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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26. 2022

유령 특강

“안드레이 바니체크 씨에게 역사특별수업 첫 강의를 맡기기로 했어요.”

브르제브노프의 바츨라프 하벨 초등학교 교사들은 안드레이라는 이름을 듣고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가 ‘역사 특별수업 프로그램’ 강의를 맡게 됐다는 밀로스 말리크 교장의 통보 때문이었다. 평소 교장의 독주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교사들은 강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자 미칠 지경이었다.

‘역사 특별수업 프로그램’이라는 행사 기획부터가 문제였다. 교장은 교사들과 미리 상의해서 결정한 게 아니었다. 1주일 전 교사 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렸던 것이었다.

이런 차에 교장은 강사마저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미친 안드레이라는 소리를 듣는 안드레이 바니체크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는 교사는 바츨라프 하벨 초등학교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드레이를 강사로 초빙했다면서 교장이 밝힌 첫 수업 주제는 교사들을 더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강의 주제는 매우 흥미로운 겁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지요. 바로 ‘프라하의 유령이에요.”

밀로스 교장은 왜 안드레이를 강사로 초청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를 좋아했고 존경하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네 노인들은 그를 매우 좋아하고 따랐다. 일부러 밤에 술 한 병을 챙겨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 노인도 더러 있었다.

안드레이는 ‘조국에 헌신하는 지역역사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 동네 노인들은 새로 이사 온 한둘을 빼고는 대부분 이 단체에 가입했다. 매달 회비 100코루나를 꼬박꼬박 잘 냈다. 그의 조언에 따라 다들 집에서 고양이 한두 마리씩을 키우기도 했다.

밀로스 교장은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특히 친한 사이였다.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코하노바 거리의 술집에서 알코올 함량이 45%를 넘는 독한 자두 술인 슬리보비체를 한 병씩 딸 정도였다.

코하노바 거리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면 술에 취한 교장을 부축해 집으로 데려다주는 안드레이의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밀로스 교장은 군에서 장교로 오래 근무한 사람이었다. 어린이에게 프라하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나라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키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열정에 불타오르기만 할뿐 성격이 단순하고 시키는 것만 반복하는 창의력 없는 기계 같았다.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이었다.

한 달 전 술자리가 깊어갈 무렵 안드레이가 귓속말로 밀로스 교장에게 사근사근 속삭였다.

“교장 선생님은 애국자이시니 잘 아실 겁니다. 교과서는 살아 있는 역사를 가르치지 못한다는 걸. 제가 늘 그랬지요?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이나 신화에는 생명이 넘쳐흐른다고요. 아이들에게도 그걸 알려줘야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도움을 요청하신다면 제가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요?”

교장은 졸리던 눈을 번쩍 뜨고 혀가 비비 꼬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주십시오.”

안드레이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앞으로 1년 동안 매달 한 차례씩 방학을 빼고 총 10회에 걸쳐 역사 특별수업을 진행하면 어떻겠습니까? 교장 선생님이 바라는 애국심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에 최고의 방법일 것 같은데요?”

밀로스 교장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최고의 프로그램이군요. 한 달 뒤 월요일부터 바로 시작하면 되겠습니다.”

안드레이는 이틀 전 열린 ‘조국에 헌신하는 지역역사협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교장 선생님의 애국심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강의를 맡는 게 좋지 않을까요? ‘조국에 헌신하는 지역역사협회’의 원로 회원들은 늘 교장 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내는 분들이지요.”

밀로스 교장도 안드레이의 소개를 통해 협회 회원 몇몇을 알고 있었다.

“그런 분들에게 수업을 맡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안드레이는 밀로스 교장의 빈 잔에 슬리보비체를 채워주었다.

“첫 수업을 ‘프라하의 유령’이라는 주제로 협회 회장이 진행하면 모양새가 나쁘겠지요?”

안드레이의 겸손한 말에 밀로스 교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모두 재미있어 할 겁니다.”


이유도 모른 채 교장에게서 갑작스러운 통보를 들은 교사들은 당혹스러웠다. 그들은 프로그램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성격이 기괴한 것으로 유명한 안드레이가 첫 수업을 맡는다는 게 꺼림칙했다. 게다가 주제가 유령이라니!

교사가 된 지 3년째인 베로니카 두브코바는 6학년 1반 담임을 맡아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애정이 넘쳐났다. 매일 아침 교실 앞에 서 있다가 들어오는 아이들을 하나씩 껴안아줄 정도였다. 그녀는 스킨십을 통해 아이들에게 풍부한 감정을 키워줄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비썩 마른 선생님을 껴안는 아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베로니카는 밀로스 교장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겨우 열한 살, 열두 살 밖에 안 된 아이들이에요. 잔혹한 유령 이야기를 들으면 충격을 받아 기절할 거예요. 미리 앰뷸런스를 열 대는 불러놓아야 할지도 몰라요.”

학생부장인 바니체크 우린도 특별수업을 마뜩찮게 여겼다. 그는 교장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승진에서 밀리고 말았다. 실수를 너무 많이 저지르고 큰 사고를 연거푸 친 게 문제였다. 그는 교장과 안드레이가 술친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프라하 교육청에서 지원받아 안드레이에게 줄 강연료가 얼마인지도 모르지 않았다.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거요. 애들이 무섭다며 밤에 잠을 못 잔다고. 교장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일 거라니까.”

밀로스 교장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책상을 세게 쳤다. 찌를 듯이 학생부장에게 손가락을 흔들며 불같이 화를 냈다. 바츨라프 하벨 초등학교에 온 지 2년째인 교장은 능력도 없으면서 늘 알은체하는 바니체크를 좋아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다른 교사들은 밀로스 교장의 호통에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대부분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있거나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한 교장의 목소리는 약간 회유조로 바뀌었다.

“다들 아시잖아요? 안드레이 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대학교수도 꼼짝 못하는 향토사학의 전문가입니다. 그분이 유령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프라하의 유령은 그냥 귀신이 아니에요. 그들의 이야기에는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 도시의 역사가 담겨 있답니다. 나도 직접 만나봐서 알지만 우리 주변에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이라고요. 여러분도 이번에 회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걸 알게 될 거요. 슬리보비체를 마시다가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라니까.”

“교장 선생님이 유령을 만나보셨다고요?”

밀로스 교장이 ‘직접 만나봐서 알지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베로니카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교장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사실 밀로스 교장 말처럼 안드레이는 지역의 대학교수들에게서 실력자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의 여러 주제 중에서도 특히 유령에 대해 많은 걸 알았다. 프라하에서 유령 연구를 자신보다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깊은 자부심을 가졌다.

책을 펴낸 것만 해도 『유령은 왜 나타나는가』, 『어떻게 유령을 만날 수 있나』를 포함해서 4권이나 될 정도였다. 물론 자기 돈으로 펴낸 유령 관련 서적 4권을 다 합친 판매량이 채 100권도 안 된다는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안드레이가 평생 이 주제에 집착하게 된 것은 아주 독특한 취향을 가진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때 밤마다 유령에 관심이 많았던 할아버지에게서 프라하의 유령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다.

‘안드레이, 눈을 감아봐. 돌이 깔린 좁은 골목길이 보일 거야.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가로등도 떠올려보렴. 세월의 때가 묻어 곧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이 보이니? 그곳에 연금술사, 암살자가 숨어 산단다. 불행하게 목숨을 잃은 유령도 구슬프게 울며 떠돌아다니지.

가장 슬픈 유령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은 수녀란다. 원래 부유한 귀족의 딸이었지. 그녀는 가난한 기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 아버지는 둘을 떼어놓으려고 딸을 성 아그네스 수녀원에 보내버렸어. 그녀는 기사와 달아나기로 약속했단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아버지는 기사는 물론 딸마저 칼로 찔러버렸지. 살해당한 그녀는 유령이 돼 매일 수녀원 근처를 헤매고 다닌다는구나.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떤 날은 온 몸에 피를 묻힌 모습으로….’

어린 안드레이의 꿈에는 아름다운 요정이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 대신 무서운 유령과 괴물이 매일 나타났다. 꿈 때문에 놀라 비명을 지르거나 엄마, 아빠를 외치며 잠에서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 방에 달려가야 했던 그의 아빠와 엄마는 제발 유령 이야기를 들려주지 말라고 애원했다.

‘애가 커서 이상하게 변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프라하에서는 단 하나뿐인 ‘유령 연구소’를 차려 소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프라하 사람이라면 당연히 유령 이야기를 알아야 해.’

안드레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유령 이야기는 무려 100개 이상이었다. 그것도 암기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안드레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 날 짝이 된 귀여운 소녀에게 반해버렸다. 그는 소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두 팔을 잘린 장사꾼 유령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도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단어를 모두 사용하면서.

‘사기꾼은 날카로운 칼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어. 그리고….’

소녀는 얼굴이 하얘지더니 거품을 물며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안드레이는 바로 교장실로 불려가 1시간 동안이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게다가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짝을 구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드레이는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아야 했다.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유령 이야기를 들으면서 끝까지 식탁에 앉아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는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안드레이가 역사에 집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유령 때문이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늘 하던 말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령을 단순히 전설로만 내려오는 기괴한 이야깃거리로 생각하지. 그들은 유령의 본질을 모르고 있는 거야. 유령은 지금도 프라하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도 있어. 너도 나이가 들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안드레이는 유령을 만날 방법을 알려면 유령이 죽었던 이유는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도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간의 본성은 물론 유령이 죽기 전후의 역사적 흐름은 물론 문화적, 사회적 상황도 상세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믿었다.

안드레이가 지역 향토사학계에서 특출한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어느 대학 교수보다 많은 자료를 갖고 있었다. 언제나 현장에 나가서 살다시피 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안드레이는 오래 전부터 ‘유령 여행사’를 운영했다. 그가 사장이었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령 연구소’를 여행사로 바꾼 것이었다. 놀라운 일은 이름에만 ‘유령’을 붙인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른 여행사들은 관광객을 데리고 다니면서 유령 이야기를 재미삼아 설명해주는 상품을 팔았다. 그는 자정에 카렐 다리에서 출발해 해가 뜰 때까지 진짜 유령을 만나게 해준다는 상품을 팔았다. 물론 이 상품을 사려는 관광객은 하나도 없었다. 비용이 다른 여행사의 상품에 비해 10배나 비쌌기 때문이었다. 호기심 때문에 찾아왔다가 가격을 보고 기겁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는 눈알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다른 데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잖소. 게다가 심장마비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생명보험도 들어야 하고.”

동네 노인들이 드러난 이유도 없이 안드레이를 추종하는 걸 보고 슐티소바 거리 주민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안드레이 씨가 할아버지들을 한 명씩 데리고 유령 여행을 다녀왔대. 다들 진짜 유령을 만났대. 그 사람 말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래서 모두 미친 듯이 안드레이 씨를 따라다니는 거래. 다니엘이 아버지 파벨 씨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기절할 뻔했다더군. 다니엘은 화를 내면서 그랬대. 아버지, 이제 술 좀 그만 드시라고요!”


뜻밖에도 강의를 듣게 된 6학년 학생들의 생각은 기겁한 교사들과는 달랐다. 주제가 ‘프라하의 유령’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참가 신청이 그야말로 해일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쇄도했다. 몸이 아파 결석한 3반 학생 제렉 라다가 나중에 안드레이의 강의 내용을 전해 듣고 책상을 두들기며 통탄했을 정도였다. 6학년 전체 인원 200명 중 199명이 특별수업 시작 10분 전에 강당에 모였다.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드레이를 기다렸다.

“말도 안 돼!’

이 표현은 억양, 어투 그리고 앞뒤로 따라붙는 단어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우선 너무 신기하고 놀랍다는 감탄사일 수 있다. 거꾸로 터무니없는 엉터리라고 비꼬는 비난일 수도 있다. 같은 표현이 누구의 입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왔느냐에 따라 180도 뜻이 달라지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드레이가 바츨라프 하벨 초등학교의 강당에서 특별수업을 시작하면서 첫 말을 꺼냈을 때 바로 ‘말도 안 돼’라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프라하는 유령의 도시란다. 가는 곳마다 무서운 유령이 들끓지. 내가 만나본 유령만 해도 200명을 넘어. 오래 된 건물 지하나 유적, 광장, 거리마다 유령이 숨어 있어. 지금 이 학교 지하실에도 피를 줄줄 흘리는 유령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밤늦은 시간 학교에서 유령을 봤는데도 무서워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을 거야.”

공포에 사로잡혀 부들부들 떠는 마음 약한 아이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신나게 깔깔대며 웃었다. 그들은 안드레이의 말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단순히 TV에서 공포 영화를 보듯이 아주 흥미롭게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안드레이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프라하는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움과 낯선 매력을 가진 도시지.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무나 볼 수 없는 도시의 옛 주민들이야. 그게 바로 유령이란다. 왕, 사제, 귀족은 물론 평민, 상인, 군인도 있어. 게다가 어린이, 노인, 여성에 이르기까지 한두 명이 아니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던 지니와 리즈도 ‘말도 안 돼’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로 수업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쫄깃쫄깃해지고 온몸이 짜릿해지는 느낌이었다. 둘이 ‘말도 안 돼’라고 소리를 친 것은 그야말로 가슴이 찌릿한 흥분의 표현이었다.

“얼굴이 하얀 걸 보니…. 혹시 유령 아니세요?”

유령이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드레이의 말에 지니는 키득키득하며 리즈를 훑어보았다.

“관심 없거든!”

리즈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바닥으로 지니 얼굴을 밀어버렸다. 바닥에 앉아 있던 지니는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뒷자리에 테레자가 앉아 있지 않았다면 강당 바닥에 뒷머리를 들이받고 말았을 것이다.

안드레이는 교탁에서 빨간 수첩을 들어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수첩에는 유령을 조사한 내용이 담겨 있어. 기본적인 거야. 상세한 자료는 집과 사무실에 숨겨두었지.”

학생들의 눈은 안드레이가 흔드는 빨간 수첩으로 향했다.

“목록을 간단하게 읽어줄까? 먼저 피를 철철 흘리는 목 잘린 기사가 있구나. 배에 칼을 꽂고 구슬프게 울며 사람을 붙잡는 수녀도 있네. 머리가 깨진 채 카렐 다리를 오가는 미친 이발사 이야기도 재미있지. 밤마다 어린 소녀를 붙잡으려고 하는 철의 기사는….”

“우우~!”

강당에 몸서리치는 것 같은 나지막한 신음이 감돌았다.

“할아버지는 뻥을 치는 거야.”

맨 앞줄에 앉은 토마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안드레이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토마스와 함께 학교에서 말썽꾸러기 삼총사로 악명 높은 야코브와 리보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겁이 많아. 그걸 이용해 특별수업 강연료를 챙기려고 말장난을 하고 있는 거지.”

귀가 밝은 안드레이는 토마스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비웃음이 가득한 토마스의 얼굴을 소름끼치도록 빤뜩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교탁에 놓인 지도를 들었다.

“내가 평생 동안 노력해서 만든 유령 지도야. 프라하에 사는 모든 유령을 표시한 거지. 점들이 찍힌 게 보일 거다. 유령이 나타나는 장소를 표시한 거야. 프라하 시청의 유령위원회에도 이 지도를 보여주었어.”

유령위원회?

학생들은 물론이고 밀로스 교장과 교사에게도 생소한 시청 부서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프라하 시청에 그런 부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안드레이 회장님, 방금 유령위원회라고 하셨나요?”

밀로스 교장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당혹스러워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안드레이를 100% 신뢰하지만 유령위원회라는 단어에는 강한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 이 학교에서는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안드레이는 세상에 숨겨진 비밀을 가르쳐주었다는 듯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청에 자주 갔지만 그런 부서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는 바니체크 학생부장이 안드레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투가 역력했다.

안드레이는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역정을 내는 것처럼 바니체크를 향해 손을 거칠게 가로저었다.

“프라하 시민 중에 유령위원회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요. 시장과 시의회 의장, 유령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나 정도만 그 부서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

교장은 황당한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교사들도 더 이상 거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피식 웃기만 했다.

이때 토마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빈정거리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유령위원회가 있든 없든 저는 관심 없어요. 그런데 지도를 만들면서 유령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는 하신 거예요?”

안드레이는 무서운 눈길로 토마스를 노려보며 무섭게 그렁거렸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거의 대부분 만났지. 지금도 수시로 만나는 걸.”

“와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써늘한 비명이 다시 한 번 강당 천장을 뒤흔들었다.

지니와 리즈는 탄성을 질렀다. 유령을 만난다는 할아버지가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은 둘에게 묘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드레이는 조롱기가 가득 담긴 미소를 머금은 채 토마스 앞에 다가갔다. 허리를 숙여 얼굴을 붙이다시피 토마스에게 갖다 대었다.

“내가 만난 유령을 하나만 이야기해주지.”

토마스는 안드레이의 눈이 얼음장처럼 써늘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구시가지 광장에 놀러간 사실을 뒤늦게 안 아빠가 회초리를 들고 문밖에서 기다릴 때의 눈빛 같았다.

“네루도바 거리에서였어. 그곳에 목 잘린 스웨덴 기병 유령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사하러 갔을 때였지. 옛날에는 그 자리에 문이 있었어. 30년 전쟁 때문에 프라하에 왔던 스웨덴 기병은 문 앞에서 목을 잘려 죽었던 거야. 성모 마리아 성당을 쳐다보면서 땀을 닦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유령이 왼손에 머리를 들고 서 있는 거야. 잘린 목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혀는 툭 튀어 나와 있었지.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지.”

토마스는 깜짝 놀란 듯 엉덩이를 뒤로 빼며 물러났다. 강당은 돌연 조용해졌다.

“유령은 매일 밤 산책을 하러 나와. 죽은 장소에 나타나는 거지.”

이번에는 지니가 손을 번쩍 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왜요?”

안드레이는 허리를 펴고 지니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는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으면 답답하지 않겠니? 유령도 산책을 하거나 다른 유령을 만나 대화도 나눠야 하지 않겠어? 술도 한 잔 걸치면서 말이야.”

“와!”

“하하!”

강당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안드레이는 학생들의 반응에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밀로스 교장은 이 대목에서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안드레이는 말을 끊고 벽 쪽에 모인 교사들의 얼굴을 살폈다. 모두 불만이 가득한 기색이었다.

“너희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유령을 만날 수 없을 거니까.”

지니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 물었다.

“유령이 넘쳐난다면서요?”

안드레이는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아이구나.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나 유령을 볼 수 없어. 만나기 쉬운 존재가 아니라는 거야.”

이번에는 강당에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이 흘렀다. 

안드레이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유령은 매일 나타나지만 일부러 사람을 피해 다녀. 사람 눈에 띄어봐야 좋을 게 없거든. 유령이 나타난다고 소문이라도 나 보렴. 당장 난리가 나겠지.”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밤마다 유령이 나타나고 아무나 볼 수 있다면 그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유령 세상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안드레이는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너희가 유령을 절대 만날 수 없다는 건 아니야. 만날 기회가 있기는 하지.”

지니와 리즈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유령을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건 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궁금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지였다.

안드레이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유령을 불러내는 거야.”

강당에 합창하는 것 같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령을 불러낸다고요?”

지니와 리즈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유령을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건 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궁금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한 번뿐이야.”

급한 마음을 참지 못한 리즈가 이번에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언젠가요?”

안드레이는 리즈 쪽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유령이 죽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에 그가 죽은 장소에 정확하게 서 있어야 해. 그래야 유령을 볼 수 있어. 날짜, 시간, 장소 중에 하나만 틀려도 유령을 만날 수 없지.”

“왜 그렇죠?”

“그건 나도 모른단다. 아마 그들만의 규칙이겠지?”

지니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할아버지는 성당 앞에서 몇 시에 유령을 보신 거예요?”

안드레이는 고개를 돌려 지니를 주시하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교사들을 곁눈질했다. 

교사들은 적개심이 가득한 눈길로 안드레이를 노려보았다. 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지. 또 믿는 것만 보려고 해. 알지 못하는 것은 보려고 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비난부터 하지. 특강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자꾸나. 더 하다가는 유령위원회 직원들에게 끌려가겠어. 아니, 그 전에 선생님들에게 몰매를 맞겠구나.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른 게 아니야. 유령 전설에는 프라하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거란다. 너희도 나중에 유령을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물어보면 알게 될 거야.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나를 직접 찾아오려무나. 무엇이든 대답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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