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야, 보물을 내놓아라!

by leo



사람을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악마는 세상 곳곳에 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사막 지역에 있던 ‘죽음의 계곡’의 동굴도 그가 갖고 있는 집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악마에게는 시체를 먹고 사는 ‘굴’이라는 부하 여러 마리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굴은 원래 보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로 끔찍하고 무서운 모습의 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유혹해서 잡아먹으러 갈 때에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습니다. 까마귀로 변신하기도 했고 낙타로 변신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람의 친척이나 친구처럼 변신했습니다. 외모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목소리도 사람과 똑같이 바꿀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계곡’ 깊숙한 곳에 있는 동굴에도 굴이 한 마리 살았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죽음의 계곡’ 근처를 지나가면 굴은 아주 친한 친구나 친척의 모습으로 변신해 나타나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곤 했습니다. 굴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굴을 따라갔습니다. 처음에는 동굴에 들어가 굴에게서 좋은 대접을 받지만 나중에는 잠을 자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계곡’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스파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시타라라는 소녀가 살았습니다. 재치가 넘치고 용감했고, 모험을 좋아하는 소녀였습니다. 시타라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식이 많은 할아버지에게서 굴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언젠가 사악한 굴을 만나 혼을 내고 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stone-arch-828730_1920.jpg



어느 날 시타라는 낙타를 몰고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사막에 갔다가 ‘죽음의 계곡’ 인근을 지나게 됐습니다.


“아버지, 저기가 어딘가요?”


“할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던 죽음의 계곡이란다.”


시타라는 죽음의 계곡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혼자서 그곳에 가서 굴을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잠든 사이 소녀는 삶지않은 계란 하나와 잘 부스러지는 소금 한 덩어리를 챙겨 계곡으로 갔습니다. 계곡 언저리에 들어서자마자 써늘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타라! 아버지란다. 왜 한밤중에 혼자 천막에서 나갔니? 길을 잃어 헤매다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어서 여기로 오너라.”


시타라는 할아버지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사악한 굴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모습을 변신하고 목소리도 바꿀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아버지처럼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사실은 굴이라는 걸 금세 눈치 챘습니다.


“너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야.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쟁이일 뿐이야. 굳이 나를 속이려 할 필요는 없어. 내가 여기 온 건 너를 만나기 위해서이니 말이야.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 동물과 힘을 겨뤄본 적이 있지. 하지만 아무도 나를 이기지 못했어. 내가 여기 온 건 너를 만나서 너와 힘을 겨뤄보고 싶어서야.”


굴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말을 어린 소녀에게서 듣고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시타라를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위아래로 훑어보고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기도 했습니다. 주먹이 얼마나 큰지 살펴보기도 했고 발이 얼마나 튼튼한지 재어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딸아, 너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구나.”


“겉모습은 사람을 속이는 법이야. 내 힘이 얼마나 센지 증거를 보여주지.”

시타라는 계곡 한가운데로 천천히 흘러가는 작은 개울에서 적당한 크기의 돌 하나를 주워 굴에게 건넸습니다.


“이 돌은 개울에 오래 담겨 있어서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돌을 꼭 짜서 물을 뽑아내 보도록 해.”


굴은 시타라가 시키는 대로 돌을 주먹에 쥐고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돌에서 물을 짜낼 수는 없었습니다.


“돌을 부술 수는 있어 하지만 돌에서 물을 짜낸다는 건 하느님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야.”


“아니야. 아주 쉬운 일이야.”


시타라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굴에게서 돌을 빼앗다시피 돌려받았습니다. 소녀는 주먹에 돌을 꽉 쥐고는 천천히 힘을 주었습니다. 잠시 후 빠지직 하면서 돌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녀의 손바닥에서 물기가 흘러내렸습니다. 사실 시타라는 주먹에 계란을 몰래 숨기고 있었습니다. 깨진 건 돌이 아니라 계란이었습니다.


“자! 보라고!”


굴은 소스라치게 놀라 저도 모르게 뒤로 자빠졌습니다. 정말 시타라의 손가락 사이에서는 끈적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굴은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시타라는 서둘러 돌을 개울에 버리고 끈적해진 손을 씻은 뒤 다른 돌을 땅바닥에서 하나 주웠습니다.


“이 돌은 땅에 오랫동안 굴러다녔어. 그래서 소금을 머금고 있지. 손으로 꼭 쥐면 소금을 짜낼 수 있을 거야.”


굴은 이번에도 돌을 건네받고는 머뭇거렸습니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마른 돌에서 소금을 짜낼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손바닥에 얹힌 돌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머뭇거리고 주저했습니다. 시타라가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리 줘.”


시타라는 굴에게서 돌을 빼앗아 손에 꽉 쥐고 조금씩 힘을 주었습니다. 정말 힘들게 주먹을 쥐는 것처럼 표정도 잔뜩 찡그렸습니다. 잠시 후 시타라의 손에서 빠시시 하면서 돌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하얀 소금이 손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굴은 시타라가 건네준 깨진 돌 가루를 입에 넣어 맛을 봤습니다. 정말 바다에서만 만들 수 있는 아주 짠 소금이었습니다.


시타라의 엄청난 힘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굴은 무섭기도 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엄청나게 힘이 센 소녀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건대 갑자기 괴물로 변하더라도 소녀에게 겁을 줄 수 없을 게 분명했습니다. 굴은 할 수 없이 기회를 찾을 때까지 친구처럼 지내는 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소녀로구나. 내 집에 잠시 놀러가는 건 어때? 여기서 멀지 않아. 맛있는 음식도 많으니 하룻밤 쉬어가도 돼. 그러면 편안하게 다시 여행할 수 있을 거야?”


“좋아, 네 제안을 받아들일게. 하지만 명심해. 나는 누구라도 존경심을 보이지 않으면 못 참는 성격이라는 걸 말이야. 나는 사람이든 악마든 가리지 않고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어. 네 머리속의 계획이 무엇인지 미리 알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 나를 동굴로 데려가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서둘러 접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네가 죽음보다 더 크고 무서운 고통을 받게 될 거야.”


“내가 모시는 악마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네가 동굴에서 불편을 겪는 일은 없을 거야. 진심으로 충실하게 호의를 베풀 거야.”


시타라는 굴을 따라 죽음의 계곡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써늘하고 으스스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계곡 곳곳에서 풍기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이곳에 무시무시한 존재가 살고 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겁이라는 걸 모르는 시타라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험한 벼랑을 건너고 깊은 협곡을 지난 끝에 마침내 큰 동굴에 도착했습니다. 동굴 안에서는 아주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살아. 이곳에서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



굴은 시타라를 동굴 안의 여러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중 한 방에는 온갖 종류의 곡식이 담긴 커다란 포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굴이 지나가던 곡식 상인들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굴은 지름이 2m를 넘어보이는 커다란 곡식 포대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이 정도면 네 식사로 충분할 거야. 너처럼 힘이 센 소녀는 식욕도 엄청날 테지.”


“물론이지.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쌀 무게만큼이나 되는 양 한 마리를 먹어 배가 불러. 물론 네 호의를 생각해 맛을 보기는 할게.”


“너는 생쌀이나 생고기를 먹지 않을 테니 밥을 해야겠군. 나는 밖에 나가서 불을 땔 나무를 챙겨오도록 할게. 너는 쌀 포대를 들고 가서 개울에서 씻어오도록 해.”


시타라는 굴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대를 개울로 끌고 갔습니다. 실제로 힘이 세지 않았기 때문에 지름이 2m나 되는 곡식 포대를 운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소녀는 한참이나 낑낑거리며 고생한 끝에 한 시간만에 겨우 개울에 갈 수 있었습니다. 개울은동굴 근처에서 4~5m 정도만 땅 위로 흐르다가 나중에는 땅 밑으로 들어가 지하로 흘렀습니다.


‘이 포대는 어른 서너 명이라도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 어떻게 하지? 내가 쩔쩔대는 모습을 보면 굴은 당장 나를 잡아먹어 버릴 텐데.’


개울가에 앉아 한참 고민하던 시타라에게 아주 좋은 계획이 떠올랐습니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막대기로 운하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개울이 땅 위로 흐르는 곳에서 굴이 사는 동굴로 이어지는 운하였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구해 동굴로 돌아온 굴이 소녀를 보고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밥을 하게 쌀을 씻어오라고 했는데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어. 지금 뭣 하는 거지? 설마 포대를 동굴까지 들고 올 힘이 없는 거야?”


“그럴 리가? 다만 네가 정말 친절하게 대해줘서 감사의 표시를 하려는 거야. 처음에는 개울의 물을 모두 포대에 넣어가려고 했어. 그런데 포대가 너무 작아서 그럴 수 없더라고. 할 수 없이 동굴까지 운하를 파기로 마음을 바꿨어. 그래야 앞으로 네가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덜 수 있지 않겠니? 귀찮게 하지 말고 동굴에 가서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렴.”


“말도 안 돼. 굳이 운하를 만들 필요는 없어. 그냥 내가 포대를 들고 갈게. 동굴에 가서 저녁을 먹고 얼른 자도록 해.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수 있을 거야.”


시타라는 못이기는 척 하면서 굴의 말대로 동굴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음식으로 차려진 저녁을 맛있게 먹은 뒤 화려한 비단 이불과 베개가 있는 침대에 누웠습니다. 굴이 지나가던 포목 상인에게서 빼앗은 물건으로 꾸민 침대였습니다. 굴의 침대는 시타라의 침대에서 동굴 반대쪽에 있었습니다.


굴이 침대로 돌아간 뒤에도 시타라는 쉽게 잠들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굴 몰래 조용히 일어나 베개를 침대 가운데에 길게 놓고는 이불을 뒤집어 씌워 마치 사람이 자고 있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리고 굴이 어떤 짓을 하는지 지켜보려고 동굴 한쪽의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습니다.


굴은 해가 뜨기 직전에 아직 어두울 때 눈을 떴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시타라의 침대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소녀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굴은 동굴 한쪽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돌 몽둥이를 두 손으로 집어 들었습니다. 굵기가 어른 다리 만한 몽둥이였습니다. 그는 시타라의 머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침대 부분을 몽둥이로 아주 세게 내리쳤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일곱 번이나 연거푸 내리쳤습니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조용히 웃고는 침대로 돌아갔습니다.


‘이 정도라면 틀림없이 죽었겠지.’


잠시 후 동굴 밖에서 해가 환하게 밝았습니다. 굴은 환하게 웃으며 느긋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마치 아주 잘 잤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습니다. 시타라의 침대로 걸어가려던 그는 너무 놀라 쿵 하며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시타라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더니 옷을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녀는 굴에게 걸어오더니 아주 귀찮다는 목소리로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이 동굴에는 무슨 벌레가 이렇게 많니? 밤새 나를 괴롭히더라니까. 한 일곱 번은 물어뜯은 것 같아. 곤충은 정말 귀찮아. 나를 죽일 수는 없지만 잠을 못 자게 하니까 말이야.”


시타라가 불평하는 이야기를 들은 굴은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당혹스러웠습니다. 잠시 후에는 가슴을 두 손으로 쥐어짜는 것 같은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시타라가 일곱 번이라는 말을 한 게 그의 두 다리와 두 팔을 덜덜 떨 게 만들었습니다. 한 번만 내리쳐도 코끼리 한 마리를 죽일 수 있는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시타라에게는 겨우 곤충이 물어뜯은 것에 불과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두려웠습니다.


‘저 녀석 앞에서는 절대 안전할 수 없어.’


굴은 시타라에게 잘 가라는 작별인사를 남기지도 않고 그대로 동굴 밖으로 달아나더니 하늘 높이 날아가버렸습니다. 시타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굴이 도망가는 모습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혹시 굴이 거짓말을 눈치 채고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럴 경우에 대비해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하늘로 올라간 굴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타라던 굴이 살던 동굴의 새 주인이 됐습니다. 소녀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동굴에 가득 찬 보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보물을 집으로 안전하게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camels-1149803.jpg



시타라는 동굴에서 나와 일단 이스파한으로 돌아간 뒤 아버지, 할아버지와 상의하기로 했습니다. 소녀가 죽음의 계곡 입구까지 나왔을 때 마침 다른 마을에서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아버지가 낙타와 당나귀 여러 마리를 이끌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딸을 헤어졌던 곳에서 다시 만나 정말 기뻤습니다. 시타라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한 이야기를 해 주고는 온갖 보물이 쌓여 있는 동굴로 데리고 갔습니다.


시타라와 아버지는 낙타와 당나귀 등에 실은 짐을 모두 버리고 동굴에 쌓인 보물을 실었습니다. 그들은 마을에 돌아간 뒤 굴에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재산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많은 돈과 보물이이 남아 마을에게 가장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소녀의 용기와 지혜 덕분에 얻은 재산이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