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니와의 마지막 전쟁
이제 로마에 맞설 수 있는 적수는 사비니 족 뿐이었다. 이들은 호전적인 기질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옥하고 넓은 땅을 갖고 있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사비니 족을 누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렇게 요구했다.
“에르투리아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쳐들어왔을 때 그들과 손잡기로 약속한 사람들을 내놓으시오.”
사비니 족은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들을 로마에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전쟁을 아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로마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로마 영토로 진격했다.
“사비니군이 아니오 강을 건넜습니다. 시골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보고를 들은 타르퀴니우스는 경무장한 젊은이들을 이끌고 나섰다. 아주 신속하게 행군해 병사들이 말 먹이를 구하느라 흩어져 있던 사비니 족 진지로 쳐들어갔다. 그는 많은 적을 살해하고 노획물도 충분히 챙긴 뒤 사비니군 근처에 진지를 구축했다. 로마의 증원군과 동맹 도시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여러 날을 기다린 뒤에야 전투를 위해 평원으로 내려갔다.
로마군이 전투 의욕을 불태우면서 전진하는 모습을 본 사비니군도 싸우러 나왔다. 그들은 수나 용기에서 결코 로마군에 뒤지지 않았다. 이들은 모든 용기를 다 내어 열심히 싸왔다. 하지만 배후에서 아주 질서정연한 전투 대형을 갖춘 적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군대 깃발까지 다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사비니군 배후를 덮치려 한 부대는 로마군의 보병과 기병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전투에 앞서 밤에 적당한 위치에 이들을 매복시켜 두었던 것이다. 로마군이 갑자기 나타나자 사비니군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우리는 적의 작전에 걸려들었다. 저항할 수 없는 재앙에 직면했다.”
사비니 병사들은 살아남기 급급했다. 일부는 이 방향으로, 다른 일부는 저 방향으로 달아났다. 사비니 족이 대규모로 학살당한 곳은 바로 이런 장소였다. 일부는 로마 기병에 추격당한 끝에 포위당해 죽었다.
가장 가까운 사비니 도시로 겨우 달아난 병사는 매우 적었다. 전투에서 살해당하지 않은 병사들은 로마군의 손에 포로로 붙잡혔다. 진지에 남아 있던 병사들도 로마군의 공격을 물리치거나 나가서 싸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들은 예기치 못했던 불행에 겁을 먹고는 저항도 없이 항복하고 말았다.
사비니 족은 다시 대군을 파견할 준비를 서둘렀다. 사령관은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을 골랐다.
“우리는 적의 용기 때문이 아니라 속임수 때문에 승리를 빼앗겼다. 다시 싸워야 한다.”
타르퀴니우스는 적의 의도를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병사들을 소집했다. 적군이 다 모이기 전에 아니오 강을 건너 그들의 진군을 방지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비니 장군은 새로 모은 병사들을 최대한 서둘러 행군시켰다. 그리고 로마군 진지 근처의 높은 언덕에 진지를 꾸렸다. 그는 전투를 서두르지 않았다.
‘나머지 군대가 모두 모이기도 전에 전투를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장군은 말 먹이를 구하러 나온 로마군을 방해하기 위해 수시로 기병을 파견했다. 그리고 숲과 빈터에 매복병을 숨겼다. 로마군이 사비니 지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사비니 장군이 이런 식으로 전쟁을 질질 끄는 동안 두 군대의 경무장 보병과 기병 사이에는 아주 소소한 접전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하지만 전군을 동원한 총력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흘렀다. 타르퀴니우스는 전쟁이 지연되는 것에 짜증을 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진군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거듭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사비니군 진지가 워낙 튼튼해서 강제로 빼앗기는 쉽지 않았다. 타르퀴니우스는 진지 안에 갇힌 병사들을 굶주리게 만들기로 했다. 그는 진지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에 보루를 세웠다. 그리고 사비니군이 나무를 구하거나 말 먹이를 구하거나 기타 필수품을 구하러 가지 못하게 방해했다.
사비니군은 모든 물자가 부족해지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병사들은 비바람이 부는 밤에 진지에서 빠져나가 달아났다. 짐을 싣는 동물과 천막, 부상자, 전쟁 물자를 그대로 남겨놓은 채였다.
로마군은 다음날 아침에야 사비니군이 도망간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사비니군 진지를 점령한 뒤 천막, 동물, 개인 물건 등을 빼앗아 로마로 귀환했다. 물론 일부 포로도 있었다.
사비니와의 전쟁은 5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양측은 끊임없이 상대 영토를 공격했고, 여러 차례 전투에서 마붙었다. 때로는 사비니가 우세했지만 대부분 로마군이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에서 전쟁은 최후의 결말을 맞았다.
사비니 족은 이전과는 달리 대규모로 전쟁에 나설 수 없었다. 무기를 들 수 있는 나이가 된 사람들만 출장해야 했다. 반면 로마는 라틴 지원병은 물론 에트루리아와 다른 도시의 지원부대를 합쳐 사비니군과 싸우러 나섰다.
사비니군 장군은 부대를 나눠 진지 두 개를 차렸다. 타르퀴니우스는 군대를 세 개로 나눠 멀지 않은 거리에 진지 세 개를 꾸렸다. 그는 로마군을 지휘하면서 조카 아룬스에게는 에트루리아 지원부대를 이끌게 했다.
반면 라틴과 다른 동맹국 지원부대에는 아주 용감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내를 보냈다. 그는 나라가 없는 이방인이었다. 이름은 세르비우스였고 성은 툴리우스였다. 나중에 타르퀴니우스가 아들 없이 죽은 뒤 로마를 다스리게 되는 사람이었다. 로마인은 평화로울 때나 전쟁에서나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양군은 충분히 전투 준비를 한 뒤에 맞붙었다. 로마군은 좌익에 섰고, 에트루리아 지원부대는 우익에, 라틴 지원부대는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힘든 전투가 하루 종일 벌어졌다. 로마군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들은 아주 용감하게 저항한 많은 적의 목을 베웠다. 로마군은 사망자보다 더 많은 적군을 포로로 붙잡았다. 또 사비니 진지를 점령한 뒤 엄청난 전리품을 챙겼다.
로마군은 저항을 받을 걱정 없이 모든 땅의 지배자가 됐다. 불과 칼, 그리고 모든 종류의 행위를 이용해 사비니 영토를 초토화시켰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로마군은 진지를 걷고 귀향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세 번째로 개선식을 거행하는 영예를 얻었다.
타르퀴니우스는 다음해 군대를 이끌고 사비니 도시들로 쳐들어갈 마음을 먹었다. 도시들을 포위해 혼줄을 내줄 생각이었다. 더 이상 용감하게 맞설 사비니 도시는 없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모든 사람이 로마의 노예가 되고 모든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사비니 족은 각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들을 모아 타르퀴니우스에게 사절로 보냈다. 이미 그는 모든 군대를 이끌고 사비니 영토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 도시를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제발 합리적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주시기를 바랍니다.”
타르퀴니우스는 사비니 족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보복 행위를 하지 않고 사비니와 평화 및 우호 조약을 맺었다. 에트루리아 도시들이 항복할 때와 똑같은 조건이었다. 그는 몸값을 받지 않고 포로들을 모두 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