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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r 12. 2024

괴짜 미국인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앞의 장 폴 광장에서 두블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 모퉁이에 아주 작고 낡은 서점이 하나 보인다. 서점 옆의 생자크 거리를 따라가면 소르본대학이 나오니 이런 위치에 서점 하나 정도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서점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학교 앞의 그저 그런 서점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 서점’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이 파리 대학생뿐만 아니라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찾는 관광명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4년 이곳을 ‘파리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명소 10선’ 중 4위에 올렸으니 그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1951년 괴짜 같은 미국인이 프랑스 파리 센강 인근에 서점 하나를 열었다. 아주 작고 낡은 서점이었다. 가게 이름은 ‘르 미스트랄’이었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지인들에게 큰소리쳤다. 


“이 서점은 파리에서 문학적 중심부가 될 거야!”


서점을 연 사람은 조지 휘트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으로 참전해 독일군과 싸운 군인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 남았다. 그는 서점을 찾아온 사람들을 두 팔 벌려 뜨겁게 맞았다.


“파리에서 작품을 쓰거나 휴식하거나 모임을 열 공간이 필요한 작가는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휘트먼은 가게 문 안쪽에 의미심장한 글도 써 붙였다. 영혼에 상처를 입고 헤매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변장한 천사가 아니라면 어떤 낯선 사람도 환영합니다.’


손님을 대하는 휘트먼의 서점 운영 방식은 간단했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대접 받는다.’ 


휘트먼은 이런 손님을 ‘텀블위즈(회전초)’라고 불렀다. 회전초는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풀이다. 황량한 시골마을 길가에 살다 가을이 되면 말라 비틀어져 마치 둥근 공 모양이 되어 굴러다니는 잡초다. 


서점을 찾는 텀블위즈는 먼저 자기소개서를 쓴 뒤 하루 1~2시간씩 가게 일을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하면 서점 선반 뒤쪽에 비치된 침대 13개에서 쉬거나 잠을 잘 수 있다. 서점의 운영 방식은 입소문을 타고 파리 시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무일푼으로 여행하면서 하룻밤을 지낼 곳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파리 여행자에게 이곳은 마치 유토피아로 비쳤다. 그는 서점을 찾아온 텀블위즈를 웃으면서 맞았다.


“이곳은 말이죠! 서점의 탈을 쓴 사회주의자의 천국이랍니다.”


르 미스트랄은 당시 파리 문학계를 흔들던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에게 본부 같은 역할을 했다. 이곳을 오가거나 아예 숙소로 삼았던 작가는 앨런 긴스버그, 그레고리 코르소, 윌리엄 S 버로 등이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작가라면 이곳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서점 선반 사이는 물론 다락에 간이침대가 여러 개 설치돼 밤에 등을 누일 수 있었다.


휘트먼은 가게를 열고 7년 뒤인 1958년 저녁 독서 모임에서 미국 소설가 제임스 존스를 만났다. 그 자리에는 다른 여성도 참석했다. 1919년부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서점을 운영하던 실비아 비치였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를 후원했던 인물이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해 세상에 처음 내놓은 사람도 그녀였다. 당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음란물 판정을 받아 판매 금지된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는 손쉽게 사거나 빌릴 수 있었다.


비치의 서점은 이른바 ‘로스트 제네레이션’ 세대 작가인 어네스트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같은 유명 작가도 모이는 곳이었다. 그 덕분에 파리 시민은 물론 여행객이 반드시 가봐야 할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그녀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문을 닫고 말았다. 일부에서는 독일군의 파리 점령 때 독일군 장교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찾아가 딱 한 권 남은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비치가 거부하는 바람에 강제로 폐쇄당했다고 이야기한다.


어찌 됐든 휘트먼과 비치는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끌렸다. 둘 다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동지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비치는 그날 휘트먼에게 놀라운 제안을 내놓았다.


“휘트먼 씨는 정말 대단한 분이군요. 제가 가진 서점 이름을 휘트먼 씨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비치는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독서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선언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이름을 휘트먼 씨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제가 운영해 온 서점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휘트먼은 곧바로 서점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6년 뒤인 1964년 비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해는 마침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휘트먼은 그때야 서점 이름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바꾸었다. 


휘트먼은 200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훈장을 받았다. 외국인에게 이 훈장을 수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는 2011년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그의 딸 실비아 휘트먼이 가게를 운영한다. 텀블위드를 우대하는 운영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텀블위드는 여전히 서점을 들락거린다. 지금까지 서점에서 자면서 일을 도운 텀블위드는 무려 4만여 명이다. 딱 하나 바뀐 것은 서점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싶다면 사전에 이메일로 연락해야 한다는 점이다.


휘트먼이 서점 문을 연 지 73년이 지났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서점 이름을 바꾼 지는 올해로 딱 60년이다. 휘트먼은 서점을 열고 수년 뒤 바로 옆 건물을 사들였다. 지금은 카페 겸 식당으로 운영된다. 이곳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 서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점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독서 활동을 진행하는 문화센터 역할도 맡는다. 일요일 차 모임과 시 낭송 행사, 작가와의 만남 등이다. 또 여러 가지 독서 모임도 운영한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매일 오전 10시~오후 10시에 문을 연다.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는 일찍 오는 손님을 배려해 오전 9시 30분에 개장한다. 낮이나 초저녁에는 서점이 붐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전 일찍 또는 저녁 늦게 가는 게 낫다. 운이 좋으면 늦봄이나 초여름 오전 서점 앞에서 열리는 시 낭송 행사를 구경할 수 있다. 아니면 7월 저녁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 틈에 끼어 서점 앞 보도에 앉아 신인 작가가 낭독하는 영어 소설을 음미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유명한 여러 영화, 드라마에 메인 주제 또는 촬영 장소로 등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질 정도로 개성 있는 명소라는 점을 드러내는 증거다. 2004년 미국의 리처드 링클레이트 감독이 찍은 ‘비포어 선셋’에서는 초기 장면에 이 서점이 나온다. 전편작 ‘비포어 선라이즈’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헤어진 두 연인이 다시 만나는 곳이 여기다. 유명작가가 된 제시 월러스가 유럽에서 ‘북 투어’를 진행하는데 파리에서 행사를 연 곳이 바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였다. 이 서점이 개점 초기부터 진행해 왔던 작가와의 만남, 독서모임 등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2004년 네덜란드의 벤자민 서덜랜드 감독은 조지 휘트먼의 서점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늙은 노인과 서점의 초상화’을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2003년에는 홍콩 TV 드라마 ‘충상운설(衝上雲霄)2’에도 등장했다. 드라마의 주인공 두 명이 텀블위드가 돼 서점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홍콩에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돌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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