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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4)

유피테르 신전과 시빌 예언서

by leo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가비이 문제를 해결한 뒤 시민들을 쉬게 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했던 약속을 이루려고 했다. 성소 건설에 매달리기로 한 것이었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사비니족과 전쟁을 치를 때 승리를 거둔다면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를 모시는 신전을 지어 바치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신전 건설을 마칠 때까지 살지 못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수에사에서 빼앗아온 전리품 중 10분의 1을 신전 건설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모든 기술자를 공사에 총동원했다. 이때 타르페이아 언덕(현재 카피톨리노 언덕) 땅 밑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꾼들이 기초 작업을 위해 땅을 파고 있을 때였다.


굴착 작업이 상당히 진전됐을 때 막 살해된 남자의 머리가 발견됐다. 깨진 머리에서 따뜻하고 신선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타르퀴니우스는 일꾼들에게 잠시 굴착 작업을 멈추라고 했다. 그리고 로마의 점술가들을 불러모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오?”


“글쎄요.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당장 에트루리아에 가서 최고의 점술가들을 찾아보도록 해라.”


타르퀴니우스는 사람들을 에트루리아에 보내 누가 점술을 잘 보는지 살폈다. 가장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점술가를 찾아낸 뒤 로마의 저명인사들을 사절로 보냈다. 로마 사절단이 에트루리아 점술가 집에 갔을 때 한 청년이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로마에서 온 사절이오. 점술사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그 분에게 우리가 왔다고 전해주시오.”


“그 분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지금 매우 바쁘십니다. 잠시 후에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왜 오셨는지 저에게 설명해주십시오. 잘 모르시겠지만 여러분이 질문을 할 때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에게서 미리 이야기를 듣고 가면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정확하게 하는 게 점술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로마 사절단은 그의 조언에 따라 타르페이아 언덕에서 일어난 이적을 설명했다. 젊은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잘 들으세요. 아버지는 이적의 의미를 설명해주실 거예요. 거짓을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왜냐 하면 점술가가 거짓말을 하는 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질문할 때 실수를 하지 않도록 제가 묻는 방법을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버지에게 이적을 설명하십시오. 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실 겁니다. 그리고 작대기로 땅에 선을 그으실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이것은 타르페이아 언덕이오. 이쪽은 동쪽을 보고 있고, 이쪽은 서쪽, 이쪽은 북쪽, 반대쪽은 남쪽을 보고 있다오.’


아버지는 작대기로 각 방향을 여러분에게 가리키실 겁니다. 그리고 어느 쪽에서 머리가 발견됐느냐고 물으실 거예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아버지가 작대기로 방향을 가리키면서 물어볼 때 절대 대답하지 마십시오. 대신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가 로마에서 타르페이아 언덕에 있을 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가 계속 답변을 강요하더라도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숨김없이 이적의 의미를 설명해주실 거예요.”


미리 교육을 받은 로마 사절단은 잠시 후 밖으로 나온 하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점술가에게 이적을 설명했다. 점술가는 아주 교묘하게 그들을 엉뚱한 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는 땅에 원을 그린 뒤 직선도 그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머리가 어느 방향에서 발견됐는지 물었다.


사절들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굳건하게 한 가지 대답만 반복했다. 모두 점술가의 아들이 미리 가르쳐준 대로였다. 항상 로마, 타르페이아 언덕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편집자 주/점술가가 원과 선을 그은 땅은 에트루리아였다. 로마 사절단이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결국 그곳은 에트루리아 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점술가는 영광을 로마가 아니라 에트루리아에 주고 싶었던 것이다.)


“점술가시여, 조짐을 당신 마음대로 이용하지 마시오. 가장 진지하고 공정하게 대답하시오.”


점술가는 로마 사절들을 속여 조점을 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할 수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로마인이여, 당신 동료들에게 이렇게 전하시오. 머리를 발견한 장소는 이탈리아의 머리가 될 운명이 점지된 곳이라고.”


이후 타르페이아 언덕은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불리게 됐다. 그곳에서 발견된 ‘머리’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인은 ‘머리’를 ‘카피타’라고 불렀다.


타르퀴니우스는 돌아온 사절단에게서 설명을 듣고 기술자들에게 신전을 더 크게 지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도 작업을 완성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머지않아 권력에서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로마인은 제3대 집정관 시기에 신전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유피테르 신전은 높은 곳에 서 있다. 둘레는 244m다. 각 면은 61m다. 각 면의 길이와 건물 폭의 차이는 겨우 4.5m로 매우 적다. 원래 지은 신전이 다 타버린 뒤 우리 아버지 시대에 새로 지어진 신전은 이전의 신전과 같은 기초 위에 건설됐다. 고대의 구조와 다른 건 거의 없다. 다만 재료의 비용만 다르다.


남쪽을 바라보는 전면에는 기둥이 세 줄로 세워졌다. 다른 면에는 기둥이 한 줄씩 세워졌다. 신전은 세 개의 똑같은 사원으로 구성됐다. 각 사원은 계벽으로 분리됐다. 중간의 사원은 유피테르에게 양측 사원은 유노와 미네르바에서 헌정됐다. 세 사원은 하나의 페디먼트와 지붕 아래에 들어 있었다.


타르퀴니우스의 집권 중 로마에 또다른 놀라운 행운이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이런 행운은 잠시 이어진 게 아니었다. 1세기 내내 계속됐다. 그래서 로마를 최악의 재앙에서 구할 수 있었다. 로마에 살지 않는 여인이 타르퀴니우스를 찾아왔다.


“시빌 신탁을 담은 책 아홉 권을 사시오.”


“네가 요구한 금액으로는 사지 않을 것이다.”


여인은 밖으로 나가더니 책 세 권을 불태워버렸다. 잠시 후 그녀는 나머지 여섯 권을 들고 다시 타르퀴니우스를 만났다.


“이 여섯 권을 아까 아홉 권과 같은 가격에 사시오.”


“당신은 바보로군. 세권이나 적은 책을 똑같은 가격에 사라는 게 말이 돼?”


여인은 다시 밖으로 나가 세 권을 더 불태웠다. 그리고 나머지 세 권을 들고 다시 타르퀴니우스에게 갔다.


“마지막 세 권이오. 아홉 권과 같은 가격에 사시오.”


타르퀴니우스는 그제야 여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조점관을 불렀다.


“도대체 저 여인은 누구요? 이게 무슨 일이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오?”


“조점을 보니 왕께서는 신이 보낸 축복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책을 다 사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깜짝 놀란 타르퀴니우스는 여인을 불러 원하는 대로 돈을 주고 책 세 권을 샀다. 여인은 책을 넘겨주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책을 잘 관리하도록 하시오.”


타르퀴니우스는 능력 있는 시민 두 사람과 노예 두 명을 임명해 책을 관리하게 했다. 그 중 한 명은 마르쿠스 아틸리우스였다. 그는 타르퀴니우스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노예 중 한 명이 왕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쳤다. 왕은 그를 가죽 가방에 넣어 꿰맨 뒤 바다에 던져버렸다.


로마는 왕정을 마감한 뒤에는 책 관리를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게 맡겼다. 그들에게는 군 복무와 다른 국가 의무를 모두 면제해주고 이 일만 평생 담당하게 했다. 또 노예들을 할당해 그들을 돕게 했다. 이들이 자리에 없을 때에는 아무도 신탁을 볼 수 없었다.


신성한 물건이든 속세의 물건이든 로마인이 시빌 예언서보다 더 신경 써서 관리한 재산은 없었다. 국가가 당쟁의 혼란에 휩싸이거나, 전쟁 중에 엄청난 불행을 만나거나, 해석하기 어려운 이적이나 유령이 나타나면 로마인은 원로원 결의를 거쳐 시빌 예언서에서 신탁을 구했다.


시빌 예언서는 마르키아 전쟁 때까지는 유피테르 카피톨리누스 신전 지하의 돌 상자에 보관돼 10명이 관리했다 하지만 BC 83년 신전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 예언서도 다른 봉헌물과 함께 완전히 소실돼 버렸다. 지금 존재하는 책은 여러 곳에서 조각을 모아 새로 구성한 것이다.


일부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나머지는 아시아의 에르트라이에서 가져왔다. 일부는 여러 도시에서 가져오거나 필사한 것이다. 일부는 원본 사이에 글을 써넣은 것이다. 이른바 끝말잇기 등의 방식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을 나는 테렌티우스 바로의 종교에 대한 저작에서 참조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전쟁과 평화 시에 이룩한 이러한 업적 외에 식민지 두 곳을 건설했다. 하나는 시그니아였다. 계획해서 만든 게 아니고 우연히 이뤄진 곳이었다. 군인들이 겨울 숙영지를 만들거나 진지를 차린 게 도시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키르케이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도시였다. 이 곳은 라틴 지역에서 가장 넓은 폼프티누스 평원에서도 가장 유리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다에 인접해 있었다. 반도에서 꽤 높은 언덕이어서 티레니아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태양의 신의 딸인 키르케가 이곳에 살았다.


타르퀴니우스는 두 식민지에 두 아들을 보내 도시의 건설자로 임명했다. 카르케이는 아룬스에게, 시그니아는 티투스에게 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더 이상 권력과 관련해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유부녀를 망친 큰아들 섹스투스의 만행 때문에 권력에서 밀려나고 로마에서 쫓겨났다.


그의 집을 덮칠 비극을 앞두고 신은 여러 가지 조짐을 보내 경고했다. 이런 조짐도 있었다. 독수리 두 마리가 봄에 궁전 근처 정원으로 날아왔다. 그들은 큰 야자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었다. 두 독수리는 아직 어린 새끼 여러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때 콘도르 무리가 둥지로 날아오더니 새끼를 죽여 버렸다. 독수리 부모가 먹이를 가지고 돌아오자 콘도르들은 입으로 물어뜯고 날개로 쳐서 독수리를 야자나무 아래로 떨어뜨렸다.


타르퀴니우스는 이 장면을 보고 운명을 피하기 위해 모든 대책을 준비했다. 하지만 운명을 정복할 수는 없었다. 귀족이 맞서고 평민도 똑같은 마음을 갖게 됐을 때 그는 권력에서 쫓겨났다. 누가 이 반란의 주모자였고, 어떻게 해서 그들이 상황을 장악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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