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던 엘리자베스는 아주 똑똑하고 용감한 소녀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집에서는 부모 말을 잘 들었습니다. 소녀는 이야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 해 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여덟 살 무렵 시골 마을에 사는 농부 삼촌 집에서 여름을 보내게 됐습니다. 소녀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소를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아이들은 ‘아홉 언덕’ 인근에 소를 몰고 나가 풀어놓곤 했습니다.
시골 마을에는 할아버지 목동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종종 아이들과 함께 소를 몰고 언덕에 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는 아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됐습니다.
할아버지는 ‘아홉 언덕’ 이야기를 특히 자주 해주었습니다. 옛날 지하 세계에 살던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에서 거인이 행패를 부리자 난쟁이들이 언덕 아래 지하세계로 내려가 살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아홉 언덕 아래로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항상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운이 좋거나 영리한 사람이 난쟁이의 창 달린 모자를 얻으면 안전하게 그곳에 갈 수 있단다. 난쟁이의 모자를 쓰는 사람은 모자 주인을 하인으로 부릴 수 있게 되는 거야.”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아지는 축제날이 왔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밤에 아홉 언덕으로 몰래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지하세계에 사는 난쟁이들이 밤마다 올라와 춤을 추며 노는 장소라고 할아버지가 말하던 곳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언덕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마침내 열두 시가 됐습니다. 갑자기 음악과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속삭이는 소리와 두런두런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윙윙거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잠시 후 난쟁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일부는 신나게 달리고, 일부는 빙빙 돌며 춤을 추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리는 들리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난쟁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그들을 보이지 않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냥 달빛만 풀밭에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난쟁이 세 명이 엘리자베스 근처로 뛰어왔습니다. 그들은 소녀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들 모자를 하늘로 던지며 즐겁게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동료의 모자를 잡더니 멀리 던져 버렸습니다. 모자는 마침 엘리자베스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소녀는 모자를 붙잡아 머리에 썼습니다. 그 순간 수많은 난쟁이가 즐겁게 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난쟁이 세 명은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갔습니다. 소녀는 모자를 꼭 붙잡았습니다. 난쟁이들은 모자를 빼앗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소녀라도 그들과 비교하면 거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난쟁이들은 기껏해야 무릎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모자의 주인은 공손하게 엘리자베스에게 빌었습니다.
“모자를 돌려줄 수 있겠어요?”
“아니오! 당신은 다시는 모자를 쓰지 못할 거예요. 이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돼요. 나의 하인이 되는 거지요. 당신과 함께 지하세계로 내려가서 난쟁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군요.”
난쟁이는 울면서 사정했습니다. 통곡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만 해요. 당신은 내 하인이에요. 나는 당신과 함께 여행을 할 생각이에요.”
결국 난쟁이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난쟁이들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늘 쓰고 다니던 낡은 모자를 던져버리고는 난쟁이에게서 빼앗은 모자를 썼습니다. 벗겨지지 않게 머리에 꼭 눌러 썼습니다.
닭이 세 차례 울었습니다. 작은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아주 가느다란 새벽빛이 동쪽에서 하늘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언덕이 갈라지더니 문처럼 열렸습니다. 난쟁이들은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엘리자베스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모두 안에 들어가자 언덕은 다시 닫혔습니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언덕 아래 지하세계로 들어간 난쟁이들은 넓은 은색 통에 앉았습니다. 통 하나에는 난쟁이 1천 명이 앉을 수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도 큰 통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통에 들어간 난쟁이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엘리자베스에게 깔리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개의 통은 차례차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통을 타고 내려가면서 지하세계의 벽을 봤습니다. 정말 화려한 벽이어서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벽은 진주,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녀는 정말 즐거워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아주 오랫동안 잤습니다. 깨어났을 때에는 정말 아름다운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침대였습니다. 침대가 놓인 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방이었습니다. 하인 난쟁이는 파리를 쫓으려고 부채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갈색 비단으로 만든 멋진 새 옷을 입었습니다. 하얀 리본을 단 빨간색 가죽 구두도 신었습니다. 시골 마을은 물론 도시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유리 구두도 여러 켤레 있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구두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멋진 새 옷을 입을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난쟁이는 번개처럼 날아가더니 음료수와 우유, 맛있어 보이는 하얀 빵과 과일, 그리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여러 음식으로 차린 아침식사를 들고 왔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할아버지 목동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하인 난쟁이는 누구보다 순종적이었습니다. 고개를 한 번만 끄덕이면 충분했습니다. 난쟁이는 정말 똑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침실은 여러 가지 보석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천장에는 야구공만큼이나 큰 다이아몬드 수십 개가 박혀 침실을 환히 밝혀주었습니다. 이곳에는 빛을 밝혀줄 해도 달도 별도 없었습니다. 램프와 초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난쟁이들은 밝은 보석 속에서 살았습니다. 금과 은은 흘러 넘쳤습니다. 난쟁이들은 그걸 이용해서 빛을 만들어 밤낮을 조절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난쟁이들은 가장 밝고 가장 깨끗한 보석으로 집을 장식했습니다. 큰 길과 지하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강당과 축제장에도 보석을 달아 영원히 빛나게 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아침식사를 마치자 하인 난쟁이는 벽에 달린 작은 문을 열었습니다. 아름다운 은잔, 금잔과 금접시, 은접시가 들어 있는 찬장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금화가 가득 찬 통과 보석과 귀금속이 들어 있는 상자도 있었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그림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책도 한두 권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보석으로 만든 물건들을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아침을 보냈습니다. 점심 무렵 종이 울렸습니다.
“주인님, 혼자 점심을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많은 친구와 함께 드시겠습니까?”
“물론 친구들과 함께 먹는 게 좋겠지요.”
하인은 엘리자베스를 밖으로 데리고 연회장으로 갔습니다. 연회장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밝게 반짝이는 보석뿐이었습니다. 난쟁이들은 바위 틈새로 바삐 오가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종이 왜 울렸는지 궁금했습니다.
“친구들은 어디에 있지요?”
잠시 후 다시 종이 울렸습니다. 연회장 문이 활짝 열리더니 멋진 옷을 차려입은 수많은 난쟁이가 여러 개의 문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연회장에는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그릇으로 덮인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식탁에는 정말 맛있어 보이는 고기와 과일, 음료수가 놓여 있었습니다. 식탁을 따라 의자들이 놓였습니다. 난쟁이들은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지하세계 난쟁이 나라의 왕이 앞으로 나와 엘리자베스에게 인사를 하고는 식탁에 앉게 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음악이 연회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멋진 새들은 하늘을 날며 달콤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진짜 새가 아니라 난쟁이들이 정교하게 만든 인공 새였습니다.
남녀 하인들은 식탁에서 시중을 들면서 금잔, 은접시, 과일이 가득 든 크리스탈 통을 이곳저곳에 가져다놓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음식을 나르는 하인들은 난쟁이가 아니라 엘리자베스 같은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지하세계에 끌려온 아이들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난쟁이들과 다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짧은 흰색 코트와 재킷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유리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발자국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머리에는 푸른색 모자를 썼고 허리에는 은색 허리띠를 둘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어린이들이 왜 여기 내려와서 난쟁이들의 시중을 드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즐겁고 행복해보였습니다. 옷도 잘 차려 입고 있었고 뺨은 붉었습니다.
‘여기서 잘 살지 못하는 건 아니구나. 지상에서 소나 다른 가축을 몰고 다니던 내가 더 불쌍했던 거로구나.’
엘리자베스는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맛있게 먹고 마셨습니다. 소녀는 하인 난쟁이에게 지하세계의 모든 이야기를 다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왕이 종을 울렸습니다. 순식간에 식탁과 의자가 사라졌습니다.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오더니 신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난쟁이들은 정말 활기차고 흥겨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잠시도 조용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난쟁이들은 빙빙 돌며 즐겁게 춤을 췄습니다. 엘리자베스 옆에 앉은 예쁜 소녀들도 나가서 빙빙 돌며 춤을 췄습니다. 엘리자베스도 함께 춤을 췄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매일 그곳에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음악과 춤이 끝나면 네 시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다시 종이 울렸습니다. 난쟁이들은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다들 일을 하러 가거나 다른 즐거움을 찾으러 갔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자정에는, 특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언덕으로 올라가 지상에서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지하세계에 내려간 뒤 첫 주에는 침실과 연회장만 오갔습니다. 나중에는 산책을 했습니다. 하인 난쟁이에게 모든 걸 보여주고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산책로는 여러 방향으로 나 있었고 끝을 알 수 없었습니다.
난쟁이들이 살던 곳은 정말 넓었습니다. 넓은 초원과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여러 개의 언덕과 호수, 섬이 보였습니다. 나무,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작은 길들이 나 있었습니다.
언덕의 꽃은 정말 화려하고 향기가 좋았습니다. 새들의 노래 소리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언제나 선선한 미풍이 불었습니다. 날씨는 늘 맑고 쾌청했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습니다.
호수의 파도는 잔잔해서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늘 아름다운 작은 소리가 들렸고 하얀 백조처럼 배가 떠다녔습니다. 사람들이 물을 건널 때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배는 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초지와 평원이지만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난쟁이들도 살고 있는 언덕을 떠나 멀리로는 잘 가지 않았습니다. 가끔 일부 난쟁이가 지나가곤 했습니다. 이런 일은 한 달에 한 번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하세계에 간 지 열 달 정도 됐을 무렵 엘리자베스는 하얀 옷을 입은 난쟁이가 바위 사이로 미끄러지더니 사라지는 걸 봤습니다. 소녀는 하인 난쟁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하인처럼 하얀 옷을 입은 저 사람은 누구지?”
“지하세계에 그런 사람이 여러 명 있습니다. 지하세계에서도 2천㎞ 아래에 살고 있는데, 연회장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왕의 생일에 가끔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난쟁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수천 살은 넘었을 거라고 하인 난쟁이는 말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걸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난쟁이들은 이들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시킬 때만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들은 학교에서 읽기, 쓰기, 계산, 작곡, 역사, 이야기는 물론 여러 가지 우아한 일을 가르쳤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현명한 사람’ 이야기를 하다가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소녀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갔습니다. 정말 성실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한 화가이자 공예인이 됐습니다. 특히 금, 은은 물론 보석을 다루는 일을 매우 잘 했습니다. 시는 물론 수수께끼 만들기에도 뛰어나서 아무도 그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어머니, 목동 할아버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하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하인 중에서 마리아 크라베와 매우 친해졌습니다. 같은 도시에서 살던 소녀였습니다. 지하세계에 처음 왔을 때 나이는 네 살이었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어느 해 여름 시골마을에 갔다가 친구들과 함께 들판으로 놀러갔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우연히 아홉 언덕에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마리아를 잊어버렸습니다. 밤에 잠에서 깼을 때 주변에 난쟁이들이 마리아 주변에 서 있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10년이 지났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열여덟 살, 마리아는 열여섯 살이 됐습니다. 엘리자베스가 가장 좋아하는 일정은 마리아와 함께 산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지하세계의 모든 장소를 잘 알게 돼 하인 난쟁이의 안내를 받지 않고도 아무 곳에나 갈 수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늘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자주 슬퍼했고 우울했습니다. 땅 위의 세계를, 그곳에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곳에서 빛나는 해와 달과 별을 그리워했습니다.
어느 날 두 소녀가 산책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자정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마리아는 난쟁이들이 지상세계로 나가는 통로 근처를 지나게 됐습니다. 갑자기 닭 울음소리가 땅 위 세계에서 들렸습니다. 둘 다 여러 해 동안 듣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마리아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엘리자베스! 이곳은 무엇이든 아름다워. 난쟁이들은 정말 친절하고 우리를 절대 해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싫어. 여기서는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어. 이건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곳은 우리 같은 인간이 살 곳이 아니야. 나는 매일 밤 아버지, 어머니 꿈을 꿔. 사람들이 모이던 교회 정원도 생각나. 내가 얼마나 아버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지금까지는 닭 울음소리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던 엘리자베스였지만 갑자기 태양이 비치는 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리아. 네 말이 맞아. 여기 내려온 건 실수였어. 여기 올 때 나는 어렸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지. 더 이상 여기 머물러서는 안 돼.”
“엘리자베스, 너는 갈 수 있어도 나는 안 돼. 하인이기 때문에 50년 동안 머물러야 해.”
“아니야! 너를 데리고 갈 거야. 한 달 내에 여기서 나갈 수 있어. 내게 생각이 있어.”
엘리자베스는 다음날 아침 하인을 보내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왕과 신하 다섯 명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왕이 오자 소녀는 아주 다정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나의 친구인 왕이시여! 당신은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를 잘 알 거예요. 하인이 아니라 난쟁이의 주인으로서 왔다는 걸 말이지요. 여기서 산 지 10년이 지났어요. 당신들은 저를 잘 돌봐주었지요. 당신들에게 큰 빚을 졌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마지막 부탁을 드릴게요. 여러분의 하인 중에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요. 마리아예요. 저와 마리아가 떠나게 해 주세요. 우리는 해가 떠오르고 쟁기가 땅을 고르는 땅 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요.”
난쟁이 왕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걸 요구하시군요. 하인은 50년이 지나기 전에는 떠날 수 없는 게 난쟁이 세계의 법이에요. 우리가 법을 어기면 난쟁이 세상의 질서는 무너져버려요. 다른 걸 원하시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마리아는 보낼 수 없답니다.”
엘리자베스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안 돼요. 마리아를 보내줘야 해요. 돌아가서 내일까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세요.”
왕과 다섯 장관은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엘리자베스는 다시 친절하게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난쟁이들은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후회하지 마세요.”
엘리자베스는 바로 호수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두꺼비 한 마리를 잡아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두꺼비를 두꺼운 은상자에 보관했습니다. 소녀는 아홉 언덕 이야기를 들려줬던 할아버지 목동을 생각하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난쟁이들은 두꺼비 냄새를 맡거나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어. 그들의 약점이지.’
엘리자베스는 은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난쟁이 두 명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소녀가 다가가자 난쟁이들은 쓰러지더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제 마리아를 데리고 세상으로 다시 나갈 수 있어.’
엘리자베스는 다음날 아침 왕은 물론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난쟁이 50명을 불렀습니다. 소녀는 이전과 똑같은 부탁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부탁할게요. 1분간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다시 거절하면 지금까지 한 번도 겪지 못한 고통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난쟁이들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 입을 모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네가 어떤 흉계를 꾸미더라도 우리를 꺾을 수는 없어.’
엘리자베스는 싱긋 웃으며 두꺼비를 넣은 은상자를 갖고 왔습니다. 왕과 다른 난쟁이들은 번개를 맞은 것처럼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거나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두꺼비를 갖고 있군요. 우리는 그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 없답니다. 제발 두꺼비를 치우세요. 당신의 요구를 받아들일게요.”
엘리자베스는 두꺼비를 먼 곳에 가져다놓았습니다. 난쟁이들은 그제야 바닥에서 일어났고,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 열시부터 열두시 사이에 나와 마리아는 여기를 떠날 거예요. 마차 세 대에 내 방에 있는 금과 은, 보석을 모두 싣오록 하세요. 여행하기에 좋은 가방도 준비해두세요.
한 가지 더. 지상세계에서 붙잡아와 20년 이상 하인으로 부린 모든 어린이는 풀어주세요. 그들에게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금과 은을 줘야 해요.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20년 이상 붙잡아 둘 수 없다는 법을 새로 만들도록 하세요.”
왕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두꺼비를 땅속 깊숙이 묻었습니다. 난쟁이들은 하루 종일 부지런히 움직여 약속한 금과 은, 보석을 마차에 실었습니다. 그들은 마차를 한밤중에 언덕 위로 옮겼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마리아는 옛날 내려왔을 때처럼 은으로 만든 통에 들어가 위로 올라갔습니다.
두 소녀가 다른 하인들을 데리고 지상세계로 출발한 것은 한여름날 새벽 1시였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지하세계로 내려간 지 10년 만이었습니다. 두 소녀가 위로 올라가자 음악소리가 들리면서 언덕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두 소녀 머리로 쏟아졌습니다. 둘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새벽의 희미한 빛을 보았습니다.
지하세계의 난쟁이들은 두 소녀 주변에 서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모자를 던져주었습니다. 난쟁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푸른 언덕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해가 떠오르자 엘리자베스와 마리아는 고향 도시로 가기로 했습니다. 시골 마을을 지날 때 할아버지 목동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끼는 개는 두 소녀를 보고 멍멍 짖었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마리아가 고향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4시 무렵이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진기한 풍경을 보려고 몰려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 여동생도 보였습니다. 마리아의 아버지, 어머니도 보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리아도 아버지와 어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그날 낮에 두 사람이 돌아온 걸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나게 화려한 잔치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할아버지 목동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은 인생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자주 찾아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부탁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일곱 언덕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