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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r 30. 2024

베르사유궁전  프티트리아농의 유령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에게는 조카가 하나 있었다. 막내 동생 크리스토퍼 워즈워스의 딸 엘리자베스 워즈워스였다. 그녀는 주교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1886년 옥스퍼드에 가난한 여학생들을 위한 여자대학교를 세웠다. 세인트 휴스 컬리지였다. 학교의 첫 학장으로 고른 인물은 당시 마흔두 살이던 샬럿 앤 모벌리였다.


워즈워스의 조카가 선택한 앤은 윈체스터 출신의 학자이자 작가였다. 그녀는 윈체스터 컬리지 학장과 샐리스베리 주교를 역임한 조지 모벌리의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잘 받아 프랑스어는 물론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도 능통했다. 


학장을 맡은 앤에게는 곁에서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여러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사람은 엘레노어 주어데인이었다. 애쉬번 출신의 작가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여성이었다. 


엘레노어는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앤은 엘레노어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여름방학을 틈타 파리로 건너갔다. 그녀는 엘레노어의 하숙방에서 잠시 같이 살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때가 1901년 8월이었다. 당시 앤은 55세, 엘레노어는 38세였다. 


앤과 엘레노어는 짧은 시간에 의기투합했다. 여름방학을 마치면 옥스퍼드로 돌아가 세인트 휴스 컬리지에서 함께 일하기로 뜻을 모았다. 둘은 귀국에 앞서 파리 시내는 물론 주변 여러 곳을 여행했다.


“엘레노어, 내일은 베르사유궁전에 한 번 가보는 건 어떨까?”

“좋은 생각이에요. 학장님! 그러지 않아도 그곳을 꼭 둘러보고 싶었어요.”


두 여성은 8월 10일 베르사유궁전을 방문했다. 당시 독일의 여행전문 출판사 ‘베데커’에서 발행한 『베데커 가이드북』이 그들의 안내자였다. 두 사람은 먼저 화려한 궁전 내부를 둘러보았다. 영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장식과 그림, 조각, 가구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엘레노어, 가이드북을 보면 베르사유궁전의 하이라이트는 넓은 정원이라고 하는군요. 그곳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즐겨 찾았던 프티트리아농이라는 별궁이 있다고 하네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건물이래요.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프티트리아농에 한 번 가 보도록 해요.”


앤과 엘레노어는 베르사유궁전 밖으로 나가 넓은 정원으로 갔다. 가이드북에는 정원을 둘러보는 요령과 프티트리아농으로 가는 길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그런데 정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무언가 잘못 됐다는 점을 알게 됐다. 쉽게 이야기해서 길을 잃은 것이었다.


“학장님, 이 길은 우리가 방금 지나간 곳이 아니던가요? 저 구부러진 나무는 조금 전에도 봤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미궁에 빠진 것 같군요.”


앤과 엘레노어는 정원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우울하면서 으스스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싸 돌았다. 갑자기 왜 그런 기분을 갖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나무들은 마치 죽은 것처럼 시들해 보였다. 살아있는 나무가 아니라 연극무대에 설치한 조화같이 느껴졌다. 더 이상한 것은 하늘에는 태양이 작열하는데도 나무에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의 몸은 더욱 오싹해졌다. 


“아! 저기 사람들이 지나가네요. 여기가 어딘지, 프티트리아농으로 가는 길은 어느 방향인지 물어봐야겠어요.”


마침 인근 숲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는 게 보였다. 앤과 엘레노어는 그들에게 걸어갔다. 그런데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기이해 보였다. 마치 연극이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옛날 스타일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맨 앞에 서서 걸어가는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성이 입은 옷은 마치 19세기 프랑스대혁명 이전에 귀족들이 입던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 여성을 어디에선가 많이 봤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잠시 실례할게요. 프티트리아농으로 가는 길이 어디죠?”


두 사람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들에게 길을 물었다. 그들은 말은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방향만 가리켰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똑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르쳐준 대로 가도 프티트리아농을 찾을 수 없었다. 계속 같은 길만 뺑뺑 돌 뿐이었다. 


“엘레노어, 저기 다리가 하나 보이네요. 다리에 올라가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을까요? 저기로 가 보도록 해요.”


두 사람은 숲 사이에서 작은 다리 하나를 발견해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그 동안에도 앤과 엘레노어 곁으로 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하나같이 분장을 한 것처럼 보였고, 얼굴은 창백하고 핏기가 없었으며, 걸음걸이는 마치 영화에서 대사가 없는 행인이 지나는 것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프티트리아농이 저기 있네요. 다리를 건너 저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되겠군요.”


앤과 엘레노어는 다리에 올라가자마자 프티트리아농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제야 안심하며 별궁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두 사람은 프티트리아농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음이 놓인 두 사람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이상한 모습으로 걸어 다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태양이 여전히 작열했다.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무 그림자가 지금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죽은 것처럼 느껴지던 나무와 숲에는 싱싱한 바람과 생기가 넘쳐흘렀다. 


“엘레노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가 방금 지나오면서 본 건 뭐지요?”

“글쎄요. 사실 저는 상당히 무서웠답니다. 왜 나무에 그림자가 없는지, 이 더운 날씨에 두터운 중세풍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두 사람은 파리의 숙소로 돌아간 뒤 베르사유궁전과 프티 트라이농에 대해 조사했다. 이후 여러 번에 걸쳐 베르사유궁전과 프티트리아농에 다시 가보았다. 하지만 그날 겪었던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베르사유궁전 측에 8월 10일 프티트리아농 근처에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인 행사가 열렸는지 물어보았다. 궁전 측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고민하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1789년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베르사유궁전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아주 창백한 표정의 여성은 다름 아니라 단두대에 목을 들이밀기 직전의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두 사람은 영국으로 돌아간 뒤 고민하다 그날 베르사유궁전과 정원에서 겪었던 경험을 글로 옮겨 책으로 출판했다. 이름으로는 가명을 사용했다. 그들이 이듬해인 1902년에 펴낸 책의 제목은 『모험』이었다. 책은 불티나게 팔렸지만 쏟아지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결탁해서 마리 앙투아네트 귀신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것입니다. 프티트리아농 근처에 다리가 없다는 게 둘을 비판하는 근거였다. 


비판이 거세지자 두 사람은 신분을 밝혔다. 유럽 사회는 깜짝 놀랐다. 거짓말을 지어내서 ‘소설’을 쓸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연히 때마침 베르사유궁전의 굴뚝에서 지도가 하나 발견됐다. 그 지도에는 프티트리아농 근처에 다리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책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나중에 TV용 영화로도 제작됐다. 영화 제목은 ‘미스 모리슨의 유령’이었다. 2004년과 2015년에는 BBC 방송이 60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으로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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