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전쟁 준비를 하고 병사를 등록하는 사이 큰 난관에 부닥치고 말았다. 모든 시민들이 이번 전쟁을 앞두고 똑같은 마음을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빚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군대에 들어오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복종을 거부했다.
“부채 감면 법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귀족과 함께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로마를 떠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당한 몫을 나눠주지 않는 도시에서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귀족들은 처음에는 마음을 바꾸라고 그들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원로원 회의를 열었다. 로마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혼란을 끝낼 장법을 찾자는 것이었다. 공정한 생각을 갖고 있고 재산 규모도 적당한 의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사적이든 공적이든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이런 제안을 내놓은 사람은 독재자를 쫓아낸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였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는 평민에게 늘 선의를 베풀어 푸블리콜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정한 보상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용기 있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용감하게 싸워도 이득을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빈민들은 흥분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포로 로마노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빚 때문에 채권자에게 붙잡혀 감옥에 끌려간다면 적을 무찌른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이지? 우리의 자유조차도 지키지 못한다면 로마의 패권권을 지킨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건 또 무엇이야?’
평민이 원로원에게 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성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전쟁 도중에 평민은 로마를 버릴지 모릅니다. 로마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 모두 두려워하는 일이지요. 더 심각한 위험도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지요. 독재자의 호의에 끌린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귀족에 맞서거나 타르퀴니우스의 복귀를 돕게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이나 우려 수준에 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 평민은 어떤 나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적당한 시기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하는 바입니다. 구원책을 제시함으로써 평민을 달래야 합니다.
이런 대책을 챙기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니 때문에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끔찍한 요구에 굴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필요는 인간의 본성보다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안전을 확보했을 때에만 체면을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다른 도시에서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혜로 가장 유명한 도시 아테네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에 솔론의 지도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빚을 탕감해주기로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조치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이 제안을 내놓은 사람을 민중의 아첨꾼이라거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네인은 법을 제정하도록 권유받은 사람들의 배려심은 물론 그렇게 하자고 설득한 사람의 지혜를 칭송했습니다.
로마를 봅시다. 지금의 상황은 아테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짐승보다 야만적이고 잔인한 독재자에게 다시 넘어갈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인도적 조치를 펼쳐서 가난한 사람들이 적이 아니라 로마의 지지자가 된다면 제 정신을 가진 사람 중에서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습니까?
로마가 에트루리아의 위협에 시달려 성벽 안에 갇힌 채 생활필수품이 모자라 고생하면서 완전히 쪼그라들었을 때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죽음을 부르는 미친 사람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위기를 받아들이고 포르세나 왕에게 가장 저명한 가문의 아이들을 인질로 보내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런 일은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 일곱 구역을 에트루리아에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독재자를 심판하는 역할을 포르세나 왕이 맡게 했습니다. 이밖에 전쟁을 끝내는 대가로 에트루리아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적이 내세우는 조건을 무조건 거부하고 시민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를 이유로 전쟁을 선언하는 것은 결코 신중한 판단이 아닙니다. 시민들은 왕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을 때 로마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영광스러운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입니다. 독재자에게서 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해 귀족을 돕겠다며 열정을 쏟은 사람들입니다.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엄청난 열정을 보여줄 사람들입니다. 비록 생활 수단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나라를 위해 어떤 위험에라도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수치심 때문에 이런저런 걸 요구하기를 꺼리고 있다면 마땅히 귀족이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그들에게 필요한 걸 주어야 합니다. 귀족은 그들에게 돈은 주지 않으려고 하면서 군대에는 들어오라고 합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라를 지키는 일에 힘을 보탠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으면서 보편적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세상만방에 떠들고 있습니다. 가난은 증오가 아니라 연민을 받아야 할 일인데도 말입니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 태도입니까?”
발레리우스의 제안은 많은 사람들의 찬성을 얻었다. 이어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사비누스가 연단에 올라 정반대 주장을 내놓았다.
“빚을 청산해준다고 해서 평민에게서 반란 기질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서 부자로 퍼지기 때문에 더 위험해질 겁니다.
사람이 돈을 빼앗길 경우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전쟁에 나서 조국을 위해 봉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은 물론 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해서 모은 재산을 가장 게으르고 질서도 없는 사람 때문에 압수당하는 걸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시민 중에서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을 만족시키려고 더 나은 시민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가장 질이 나쁜 시민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를 실천한다면 국가는 가난한 사람이나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 의해 뒤집히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오히려 부자 또는 국가의 일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열등한 사람에게 모욕을 당해서 정의를 지키지 못할 때 뒤집어지는 법입니다.
계약을 빼앗긴 사람이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다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조용하고 무관심하게 받아들인다 합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런 선물을 준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명예로워지거나 안전해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공동체의 삶에서 교류가 사라져버릴 것이고, 상호 적대감만 가득 찰 것이고, 도시에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일자리가 부족해질 것입니다. 농부는 더 이상 씨를 뿌리거나 밭을 갈지 않을 것이고, 상인은 바다로 나가서 외국무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어떤 직업도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 중 누구도 돈을 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부자는 증오를 받게 되고, 산업은 파괴되고, 낭비하는 사람이 절약하는 사람보다 더 잘 살게 되고, 부당한 사람이 정당한 사람보다 더 잘 살게 되고, 남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갉아먹는 사람이 재산을 지키려는 사람보다 득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라에는 혼란이 일고, 끝없이 상호 살육전이 벌어지고, 모든 종류의 해악이 판을 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가장 부유한 사람도 자유를 잃고, 행운이 모자라는 사람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새 정부를 도입할 때 나쁜 관습이 자리 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국가의 운영 원칙이 무엇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생명이어야 합니다. 나라든 가정이든, 구성원이 쾌락만을 추구하며 사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습니다. 또 호의에 의해서든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든, 우수한 사람이 열등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습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의 욕망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채워지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더 큰 걸 원합니다. 이것은 끝없이 반복됩니다. 특히 대중일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은 개인일 경우 무법적인 행동을 저지르기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강력한 힘에 의해 억제됩니다. 하지만 서로 모이고, 같은 마음을 가진 동지끼리 힘을 키울 경우에는 언제든 이런 행동을 하려 합니다.
똑똑하지 못한 대중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한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힘을 키워서 강력해진 뒤에 격파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약할 때 처음부터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갖고 싶어 하는 걸 못 얻어 실망했을 때보다는 이미 얻은 걸 빼앗겼을 때 더 분노하는 법입니다.
여러 그리스 도시 사례를 들어봅시다. 중요한 시기에 사악한 관행이 시작되는 걸 허용했기 때문에 약해지고 말았지요. 그래서 그런 관행을 종식시키거나 폐지시킬 힘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겁니다. 그 결과 부끄럽고도 돌이킬 수 있는 재앙을 겪어야 했습니다.
로마는 개인과 비슷합니다. 원로원은 사람의 영혼을 닮았고, 민중은 그의 육체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만약 현명하지 못한 민중이 원로원을 다스리게 한다면, 영혼이 육체에 굴복하게 되고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휩싸여 사는 사람과 똑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입니다. 반면 원로원이 민중을 통치하고 이끈다면 영혼이 몸을 지배해서 가장 즐거운 삶이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삶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채 탕감을 받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로마 방어를 위해 무기를 들지 않으려 하더라도 그다지 큰 불행이 닥치지는 않을 겁니다.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그들이 전쟁에 참여한다고 해서 로마에 놀랄 정도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꾸로 그들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해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구조사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은 사람들은 전투에서 늘 뒤에 섭니다. 단순히 전선에 배치된 군대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됩니다. 적을 두렵게 만들 목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새총 말고는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실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시민에게 연민을 보이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갚을 수 없는 채무 부담을 덜어주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당신들은 조상으로부터 땅을 물려받았고 여러 전쟁에서 많은 전리품을 얻었고, 압수한 독재자의 재산을 나눠 받았는데도 어떻게 해서 가난해졌는가?
가난한 시민들은 배만 불리면서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즐거움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불명예이고 상처일 뿐입니다. 만약 그들이 도시를 떠나 자발적으로 독재자에게 간다면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 운이 나빠서 재산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사재를 털어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채권자는 그렇게 하는 걸 최선이라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돈이 아니라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고귀한 부채 상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불운한 사람을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도움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한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조차 정말 가치 있는 사람과 똑같은 몫을 갖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특정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면서 돈을 부담한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감사 인사조차 못 받게 한다면 로마의 미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로마에 도움이 될 일을 논의를 통해 적당한 시기에 자발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면, 마치 로마가 점령당했거나 그런 운명을 겪을 처지에 놓여 있는 것처럼 자발적 판단과 반대로 한다면, 그래서 최악의 상황을 겪어야 할 위기에 몰린다면 조상들이 고난을 통해 획득해 후손에게 물려준 패권을 행사하고 있는 로마에는 통탄할 일일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간청에 굴복하기보다는 차라리 라틴 도시들의 명령을 받아들여 전쟁을 하지 않는 게 로마에는 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이 신전을 건설하고 1년 내내 희생제례를 거행해 영광을 드높인 ‘믿음의 신’을 없애버리는 게 나을 것입니다.
제가 건의하는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똑같은 조건으로 전쟁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자. 둘째, 나라를 위해 무기를 든다면서 어떤 특별한 조건을 내세우는 사람은 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은 무기를 들더라도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로마에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린 우리에게 굴복해서 등록하게 될 것입니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추겨주면 무례해지고, 위협받으면 위축되는 게 일상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