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우스는 민회를 소집했다. 세르빌리우스가 독재관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 많은 사람이 모였다. 강제로 군 복무를 하게 된 평민은 절망스러운 심정이었다.
발레리우스는 연단에 올랐다.
“로마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발레리우스 가문의 통치를 받을 때 항상 기뻐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문 덕분에 여러분은 가혹한 독재자에게서 해방됐습니다. 가장 민주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면 합리적인 결과를 얻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원래 주어졌던 자유를 내가 보장할 것이라는 내용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킨다고 믿을 합리적인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는 속임수를 쓸 필요가 없을 만큼 성숙한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공직을 맡아 충분히 명예도 누렸습니다. 나머지 인생을 다른 곳이 아니라 여러분들과 함께 지낼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속임수를 쓴다면 재판을 받을 각오도 돼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장황한 연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는 꼭 말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고통 받은 사람은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연한 현상입니다.
집정관들이 여러분을 전쟁터에 데리고 가려는 목적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원로원에서 얻어주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모습을 여러분은 많이 봤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두 가지 논리를 들어 여러분을 설득하겠습니다.
먼저 독재관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원로원은 평민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로 평가받는 나를 독재관으로 임명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로원이 나와 뜻을 같이 하지 않았다면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독재관 자리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알면서도 그들의 속임수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과 손을 잡고 여러분에게 피해를 주려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 뜻대로 처리하십시오. 나를 역사상 가장 타락한 사람으로 취급하십시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서 의심을 걷어내십시오. 여러분의 분노를 친구가 아니라 적에게 돌리십시오. 적은 우리의 도시를 빼앗으려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자유시민이 아니라 노예로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모든 종류의 고통을 떠안기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습니다.
용기를 갖고 그들에게 맞섭시다. 그들에게 로마인의 힘을 보여줍시다. 내홍 탓에 지쳐 있더라도 조화를 이룬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다는 걸 보여줍시다. 적은 우리의 단합된 힘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무모한 전쟁을 시도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쟁을 시도한 사람들이 볼스키 인이고 사비니 인이라는 점을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과거 전쟁에서 눌렀던 족속이라는 걸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조상들보다 몸집이 더 크지도 않고 더 용감하지도 않다는 걸 생각하십시오. 볼스키 인과 사비니 인은 그러면서도 내홍을 겪는 걸 기회로 삼아 우리에게 모욕을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적을 물리치면 원로원이 그에 걸맞은 상을 내릴 것이라고 나는 약속합니다. 채무와 관련한 논란을 정리하고, 여러분이 합리적으로 요구하는 걸 허용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전쟁에서 보여주는 용기에 걸맞은 방식으로 그걸 해결할 것입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모든 로마 시민의 재산, 권리 그리고 인신은 빚이나 다른 이유 때문에 압수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용감하게 싸우는 사람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명예는 로마가 여전히 튼튼히 서 있다는 사실이 될 것입니다.
동료가 바치는 영광스러운 찬사가 그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주는 보상만으로도 그의 재산을 회복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그 영광으로 찬란히 빛날 것입니다.
내가 위험에 앞장서려는 모습이 여러분에게 모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 중에서 가장 강건한 사람처럼 조국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모든 평민은 열광적으로 발레리우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이렇게 믿었다.
“우리는 더 이상 억압당하지 않을 거야.”
평민은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했다. 즉시 10개 군단 병력이 모였다. 각 군단은 4천 명으로 구성됐다. 두 집정관이 이 중에서 3개 군단을 일부 기병대를 직접 지휘했다. 4개 군단과 나머지 기병대는 독재관이 맡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로마군은 서둘러 출정했다. 티투스 베투리우스는 아이퀴, 아울루스 베르기니우스는 볼스키, 독재관 발레리우스는 사비니를 상대하기로 했다. 로마는 티투스 라르키우스가 노병과 일부 정예병을 지휘해 지키기로 했다.
볼스키와의 전쟁은 순식간에 끝났다. 적은 병력에서 우세한 점만 믿고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서둘러 싸우러 달려 나왔다. 그리고 로마군을 선제공격했다. 그들은 용감히 싸웠지만 큰 피해를 보게 됐고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로마군은 볼스키의 진지를 점령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시인 벨리트라이를 포위했다.
사비니의 자존심도 비슷한 방법으로 짧은 시간에 망가져버렸다. 로마와 사비니는 단 한 번의 격돌로 전쟁을 마무리했다. 로마군은 전쟁에서 이긴 뒤 사비니의 농촌을 약탈했다. 일부 작은 도시도 함락했다. 병사들은 많은 사비니 사람을 끌고 갔고, 많은 물건도 전리품으로 챙겼다.
아이퀴는 사비니와 볼스키가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주 좋은 자리에 진지를 차렸다. 그리고 전투를 하러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밀리에 조금씩 산과 숲을 통해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를 온전하게 지킬 수 없었다. 로마군이 아주 단호하면서도 재빨리 그들을 습격해 진지를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아이퀴는 라틴의 영토에서 달아났고, 점령했던 여로 도시를 되돌려주어야 했다. 또 도시를 지키려고 용감하게 싸웠던 라틴 사람들을 풀어줘야 했다.
발레리우스는 계획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관습에 따라 개선식을 거행했다. 원로원은 평민이 약속 이행을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 때가 이르다고 반대했지만, 발레리우스는 즉시 군대를 해산해 평민을 병역 의무에서 풀어줬다.
발레리우스는 볼스키로부터 빼앗은 땅을 지킬 식민지단을 빈민 중에서 골라 파견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점령한 땅을 지킬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 반란을 일으킬 세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한 발레리우스는 원로원에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여러분은 최근 전쟁에서 평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십시오.”
원로원은 그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전처럼 온건파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젊은 의원들과 과격한 의원들은 그의 요구에 반대했다. 오히려 발레리우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 가문은 평민의 아첨꾼이오. 사악한 법을 꾸민 족속이오. 당신 가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민회는 도리어 귀족의 힘을 완전히 파멸시켜버렸을 뿐이오.”
발레리우스는 원로원의 도발에 분개했다. 그는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일부는 화가 났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일부는 탁월한 예지력에서 나온 정확한 분석이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앞으로 여러분이 겪게 될 운명이 한탄스러울 뿐이오. 두고 보시오. 어떤 불행한 일이 여러분에게 벌어지는지.”
발레리우스는 곧바로 원로원에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민회를 소집했다. 그는 이렇게 연설했다.
“로마 시민 여러분, 이번 전쟁에서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참전해서 놀라운 용기를 발휘해 끝까지 싸워준 것에 대해 나는 엄청난 책임을 느낍니다. 나는 원로원의 이름을 걸고 했던 약속을 지킴으로써 여러분에게 보답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원로원 사이에서 자문관이자 심판 역할을 맡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존재하는 불화를 조화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찾는 사람들이 나를 방해했습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보다 수와 힘에서 앞서는 젊은이들이 나를 방해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늙은이입니다. 나의 힘은 자문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육체적 행동을 행사할 처지가 아닙니다. 로마를 걱정한다고 했던 게 마치 개인적 불만을 표출한 게 돼버렸습니다. 원로원은 나보고 여러분을 꼬드겨 당파를 만든다고 비난했습니다. 여러분에게 호의를 베푼 걸 여러분을 엉터리로 옹호한다고 몰아붙였습니다.
여러분, 만약 민중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도 원로원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당신들이 약속을 어겼다고’고 말할 것입니다. 그건 거짓말도 속임수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지켜지지 않은 것은 원로원이 여러분에게 한 약속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말을 꼭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승낙을 받지 못한 게 아닙니다. 나도, 여러분도 똑같이 속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보다 내가 더 많이 속았습니다. 나의 잘못 때문에 여러분 모두가 속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명예에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나는 개인적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원로원 동의를 받지도 않고 적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여러분 중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 원로원은 법을 어기지 말라고 해놓고도 시민의 재산을 압수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했습니다.
게다가 원로원은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해산했다고 나를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여러분을 적의 영토에 그대로 둔 채 야외에서 잠을 자게 하고 끝없이 행군하게 만들라고 했습니다.
나는 또한 볼스키에 식민지단을 보낸 문제 때문에 비난을 받았습니다. 귀족이나 기사 계급에게 넓고 비옥한 땅을 주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분노하는 것은 군대를 모을 때 부유한 평민 400명을 기병대에 포함시켰다는 점입니다.
젊었을 때 이런 대접을 받았다면 모욕한 사람들에게 내 어떤 사람인지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일흔 살을 넘은 노인입니다. 더 이상 제 몸뚱이 하나 지킬 힘도 없습니다.
이제 나에게는 로마의 불화를 중재할 힘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공직을 내려놓겠습니다. 나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손에 나를 맡기겠습니다. 그들이 옳다고 믿는 바대로 나를 처리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