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의 조상은 누구였을까?(4)

티레니아 인과 아르카디아의 에반드로스

by leo


펠라스기 인이 떠난 이후 여러 도시는 우연히 근처에 살게 된 여러 부족이 차지하게 됐다. 주로 티레니아 인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좋은 대다수 지역에서 지배자 노릇을 하게 됐다. 이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티레니아 인을 이탈리아 토착민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외국 이주민이라고 반박한다. 그들을 토착민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성채에서 비롯했다. 티레니아 인들이 이 지역의 거주민 중에서는 처음 만든 이 성채는 벽으로 둘러싼 덮개가 있는 건물들로 이뤄졌다. 티레니아 인들은 물론 그리스 인들은 이를 ‘탑’이라는 뜻인 티르세이스라고 불렀다.’


티레니아 인들이 외국 땅에서 건너왔다는 전설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식민지 지도자였던 티레누스가 이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그는 원래 리디아(오늘날 터키 서부지역에 있었던 철기 시대 소아시아 왕국) 출신이었다. 과거 마이오니아라고 불린 지역에서 이주했다.’


이들은 이렇게 덧붙인다.


‘티레누스는 제우스의 5대 후손이다. 제우스와 게의 아들은 마네스로 제 1대 왕이었으며, 그와 오케아누스의 딸 칼리로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코티스였다. 그는 틸루스의 딸 할리에와의 사이에 두 아들 아시에서와 아티스를 두었다. 아티스와 코라이우스의 딸 칼리티아로부터 리두스와 티레누스가 태어났다. 둘은 아버지의 왕국을 이어받았다. 리두스의 이름에서 리디아라는 왕국의 명칭이 생겼다. 티레누스는 이탈리아의 넓은 지역을 정복하고는 원정에 참가한 부족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헤로도투스는 이와는 달리 설명한다.


‘티레누스와 그의 형은 마네스의 아들인 아티스의 두 아들이었다. 리디이 인의 이탈리아 이주는 자발적인 게 아니었다. 아티스의 통치 기간 중에 리디아에 기근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고향을 너무나 사랑해서 비극을 피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하루는 음식을 조금만 먹고 다음 날에는 굶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불행이 이어지자 그들은 주민을 둘로 나눠 제비뽑기를 해서 한쪽은 고향을 떠나고 다른 한쪽만 남기로 했다. 아티스의 두 아들 중도 두 그룹 중 하나에 각각 배정됐다. 제비뽑기 결과 리두스가 속한 그룹이 남고 다른 쪽은 그들 몫의 재산을 챙겨 떠나야 했다. 이들은 움브리아 인이 살던 이탈리아 서부 지역에 상륙한 뒤 그곳에 정착해 여러 도시를 세웠다.’


많은 역사학자가 티레니아 인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일부는 똑같은 설명을, 다른 사람은 식민지의 성격과 날짜를 바꿔 설명한다. 일부는 이렇게 주장한다.


‘티레누스는 헤라클레스와 리디아 인인 옴팔레의 아들이다. 그는 이탈리아로 온 뒤 펠라스기 인으로부터 도시를 빼앗았다. 전부는 아니었고 테레베 강 북쪽 너머의 도시였다.’


다른 주장도 있다.


‘티레누스는 텔레푸스의 아들이며 트로이 전쟁이 끝난 이후 이탈리아로 왔다.’


어느 누구보다 고대 역사에 정통하고, 리디아 역사에는 누구 못지않게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리디아의 산투스는 역사의 어디에도 리디아의 지도자로 티레누스를 거론하지 않는다. 또 이탈리아에 리디아 식민지단이 상륙했다는 사실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 덜 중요한 일은 여러 번 설명하면서도 티레니아가 리디아 식민지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리두스와 토레부스는 아티스의 두 아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왕국을 나눈 뒤 아시아에 그대로 남았다. 그들이 다스린 나라는 그들의 이름에서 국명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리두스에게서 리디아라는 이름이 나왔다. 토레부스에게서 토레비아아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들의 언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심지어 이오니아 인과 도리아 인들처럼 그들은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듣고 웃는다.’


레스보스의 헬라니쿠스는 『프로니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티레니아 인은 이전에는 펠라스기 인이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에 정착한 뒤에 티레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프라스토르는 왕 펠라스구스와 페네우스의 딸 메니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프라스토르의 아들은 아민토르, 아민토르의 아들은 테우타미데스, 테우타미테스의 아들은 나나스였다. 나나스의 통치기에 펠라스기 인은 그리스에서 쫓겨났다. 이오니아 만에 있는 스피네스 강에서 출한한 그들은 내륙 도시인 크로톤을 세웠다. 거기에서 더 들어가 오늘날 티레니아라고 불리는 식민지를 건설했다.’


미르실리우스의 설명은 헬라니쿠스와는 다르다.


‘티레니아 인은 고향을 떠난 뒤 방랑하던 도중에 ’황새‘라는 뜻인 펠라르고이라고 불렸다. 무리를 지어 그리스와 야만족 영토로 들어온 그들의 모습이 황새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테네 성채 주변에 성벽을 쌓았다. 오늘날 펠라르고이 성벽으로 불린다.’


티레니아 인과 펠라스기 인이 같은 민족이고 한 나라였다는 주장은 착오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탈리아에 있는 여러 부족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려 혼동을 일으키는 일은 다른 곳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인이 라틴 인, 움브리아 인, 아우소네스 인은 물론 여러 부족을 티레니아 인이라고 통칭하던 때가 있었다. 각 부족이 살던 도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먼 나라에서 사는 민족이 정확하게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많은 역사학자는 로마를 티레니아의 도시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여러 부족이 사는 장소에 따라 이름을 바꿨다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티레니아 인과 펠라스기 인이 같은 기원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무엇보다 언어가 다르고 서로 닮은 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헤로도투스는 이렇게 말한다.


‘크로톤 인과 플라키아 인은 서로 언어에서 비슷한 점을 보이지만 이웃한 다른 부족과는 일치하는 게 없다. 그들은 현재 거주지에 가지고 온 연설의 유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람들이 ‘크로톤 인이 헬레스폰토 근처에 살던 같은 펠라스기 인인 플라키아 인과 연설은 비슷하더라도 바로 이웃인 티레니아 인과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다’는 점에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펠라스기 인은 티레니아 인과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티레니아가 리디아 인의 식민지였다는 점을 믿지 않는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언어는 다르지만 그래도 고향의 일부 특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들은 리디아 인과 같은 신을 경배하지도 않고 비슷한 법이나 제도도 만들지 않았다.


티레니아 인이 다른 곳에서 이주해왔지만 토착 부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진실에 더 가깝다. 왜냐 하면 티레니아 인은 아주 오래 된 부족이고, 언어나 삶의 방식에서 어느 누구하고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스 인이 그들을 그런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없다. 그들은 탑에 살았고, 그들의 지도자 중 한 명에게서 이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그들을 다르게 불렀다. 티레니아 인이 살던 곳이 에트루리아였기 때문에 그들도 에트루리아 인이라고 불린다. 에트루리아 인은 신을 모시는 제례를 다는 어느 부족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 부정확하지만, 투스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트루리아라는 이름은 투스키를 늘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에는 티요스코이(그리스어로 ‘사제’라는 뜻)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은 지도자의 이름과 같다. 바로 라세나다. 앞으로 티레니아 인이 어떤 도시를 세웠고, 정부 형태는 어떠했고,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얼마나 기억에 남을 만한 업적을 이뤘는지, 운명은 어떠했는지 다뤄볼 생각이다.


펠라스기 인 중에서 파괴되거나 다른 식민지로 흩어지지 않은 사람들은-아주 극소수였다-원주민의 동료로 남게 됐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후손은 로마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이것이 바로 펠라스기 인의 전설이다.


아르카디아 인 에반드로스


그로부터 잠시 후 다른 그리스 원정대가 이탈리아의 같은 지역에 상륙했다. 아르카디아의 도시인 팔란티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로마인이 말하기로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기 60년 전의 일이었다.


이들의 지도자는 에반드로스였다. 헤르메스와 아르카디아 지역 님프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 님프를 테미스라고 불렀다. 그녀는 신의 영감을 받은 님프였다. 초기 로마 역사학자들은 그녀를 지역 언어로 카르멘타라고 불렀다. 그 님프의 이름은 그리스어로는 ‘예언하는 가수’라는 뜻인 테스피오도스였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노래’를 카르미나라고 했다. 그들은 또 이 님프가 신의 영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사람들에게 노래로 알려주었다는 데 견해를 같이 한다.


이 원정대는 팔란티움의 일반적인 동의가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내분 때문에 파견된 것이었다. 분란에서 패한 당파가 자발적으로 도시를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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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주민 왕국은 마르스의 후손이라는 파우누스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매우 신중하면서도 정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로마인들은 희생제례와 여러 노래를 통해 그를 지역의 신 중 하나로 모신다. 파우누스는 몇 명 되지 않았던 아르카디아 인을 뜨거운 우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원하는 땅을 골라 정착하라고 했다.


아르카디아 인은 테미스의 조언에 따라 테베레 강에서 멀지 않은 언덕을 골랐다. 지금 로마의 한가운데였다. 이 언덕 주변에 그리스에서 배 두 척에 싣고 온 주민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작은 마을을 건설했다. 이 마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규모는 물론 제국의 웅장함, 번영의 형태 등에서 그리스계이든 야만족이든 상관없이 다른 모든 도시를 능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축하받을 운명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아르카디아에 두고 온 고향 마을의 이름을 따 새 도시를 팔란티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 로마인은 이곳을 팔라티움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그 정확한 형태를 가려버렸다. 일부 작가들은, 특히 메갈로폴리스의 폴리비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마을은 그곳에서 죽은 청년 팔라스의 이름을 따서 명칭을 지었다. 그는 헤라클레스와 에반드루스의 딸 라비니아의 아들이었다. 그의 외할머니는 언덕에 그의 무덤을 높게 지었고, 이름을 팔란티움이라고 붙였다.’


나는 로마에서 팔라스의 무덤을 본 적이 없다. 또 그를 위해 술을 바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과 비슷한 성격의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가문은 기억되지 않았을 리가 없고,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영광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로마인이 해마다 다른 영웅이나 작은 신과 같은 방식으로 에반드루스와 카르멘타에게 공적인 희생제례를 치른다는 사실을 들었다. 또 제단 두 개가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카피톨리노 언덕 아래 포르타 카르멘탈리스 근처의 제단은 카르멘타에게, 포르타 트리게미나에서 멀지 않은 다른 언덕 근처의 제단은 에반데루스에게 바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팔라스를 위해 치러졌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아르카디아 인은 언덕 언저리에 하나의 정착지를 마련한 이후 고향에서 했던 것처럼 여러 건물로 마을을 꾸미기 시작했다. 또 여러 신전도 건립했다. 그들은 먼저 테미스의 지시에 따라 적절한 장소를 골라 리카이아(리카이우스 근처에 있었던 고대 아르카디아의 마을)의 판에게 바치는 신전을 지었다. 아르카디아 인에게 판은 가장 오래 됐고 가장 신성한 신이었다. 이곳을 로마인들은 지금 루페르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곳은 리카이온이나 리카이움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그 신성한 구역 주변 지역은 로마에 합쳐졌기 때문에 추론만으로 그곳의 정확한 성격을 밝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언덕 아래에 짙은 숲으로 둘러싸인 동굴이 있었다고 한다. 바위 밑에서 깊은 샘이 솟아났고, 절벽에 인접한 협곡은 아주 무성한 숲으로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아르카디아 인은 이곳에 판 신에게 바치는 제단을 세웠고, 전통적인 희생제례를 거행했다. 로마인은 지금도 해마다 동지가 지난 뒤 2월에 이 희생제례를 거행한다. 당시 거행됐던 절차는 전혀 바꾸지 않았다. 그들은 언덕 꼭대기에 승리의 여신 니케의 성격을 설정한 뒤 역시 그녀에게도 1년 내내 희생제례를 바쳤다. 지금도 로마인은 이 희생제례를 거행한다.


아르카디아 인의 전설에 따르면 니케 여신은 리카온의 아들인 팔라스의 딸이다. 그녀는 아테나 여신의 희망에 따라 인간으로부터 지금의 명예를 얻게 됐다.


니케와 아테나는 함께 자랐다. 아테나가 태어나자마자 제우스는 팔라스에게 아기를 건네주었다. 팔라스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키웠다. 아르카디아 인은 케레스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지은 뒤 여성이 집전하는 제례행사를 열어 희생물을 바쳤다. 그리스 전통에 따라 포도주는 바치지 않았다. 이 제의는 오늘날까지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르카디아 인은 넵투누스 신에게 바치는 성역을 지정했다. 아르카디아에서는 히포크라테이아, 로마에서는 콘수알리아로 부르는 축제를 열었다. 로마인은 축제 기간 동안에 말과 노새를 쉬게 하면서 그들의 머리에 각종 꽃을 장식하는 게 관습이다.


아르카디아 인은 또 고향의 관습대로 여러 성역, 제단, 신상, 정화의식, 희생제례 등을 봉헌했다. 이런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똑같은 방식으로 거행되고 있다. 이런 의식들이 너무 오래됐다는 이유로 후손에 의해 잊혀지고 방기되더라도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거행되고 있는 의식들은 과거 아르카디아 인 사이에 행해지던 관습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아르카디아 인은 그리스 문자는 물론 리라, 트리곤, 플루트 같은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도 이탈리아에 처음 들여온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그들보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목동의 피리 말고는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법을 제정하고, 인간의 삶의 양식을 당시 횡행하던 짐승 같은 것에서 문명사회의 방식으로 바꾸었으며, 예술과 전문 직업은 물론 공공에 이익이 되는 여러 가지도 도입했다.


이런 이유 덕분에 아르카디아 인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아주 사려 깊게 대우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이탈리아로 건너와 원주민과 공동 거주지를 만든 펠라스기 인에 이어 로마의 최고 지역에 자리를 잡은 두 번째 그리스 국가이다.


헤라클레스 원정대


아르카디아 인이 정착하고 여러 해 뒤 다른 그리스 원정대가 헤라클레스의 지도하에 이탈리아로 건너왔다. 그는 에스파냐는 물론 해가 지는 지역까지 이어지는 모든 영역을 정복한 뒤 막 돌아가는 길이었다.


헤라클레스를 따라간 사람 중 일부는 원정대에서 벗어나 이 지역에 자리를 잡고 적당한 언덕에 마을을 지어 살게 해 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그들이 원한 곳은 팔란티움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지금은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불린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사투르누스 언덕, 그리스어로는 크로노스 언덕이라고 불렀다.


잔류하기로 한 사람 대다수는 펠로폰네소스 출신이었다. 이들은 페네우스, 엘리스 사람들이었다. 헤라클레스와의 전쟁 때문에 황폐해진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 속에는 트로이계도 조금 섞여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라오메돈의 통치를 받던 일리움을 정복한 뒤 붙잡아 온 포로였다. 병사들은 힘든 노역에 지치고 오랜 방랑에 싫증이 난 상태였다. 그들은 헤라클레스로부터 제대 허가를 받아 그곳에 머물게 됐다.


사람들은 이 언덕의 이름이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스 출신 사람들은 고향에 있는 크로노스 언덕을 생각하면서 특히 기뻐했다. 크로노스 언덕은 알페우스 강 인근 피사 지역에 있었다. 엘리스 사람들은 이곳을 크로노스 신에게 바쳐진 신성한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정해진 날짜에 함께 모여 희생물은 물론 여러 가지 존경의 상징물을 바치기도 했다. 고대 시인 에우케누스와 일부 이탈리아 신화학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크로노스 언덕이라는)이름은 피사로부터 온 사람들에 의해 주어졌다. 크로노스 언덕과 모양이 닮았기 때문이다. 엘리스 인은 헤라클레스와 함께 사투르누스에게 바치는 제단을 건립했다. 포로 로마노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올라가는 언저리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로마인이 지금도 그리스 식 절차에 따라 거행하는 희생제례를 시작한 것은 그들이었다.’


내가 추론하기로는 헤라클레스가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이미 이 장소는 사투르누스에게 봉헌됐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에 의해 사투르누스 언덕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시빌 예언서와 신이 보낸 다른 신탁에서도 보이듯이 지금 이탈리아라고 불리는 반도의 나머지 전체 지역은 사투르누스라고 불리는 신에게 바쳐졌다. 이 나라의 많은 곳에는 이 신에게 바친 여러 신전이 있다. 일부 도시는 당시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알려진 것과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많은 장소, 특히 만이나 언덕의 경우는 여전히 그 신의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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