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비아 아피아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출발점은 카라칼라 욕장 바로 앞에 있는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의 성당이다. 성당 앞으로 여러 도로가 교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숲속 길처럼 보이는 비아 디 포르타 산 세바스티아노 거리를 따라 가본다.
10분 정도 1㎞를 걸으면 작은 개선문과 오래 된 성벽 그리고 성문이 나타난다. 드루수스 개선문과 3세기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세운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포르타 산 세바스티아노 즉 산 세바스티아노 문이다. 문의 옛 이름은 포르타 아피아였다. 포르타 산 세바스티아노를 지나 길을 건너가면 옛날의 비아 아피아, 지금은 비아 아피아 안티카가 시작된다.
삼거리에는 캄푸스 레디쿨리라고 불리는 땅이 있었다. 이곳에는 신전이 하나 있었다. ‘무사귀향의 신’인 레디쿨루스에게 봉헌한 신전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신전을 건설한 것은 로마로 쳐들어온 한니발 때문이었다.
BC 211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 4만 5천~6만여 명을 죽이는 등 여러 전투에서 연전연승했다. 그는 급기야 대군을 이끌고 로마 앞에까지 나타났다. 로마는 BC 390년 갈리아족에게 도시를 빼앗긴 이후 170여 년 만에 다시 외적에게 무릎을 꿇을 위기에 몰렸다.
전설에 따르면 이때 레디쿨루스 신이 나타나 “당장 물러가라”고 호통을 쳐서 한니발을 쫓아냈다. 어떤 책에는 레디쿨루스 신이 우박의 형태로 나타나 적장을 몰아냈다고 적혀 있다. 4세기 로마 역사학자 페스투스가 쓴 『로마사 요약』에도 이 일화가 소개돼 있다. ‘레디쿨루스 신전은 포르타 카페나 바깥에 있다. 카푸아에서 로마로 쳐들어온 한니발은 이 지점에서 돌아갔다. 어떤 불길한 조짐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니발이 물러간 뒤 로마인들은 레디쿨루스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뜻에서 신전을 지어 바쳤다. 이곳에 모신 신은 ‘적을 물러나게 해서 로마를 보호한’ 레디쿨루스 투타누스 신이었다.
레디쿨루스 신전은 고대 로마 시대에 이집트, 그리스, 동방 등 위험한 곳으로 오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안전을 기원하면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던 곳이었다.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잠시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거꾸로 안전하게 돌아올 경우 제물을 다시 바치면서 무사히 귀국하게 도와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성소였다.
캄푸스 레디쿨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멀리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이 보였다. 그러나 이곳을 벗어나면 더 이상 로마를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로마의 끝’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쉬면서 안전을 기원하는 신전을 만들 장소로는 캄푸스 레디쿨리가 최적이었다.
로마의 성당 이야기를 하면서 고대의 군사도로였던 비아 아피아와 레디쿨루스 신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비아 아피아와 비아 아르데아티나가 갈라지는 삼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성 베드로와 예수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던 도중 체포당할 위기에 몰린 성 베드로가 달아나다 예수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다시 로마로 돌아간 곳이 바로 비아 아피아였다. 그가 예수를 보고 “쿠오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했다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 곳이다. 성 베드로의 행적을 담은 2세기 기록 『베드로 행록』을 보면 이 장면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온다.
비아 아피아와 비아 아르데아티나가 갈라지는 삼거리 모퉁이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성당이 하나 서 있다. 성당의 공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레 피안티 성당이다. ‘비탄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산타 마리아 인 팔미스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는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성당이 지어진 곳은 바로 쿠오바디스의 현장이다. 성 베드로가 기독교 탄압을 피해 로마에서 달아나다 부활한 예수를 만난 장소라는 것이다. 산탈레시오 알라벤티노 수도원에 있던 9세기 문서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문서에는 라틴어로 ‘도미누스 아파루이트’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주 예수가 나타났던 장소’라는 뜻이다.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이곳에 성당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 세운 성당은 새로 만든 게 아니라 레디쿨루스 신전을 부수지 않고 단순히 기독교 식으로 바꾼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
16세기 들어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은 관리 소홀 때문에 매우 황폐해졌다. 이 모습을 보고 실망한 추기경 톨레도이 프란치스코가 성당 재건 공사를 시작했고, 여기에서 미사를 거행할 사제를 파견했다. 이어 1620년에는 한 사제가 기금을 모아 완벽한 재건공사를 실시했다. 오늘날 성당의 외관은 이 때 만들어졌다.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 중앙의 대리석 평판에는 발자국 모양 두 개가 찍혀 있다. 예수가 남긴 기적의 흔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수가 베드로를 만난 뒤 하늘로 오르려 할 때 땅바닥에 찍은 발자국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발자국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걸어 다녀 평판이 훼손 위기에 몰리는 바람에 지금은 금속판을 덮어 보호하고 있다.
발자국은 사실 고대 로마 시대에 여행을 잘 다녀오게 해달라고 레디쿨루스 신에게 바친 봉헌물인 ‘엑스 보토’였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나중에 기독교에서 예수 발자국으로 둔갑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성당의 이름에 나오는 팔미스는 손바닥, 종려나무를 뜻하는 ‘팔마(palma)’의 복수다. 여기에서는 예수의 발자국을 뜻한다. 발자국이 유명해지자 성당은 돈을 벌기 위한 장사에 이용했다. 정면 현관문 위에 성당의 장삿속을 설명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