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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r 29. 2024

푸코의 진자와 팡테옹


1848년 29세의 젊은 과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는 흔들리는 진자를 보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리저리 사방팔방으로 흔들어도 진자는 결국에는 좌우로만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착안해 더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자의 이런 성격을 이용하면 지구의 자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겠군.”


푸코는 원래 의학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매일 피를 보면서 산다는 게 끔찍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전공을 바꿔 과학자가 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과학자라고 해서 특정한 분야 하나만 전공하지는 않고 여러 분야를 함께 공부했다. 푸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광학과 천문학 두 가지를 전공했다. 여기에 화학, 전기, 자기장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푸코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도 이미 지구가 자전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다만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푸코는 진자로 그것을 알아보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높은 곳에 진자를 매달아놓고 흔든 뒤 진자의 흔들리는 방향이 가리키는 끝을 보면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공기 저항, 중력, 마찰 등이었다. 아무리 세게 흔들어도 진자는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구의 자전을 입증하려면 진자를 최소한 두 시간 이상 흔들어야 했다. 관성을 늘이려면 진자의 길이도 그만큼 늘일 수밖에 없었다. 끝에 달린 추의 무게도 꽤 무거워야 했다.


푸코는 처음에는 2m 줄에 5㎏짜리 추를 매달아 실험했다. 나중에는 파리관측소에서 11m 줄로 실험을 재연했다. 실험의 성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지구의 자전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쇼’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려면 엄청나게 긴 진자가 필요했다. 그는 쇼 장소를 높은 돔이 있는 팡테옹으로 정했다.


푸코는 1851년 팡테옹 돔에 진자를 매달았다. 길이는 67m였다. 납으로 만든 추의 무게는 28㎏이었다. 그는 시연회 소문을 듣고 수백 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에게 행사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했다.


“여러분은 지구의 자전을 눈으로 확인하는 첫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대대로 후손에게 자랑거리로 남길 수 있는 명예로운 순간입니다.”


푸코는 실험을 시작했다. 진자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움직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진자가 그냥 좌우로 흔들거리는 것으로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푸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진자는 늘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여기 밑에 설치한 시계 같은 큰 장치를. 여기에는 시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자에 달린 추가 가리키는 숫자는 달라집니다. 진자는 제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만 흔들리지만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추가 가리키는 숫자가 변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도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푸코의 설명을 듣고 다시 진자를 쳐다봤다. 정말 진자는 한결같이 좌우로만 흔들리는데 밑에 있는 숫자가 달라졌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진자가 북극이나 남극에 매달려 있으면 그 끝이 가리키는 방향은 24시간 뒤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날 팡테옹에서 실험한 진자가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데에는 32시간 정도 걸렸다. 파리의 위도가 북극이나 남극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날 실험에 사용했던 푸코의 진자는 4년 뒤 파리기술공예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95년 박물관 개보수 기간 중 잠시 팡테옹에 전시됐지만, 2000년 다시 수리를 마친 박물관으로 돌아갔다. 팡테옹에 가면 지금도 푸코의 진자를 볼 수 있다. 원본을 파리기술공예박물관으로 옮긴 다음에 만든 모작이다. 


푸코의 진자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진자를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한 것은 이탈리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 였다. 이 소설 첫 장면에 푸코의 진자가 나온다. 


‘내가 진자를 본 것은 그때였다. 교회의 천장에 고정된, 긴 철사에 매달린 동환은 그 등시성 위의를 자랑하며 이쪽저쪽으로 흔들렸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하지만 그 잔잔한 호흡의 비밀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치 챘을 터이다). 추가 흔들리는 주기는, 철사 길이의 평방근과, 이 땅 사람들에게는 무리수로 보일 숫자인 파이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고도의 합리성이, 동환이 그려 내는 원호와 원지름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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