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톡! 틱 톡!
4월 첫째 토요일 늦은 밤이었다. 프라하 6지구 브레즈브노프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온드레이 순경은 잔뜩 긴장한 채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를 가리키는 짧은 바늘과 분을 가리키는 긴 바늘은 ‘12’라는 숫자에서 겹쳤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즉 자정이었다. 벽에 매달린 파란색 시계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은 심란해 보였다.
온드레이는 시선을 검은색 전화기로 돌려 수화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벨이 울리기를 기대하는 것인지,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애매한 표정이었다. 한참 동안 수화기만 바라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수화기에서 떼지 않았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려나?’
온드레이는 파출소 안쪽 사무실로 고개를 돌렸다. 이르지 반장과 야쿠브 순경은 빵을 먹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온드레이와 눈이 마주친 반장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어떻게 됐어?’
온드레이는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괜찮아요.’
온드레이가 전화기에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는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당혹스러워 할지도 모르지만 파출소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브레즈브노프는 1년 내내 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동네였다. 평일 같으면 밤 당직을 서는 경찰관은 자정이 지날 경우 마음 편하게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토요일은 사정이 달랐다. 이날은 거의 어김없이 신고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에 당직을 서는 파출서 직원은 하시라도 잠들 수 없었다. 혹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가 프라하 경찰서에 항의 전화라도 가는 날이면 근무 태만이라며 날벼락이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띠르릉!”
자정을 넘긴 시계의 분침이 숫자 ‘4’를 가리킬 때였다. 파출소의 검은색 전화기 벨이 소란하게 울렸다.
“어흑~!”
온드레이의 입에서 울음 같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낙담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전화기 벨이 아무리 울려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힘겹게 머리를 들어 수화기를 노려봤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온드레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전화기 벨은 끊임없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수화기를 들지 않을 경우 밤이 새도록 떠들어대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끙!”
그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야말로 느릿느릿하게,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프라하 6구역 브레즈브노프 파출소의 토요일 당직자 온드레이 순경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짜증스러워 하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그렇게 천천히 하세요? 듣는 사람은 애가 타 죽겠네요.’
온드레이는 중년 여성의 역정은 아랑곳없이 계속 느릿하게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렀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대답하는 게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전화를 했으니 용건부터 이야기할게요. 수상한 노인이 슐티쇼바 거리의 컴컴한 골목에서 고양이를 태우고 있더라고요.’
온드레이의 입술이 몇 번 실룩거렸다.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는 그래도 계속 천천히 이야기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잘~ 처리하겠습니다.”
전화기에서 화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이 사람이 그래도 말을 그런 식으로…. 고양이를 태우고 있다고 하잖아요! 이건 동물 학대라니까요, 동물 학대!’
온드레이는 흥분을 참으려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예에~ 알~겠습니다. 신고 접수를 해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온드레이와는 달리 수화기 너무 중년 여성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해요?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당신, 경찰관 맞아요?’
온드레이는 눈을 커다랗게 번쩍 떴다. 그는 수화기를 잡아먹을 듯 무섭게 노려보았다. 머리에서는 김이 솟아나고 코에서는 불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를 꽉 악물었다.
‘온드레이! 참아야 해. 화를 내면 안 돼. 본청에 항의신고가 들어갈 거야. 지금까지 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잖아! 한 번만 더 받으면 감봉이야. 알지? 감봉? 화를 내면 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어. 온드레이! 참아야 해.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알겠지?’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린 온드레이는 다시 수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목소리를 약간 더 낮췄다. 어쨌든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하려고 억지로 애를 썼다.
“선생님! 그것은, 저도 잘~ 압니다. 그것은, 이런 신고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벌써 수십 번, 수백 번이거든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저를 믿으시고 화내지 마시고 천천~히 수화기를 끊어주시면 그것은,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온드레이가 최대한 천천히, 성질을 죽이며 말을 하려다 보니 뜻하지 않게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그것은’이라는 표현이 반복됐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왜 ‘그것은’이라는 단어를 계속 쓰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기 너머의 중년 여성의 기분은 그제야 약간 누그러진 것 같았다.
‘그렇군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네요. 어쨌든 지금 바로 출동해서 그 노인을 반드시 잡아야 해요. 요즘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동물 학대를 한단 말이네요? 자! 그럼, 수고하세요.’
‘하아!’
온드레이는 숨을 깊이 들이쉬어 호흡을 조절하며 수화기를 천천히 조용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머리를 돌려 안쪽 사무실을 바라봤다. 사무실 문 앞에 커피 잔을 든 반장과 야쿠브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반장은 온드레이 곁으로 걸어가 그의 등을 툭 쳤다.
“온드레이! 잘 참았어. 큰일 날 뻔 했는데, 성질 잘 죽였어.”
온드레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힘껏 비비고 컴퓨터 자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다음 중년 여성의 신고 내용을 경찰 보고서에 기록했다.
‘토요일 밤 12시 20분. 클라슈테르니 테라소바 정원 맞은편 슐티소바 거리. 노인이 고양이에게 불을 지른다는 신고 전화 접수. 온드레이 순경, 상황 조사하러 현장 출동.’
토요일 자정을 넘겨 고양이 학대를 목격했다며 브레즈브노프 파출소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대부분 슐티소바 거리에 사는 지역 주민이 아니었다.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자정이 넘어 돌아가던 다른 동네 주민이었다.
생전 처음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동물 학대라며 경찰서에 신고하기 바빴다. 이들은 잔혹한 일을 목격해서 한 번 놀라고, 경찰의 낯설고 희한한 대응에 당황해서 다시 한 번 놀라기 일쑤였다.
브레즈브노프 파출소에 전화가 처음 걸려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파출소에 남은 문서 기록을 보면 첫 신고 전화가 접수된 것은 벌써 5년 전이었다. 해마다 적게는 스무 번, 많게는 마흔 번까지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신고 전화 내용은 고양이를 불태운 걸 봤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범인’이 고양이 주변에 빨간 가루를 원처럼 뿌려놓고 괴상한 주문을 외우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면서 정신병원에 연락해야 한다고 덧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 신고가 접수됐을 때 경찰은 아주 꼼꼼하게 조사했다. 아주 희한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파출소장 마테이 말리크는 잘만 하면 신문에 대서특필할 만한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며 큰 기대에 부풀었다. 이후 몇 달 동안 거의 매주 전화가 걸려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석 달 만에 용의자를 밝혀냈을 때에는 마테이는 범인을 잡은 것처럼 소란을 떨었다. 용의자는 슐티소바 거리에서는 이미 모르는 주민이 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은 일흔 살의 노인인 안드레이 바니체크였다.
경찰은 안드레이를 하루 만에 풀어줘야 했다. 정말 치밀하게 조사했지만 범죄 혐의를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안드레이가 고양이를 태웠다는 걸 봤다는 장소 인근에서 고양이를 묻은 곳이 발견되기는 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신고와는 달리 고양이 사체에는 불에 탄 흔적이 없었다. 찔리고 맞은 상처는 물론이거니와 독약을 먹어 피를 흘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마비에 걸려 급사한 것처럼 겉으로 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고양이를 묻은 곳은 글자 그대로 그냥 단순한 고양이 무덤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한 경찰관은 3년 전쯤 국립과학수사대에 고양이 사체 부검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 쓸 데 없는 짓을 한다고 파출소 소장에게 욕까지 들어가며 고양이 사체를 보냈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살해당한 흔적이 전혀 없는데다가 왜 죽었는지 이유조차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립과학수사대 부검 담당자는 고양이 사체를 보낸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를 알려주면서 오히려 당혹스러워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요. 사망원인도 알 수 없어요. 과학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일이에요.”
안드레이는 이후에도 신고 전화가 접수될 때마다 경찰서에 수십 번이나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는 기괴한 행동을 한 것은 인정했지만 고양이를 태우거나 학대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비명이 들려 가보니 고양이는 벌써 죽어 있더군. 내가 한 일이라고는 묻어준 것뿐이야.”
그런 말을 들은 조사 담당 경찰관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그를 더 몰아세웠다.
“누가 죽인 건지는 혹시 보셨어요?”
“사악한 유령이 고양이의 몸에 손을 대는 걸 봤어.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불길한 징조야. 걱정이야. 앞으로 엄청나게 나쁜 일이 벌어질 거야.”
경찰관은 기가 찬 듯 눈살을 찌푸리며 역정을 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하나? 거짓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원을 그어놓고 주문을 외우는 이유는 뭡니까?”
안드레이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표정을 보면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고양이는 죽더라도 최대 일곱 번까지 부활해. 그런데 영혼이 유령에게 끌려가 잡아먹히면 부활할 수 없어.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려는 거야.”
“고양이를 불태운 것처럼 연기가 났다던데요.”
“태운 게 아니라 고양이 영혼이 악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무사히 하늘로 올라간 거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당혹스러워지고 짜증만 났다. 경찰관은 책상을 쾅 치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저에게 장난치시는 거예요?”
안드레이가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간접적인 증거도 있었다. 그가 평소 집에서 고양이 스무 마리를 키운다는 사실이었다. 돈을 주고 사온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 대부분 골목이나 도로, 산기슭에서 주워온 길고양이였다. 이건 그의 설명이기도 했고, 인근 사람들의 목격담이기도 했다.
한 경찰관이 조사를 하러 안드레이의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얌전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질문을 던졌다.
“고양이를 왜 이렇게 많이 키우시는 겁니까?”
그럴 때면 안드레이는 눈을 오긋하게 뜨고 경찰관을 쳐다보았다.
“유령은 고양이를 싫어해. 자기를 알아보거든. 밤에 고양이가 이상하게 운다는 것은 유령을 봤다는 거야. 고양이가 한 마리면 유령이 잡아가버려. 하지만 한꺼번에 스무 마리나 모여 있으면 유령이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어.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많으니 나는 밤마다 침대에서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지. 당신도 집에 고양이를 서너 마리 키우는 게 좋을 거야.”
모든 점을 종합적으로 감안해볼 때 안드레이가 고양이를 학대한 게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래도 동네 주민들은 그를 싫어하면서 기피했다. 괴팍하고 기괴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고양이 문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기괴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나 해괴망측한지 다들 말하기조차 꺼릴 정도였다. 나이가 일흔 살을 넘은 탓에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군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 번은 새벽에 칼로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골목에 퍼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웃집 주민이 밖에 나가 보았다. 그는 안드레이 집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 기겁하고 말았다. 안드레이는 마당에서 살아 펄떡 뛰는 생선을 자르고 있었다. 이웃집 주민은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어보았다.
“새벽에 뭐하는 거예요?”
안드레이는 기괴하게 씩 웃으며 대답을 내놓았다.
“개 유령이 문 앞에서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는군요.”
이웃은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다시 물었다.
“개라니요?”
“멍멍 하면서 짖는 개 말이오.”
“개가 죽어서 유령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사람이나 개나 다 영혼이 있는 존재라오. 영혼이 있는 존재가 불행한 죽음을 당하면 유령이 되지.”
이웃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령은커녕 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드레이가 든 칼을 가리키며 물었다.
“왜 하필이면 마당에서 칼질을 하세요. 집안에서 하면 될 걸.”
안드레이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새벽에 집안에서 생선을 자르면 안 되거든요. 유령이 피 냄새를 맡고 집에 들어올 수 있어요. 그런 일은 절대 금물이에요.”
다른 기괴한 일을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 안드레이가 자정을 넘은 시간에 네루도바 거리나 구시가지 광장에서 혼자 걸어가는 걸 본 사람의 이야기였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구시렁거리더라고.”
파로크라는 동네 주민은 그가 끔찍한 말을 하는 걸 들었다며 치를 떨었다.
“수녀님, 등에 꽂힌 칼이 불편하지는 않으시오? 잠시 빼 드릴까요?”
파로크는 처음에는 안드레이가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에게서 말을 전해들은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안드레이는 휴대폰을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어!”
파로크가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완전히 정신 나간 노인이군!”
“안드레이는 미친 사람이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