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타르퀴니우스의 반격(3)

다가오는 위기

by leo


이듬해 로마의 집정관은 티투스 라르키우스 플라부스와 퀸투스 코엘리우스 시쿨루스였다. 원로원은 코엘리우스에게는 로마의 행정을 관할하게 했다. 병력 절반을 주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조심하게 했다. 그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라르키우스는 중무장 병력을 이끌고 피데나이와 전쟁을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포위 작전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출정했다.


피데나이는 긴 전쟁 탓에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생활필수품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라르키우스는 성벽을 무너뜨리고 둔덕을 쌓아올리는가 하면 전쟁 도구를 모두 총동원해 밤낮 없이 피데나이를 공격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 도시를 정복할 생각이었다.


피데나이가 믿고 있던 어떤 라틴 도시도 그들을 구하러 달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 중 어떤 도시도 로마의 포위를 풀 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여러 나라가 힘을 모아 군대를 꾸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피데나이가 보낸 사절에게 각 도시의 지도자들은 늘 똑같은 답만 반복했다.


“곧 도와주러 달려갈 것이오.”


하지만 그들의 약속에 걸맞은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다. 말 말고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피데나이는 라틴 도시들의 도움을 받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끔찍한 상황에서 끈기 있게 신념을 갖고 스스로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피데나이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기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결국 피데나이는 재앙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들은 로마 집정관에게 며칠간 휴전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로마와 우호동맹을 맺을 조건을 검토하기 위해 시간을 주시오.”


피데나이는 사실 조건을 검토하기 위해 시간을 달라고 한 게 아니었다. 그 사이에 성벽을 보강할 생각이었다. 로마군에게 달아난 사람이 이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피데나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어젯밤 복종의 상징물을 들고 라틴 동맹 총회에 갔습니다.”


좋은 정보를 얻은 덕분에 피데나이의 속셈을 미리 알고 있던 라르키우스는 사절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성문을 열도록 하시오. 그리고 우리를 안으로 받아들이시오. 그렇지 않다면 평화도 휴전도 없을 것이오. 인간적이고 온건한 어떤 처우도 기대하지 마시오.”


라르키우스는 피데나이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에 가장 부지런한 병사들을 배치해 경비를 강화했다. 그리고 라틴 총회에 갔던 사절이 피데나이로 돌아가지 못하게 특히 신경을 썼다.


결과적으로 피데나이는 동맹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은 로마에 항복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을 찾을 수 없게 됐다. 피데나이는 총회를 열어 로마가 제시한 조건에 따라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피데나이 장수들은 총회 결정을 아주 잘 따랐고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정관은 피데나이를 점령한 뒤 무기를 빼앗고 주둔병을 일부 배치한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로마로 돌아갔다. 그는 바로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항복한 피데나이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결정해 주십시오.”


“집정관의 판단은 아주 훌륭합니다. 피데나이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과 반란의 주모자는 매질한 뒤 처형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 사람들의 명단은 집정관이 정하도록 하십시오.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 집정관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처리하시면 됩니다.”


라르키우스는 이렇게 해서 피데나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전권을 갖게 됐다. 그는 반대편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피데나이 지도자 일부를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데서 처형했다. 나머지 사람에게는 재산을 그대로 보유한 채 피데나이에 계속 살 수 있게 했다.


그는 피데나이 영토의 절반을 빼앗았다. 이 땅을 피데나이에 주둔군으로 남게 된 로마인에게 나눠주었다. 피데나이 문제를 이렇게 처리한 그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돌아갔다.


피데나이가 점령됐다는 소식을 들은 라틴 도시들은 극도의 흥분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시민들은 동맹 업무를 담당하는 지도자들에게 분노했다.


“당신들은 위기에 빠진 동맹을 저버리고 배신한 사람들이야.”


라틴 총회가 페렌티눔에서 소집됐다. 타르퀴니우스와 그의 사위 마밀리우스, 그리고 아리키아의 대표들은 무력을 사용해 복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전쟁에 반대한 사람들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모든 라틴 도시 대표들은 그들의 말에 넘어갔다. 힘을 모아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라틴 도시들은 모두의 동의 없이는 로마와 화해하거나 대의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신에게 맹세를 했다. 그리고 ‘조약을 어기는 도시는 동맹에서 배제시키고 모두의 적으로 간주’하기로 결정했다. 이 조약에 참가해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도시는 다음과 같다.


아르데아, 아리키아, 보빌라이, 부벤툼, 코라, 카르벤툼, 키르케이, 코리올리, 코르비오, 카붐, 포르티니아, 가비이, 라우렌툼, 라누비움, 라비니움, 라비키, 노멘툼, 노르바, 프라이네스테, 페둠, 퀘르케툴라, 사트리쿰, 스캅티아, 세티아, 티부르, 투스쿨룸, 톨레리움, 텔레나이, 벨리트라이.


이들은 또 ‘옥타비우스 마밀리우스와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가 원하는 만큼 모든 도시에서 병역 연령에 도달한 사람을 병사로 차출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들은 두 사람에게 절대 권한을 주어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두 사람은 전쟁 명분을 쌓기 위해 각 도시의 저명인사들을 로마에 사절로 보냈다. 이들은 원로원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아리키아는 로마를 다음과 같이 비난하는 바이오. 에트루리아가 아리키아에 전쟁을 일으켰을 때 로마는 에트루리아가 아리키아 영토로 가도록 안전한 통행로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소. 그리고 전쟁에서 패해 달아나던 에트루리아 병사들을 받아들였지요. 에트루리아가 모든 나라에 전쟁을 일으킨 걸 모르지 않으면서, 그리고 에트루리아가 아리키아의 지배자가 될 경우 다른 모든 도시도 노예로 전락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에트루리아 병사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지요.


로마가 라틴 총회에 참석해서 아리키아가 제기한 비난에 답변을 내놓는다면, 그리고 다른 회원국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른다면 로마는 전쟁에 시달릴 필요가 없을 거요. 하지만 늘 하던 대로 계속 거만하게 굴면서 정당하고 합리적인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모든 라틴 도시는 힘을 모아 로마에 전쟁을 선언할 것이오.”


라틴 도시의 사절이 내놓은 제안은 이런 내용이었다. 로마 원로원은 비난을 퍼붓는 사람이 심판관 역할을 하게 될 논쟁에서 아리키아에 로마의 주장을 간청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적의 비난은 아리키아의 경우에만 한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더 심한 요구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투표를 실시해 전쟁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전쟁에 관해서라면 누구 못지않게 용감하고 경험이 많았던 로마는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의 병력이 엄청나다는 것에는 경각심을 가졌다. 그들은 각지에 사절을 보내 이웃나라를 동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라틴 도시들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도시에 사절을 보내 로마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헤르니키는 회의를 열어 로마와 라틴 사절 모두에게 아주 의심스럽고 성실하지 않은 답을 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답변했다.


“현재로서는 어느 누구하고도 동맹을 맺을 생각이 없소. 한가해지면 둘 중 누구의 주장이 더 정당한지 생각해볼 것이므로 판단할 시간을 1년만 주시오.”


루툴리는 라틴 도시에게는 지원병력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로마에는 적대감을 포기한다면 라틴 도시들이 요구를 완화하고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중재하겠다고 밝혔다.


볼스키는 로마의 뻔뻔함에 놀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로마는 특히 최근에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지요. 우리 영토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빼앗아가기도 했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동맹을 맺자고 요청하는군요. 우리가 충고하지요. 땅을 돌려주고 보상부터 하시오.”


에트루리아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는 최근 로마와 조약을 맺었지요. 한편으로는 타르퀴니우스와 친척이면서 친구이지도 하고요.”


여러 도시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투쟁 정신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아주 위험한 전쟁을 앞두고 있으며, 동맹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고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로마는 로마의 군사력만 믿기로 했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전쟁을 기다리게 됐다. 그들은 위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발휘해야 하고,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로마의 용기로 이겨야 하고, 승리의 영광을 다른 도시들과 나눠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들은 과거 많은 전쟁에서 이런 정신과 과감성을 축적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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