 고들리만(Inspector Godliman: 이언 배넌 扮)은 그가 D-데이를 실패로 몰아넣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빼냈음을 알아채고 비밀에 싸인 독일 스파이를 사활을 걸고 추적한다. 바늘은 영국에서 탈출하기 위해 U-보트와 접선하려고 스코틀랜드로 향한다. 소형 어선을 훔쳐 타고 북해로 나간 바늘은 예기치 못한 폭풍을 만나 조난당한 뒤 천신만고 끝에 폭풍 섬(Storm island)이라는 이름의 고도(高度)에 표류한다. 폭풍 섬에는 결혼식 당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불구가 된 전직 영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데이비드(David Rose: 크리스토퍼 카제로브 扮)와 그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루시(Lucy Rose: 케이트 넬리건 扮)가 네 살배기 어린 아들 조(Jonathan)만을 데리고 양을 치며 은둔하고 있었다. 로즈 가족 이외에 다른 섬 주민은 늙은 등대지기 톰뿐이다.


eye_of_the_needle.jpg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루시를 유혹하는 바늘>


로즈 부부의 보살핌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구한 바늘은 교통사고 이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남편 때문에 고독해하는 루시와 격정적인 불륜에 빠져든다. 데이비드는 아군의 군사기지를 몰래 촬영한 필름을 몸에 지닌 채 슈트 차림으로 폭풍 섬에 표류한 바늘을 의심한다. 바늘과 자신의 아내 루시 사이의 불륜을 눈치챈 데이비드는 바늘이 독일 스파이라고 확신하고 그를 죽이려 하지만 오히려 바늘의 반격으로 절벽에서 떠밀려 무참히 살해된다. 데이비드를 죽인 바늘은 등대지기의 오두막에 있는 무전기로 U-보트와 접선하기 위해 톰마저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홀로 루시의 집에 돌아온 바늘은 데이비드가 톰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해서 등대지기의 오두막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혼자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바닷가로 산책을 나간 루시는 바닷물에 떠 있는 남편의 시신을 발견하고 바늘이 독일의 스파이임을 눈치챈다. 집으로 돌아온 루시는 바늘을 유혹해 정사를 가진 후 바늘이 방심한 틈을 타 조를 데리고 무전기가 있는 등대지기의 오두막으로 도망친다. 바늘은 자신의 정체가 탈로 났다는 것을 깨닫고 루시 모자의 뒤를 쫓는다. 등대지기의 오두막에 무사히 도착한 루시는 무전기로 본토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루시의 무전을 받은 고들리만 요원은 루시에게 바늘이 U-보트와 접선하지 못하도록 무선기를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루시는 겁에 질려 고들리만 요원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다.


<바늘은 루시와 예상치 못한 불륜에 빠져든다.>


루시를 뒤쫓아 온 바늘은 조를 인질로 삼아 루시를 협박하고 겁에 질린 루시가 굴복하자 무전기로 U-보트와 교신하기 시작한다. 바늘이 자신이 획득한 중요한 정보를 U-보트에 발신하기 직전 루시는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백열전구의 소켓에 열쇠를 집어넣어 전기 합선을 유도해 무전기를 망가트린다. 바늘은 냉혹하고 잔인한 킬러였지만 한때 애정을 품었던 루시를 죽이지 못하고 바다 위로 부상해 모습을 드러낸 U-보트에 탑승하기 위해 홀로 바닷가로 도망친다.


064.jpg <루시는 U-보트로 도망치려는 바늘을 권총으로 사살한다.>


루시는 남편이 남긴 웨블리 리볼버(Webley Revolver)를 들고 바늘의 뒤를 쫓는다. 루시는 바늘에게 멈추라고 외치며 제지하려 하지만 바늘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도망친다. 루시는 바늘이 U-보트에 탑승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권총을 쏘아 그를 사살한다. 바늘을 죽인 루시는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열한다.



3. 평가


이 영화는 국내에서 <<바늘 구멍>>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영화의 원제는 <<Eye of The Needle>>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정확한 번안 제목은 '바늘 구명(바늘구멍은 '바늘에 찔러 생긴 작은 구멍'이라는 뜻이다.)'이 아니라 '바늘귀'라고 해야 맞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말은 바늘'귀'라고 표기하지만 영어권에서는 바늘의 '눈'라고 표기하는 모양이다. 재미있게도 한자문화권에서는 바늘귀를 침비(針鼻)라고 해서 코에 비유한다고 한다. 같은 사물을 문화권에 따라 제각각 눈, 귀, 코에 비유해 다르게 표기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고 또 재미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영화보다는 소설이 한 층 더 흥미진진하고 짜임새 있었다. 아마도 원작자의 문장력이 영화감독의 연출력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디테일을 상당 부분 삭제하고 주요 스토리 라인만을 다룬다. 특히, 소설의 결말부가 영화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영화는 루시가 바늘을 권총으로 쏴 사살하는 장면에서 끝이 나지만 소설은 세월이 흘러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영국이 독일을 4:2로 이기고 우승컵을 차지한 대망의 결승전 경기를 TV 중계로 보는 중에 은퇴해 노인이 된 고들리만 요원이 손자들에게 이 축구 경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독일을 최초로 이긴 사례라면서, 과거 전쟁 중에 독일 스파이 '바늘'을 추적해 사살한 무용담을 들려준다. 손자들이 할아버지에게 직접 바늘을 처단했냐고 묻자, 고들리만은 그 공로는 할머니가 세웠다고 이야기해 준다. 이때 거실 밖에서 쟁반에 차를 담아 오던 여주인공 루시(소설에서는 바늘에게 남편 데이비드를 잃은 루시가 조를 데리고 고들리만 요원(사건 당시 고들리만 역시 일찍 아내를 여읜 홀아비였다.)에게 재가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고들리만의 손자들은 루시의 아들 조가 낳은 아이들이다.)가 바늘과의 과거사가 머릿속에 되살아나자 당황해 쟁반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원작 소설은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한 번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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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영어 원본 / 오른편: 한글 번역본>


이미 언급한 대로 이 영화는 <<대지의 기둥(The Pillars of The Earth)>>이라는 제목의 대하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문호 켄 폴릿(Ken M. Follett)의 첫 베스트셀러를 극화한 것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승패를 놓고 벌어지는 영국과 독일의 치열한 첩보전을 다루고 있다. 실제로 전쟁 중 영국은 첩보전에서만큼은 독일을 압도했다. 영국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닝(Alan M.Turing)이 이끈 '울트라(ULTRA)'라 불리던 암호해독 부서를 운영해 그 누구도 깰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Enigma code)를 완벽히 해독해 냈고(이 일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바로 <<The Imitation Game>>(2014)이다.), 독일 내에서 활발한 첩보 활동을 벌여 추축국의 작전 계획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반면, 독일은 영국 MI5의 치밀한 방첩 활동 때문에 연합군의 정보망을 단 한 차례도 뚫지 못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른 사상 최대의 작전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도 연합국과 독일은 치열한 첩보전을 펼쳤다. 연합군은 독일군을 속여 넘기기 위해 대규모 기만 전술을 구사했다. 독일군으로 하여금 연합군의 상륙지점이 노르망디가 아니라 파 드 칼레라고 믿게 하기 위해 시칠리아 전투 중에 전쟁 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병을 구타한 일로 징계 중이었던 패튼 장군을 영국 동남부 도버에 데려다 놓고 위장 군사기지를 만들어 수십만 대군이 유럽 본토 침공을 위해 집결해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독일 최고 사령부는 이 기만 작전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 D-day 당일 이미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여전히 연합군의 상륙지점은 파 드 카레라고 확신해 방어를 위한 핵심 전력인 기갑부대를 파 드 칼레 인근에 묶어 놓고 노르망디에 투입하지 않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상륙 작전 직전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두둔하고 있던 독일군의 예하 소대장 이름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지만 독일군은 영국 MI5의 철저한 방첩 활동 탓에 영국 내 첩보 조직이 와해됐고 연합군의 기만 전술에 꼼짝없이 속아 넘어가 연합군의 작전 계획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패퇴하고 말았다.


이 영화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연합군 기만 작전의 내막을 단 한 명의 노련한 독일 스파이가 탐지해 낸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바늘이라 불린 이 스파이는 전쟁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정보를 손에 쥐고 영국을 탈출해 독일로 귀환하려 한다. 암호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혹하고 치밀한 독일 스파이가 영국 방첩부의 끈질긴 추적을 유유히 따돌리고 무사히 독일로 탈출하려던 마지막 순간 예기치 못한 덫에 걸려들고 만다. 그것은 노련한 스파이조차 피해 가지 못한 애욕의 유혹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 앞에 천하의 바늘조차 발목이 잡히고 만다. 단 한 번의 방심 탓에 바늘은 탈출에 실패하고 자신이 유혹했던 여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바늘이 빼낸 정보는 독일로 빠져나가지 못했고 나치 독일은 패망하고 만다.


이 영화는 고전 첩보물답게 007 영화에 나오는 첨단 장비나 화려한 액션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파이 세계를 훨씬 더 현실성 있고 치밀하게 그려낸다. 사실 007 시리즈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허구에 불과하다. 실제 첩보계에 제임스 본드 같은 멋지고 유쾌한 스파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스파이 세계는 한없이 비정하고 음습할 뿐이다. 영화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합국과 나치 독일 사이의 첩보전을 사실적인 서사로 그럴싸하게 묘사한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에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영화가 종료되고 나면 언제 2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이 훌쩍 지나가버렸는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스토리 전개가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관람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영화다.



<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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