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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Apr 01. 2024

파리 지하 문화게릴라 UX와 팡테옹


1.


칠흑같이 어두운 1980년의 밤이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근처의 작은 카페에 청년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듯하다가 일순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인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자리에 앉지 않고 일어섰던 한 청년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이번 계획의 구체적 내용을 잘 이해했지? 자, 이제 들어가는 거야.”

청년들은 에펠탑 인근에 있는 세느강의 둑에 달린 사다리를 타고 강변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어두운 터널 안으로 차례로 들어갔다. 좁은 터널에는 각종 케이블들이 깔려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을 밝힌 채 자세를 낮춰 케이블을 따라 터널 안으로 깊숙이 걸어갔다. 

2~3분 정도 뒤 청년들이 도착한 곳은 프랑스 통신성 지하실 입구였다. 철문이 터널과 지하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마른 체구의 청년들은 몸을 옆으로 비틀어 철문 틈으로 들어갔다.

청년들은 지하실 문을 열고 1층 로비로 올라갔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 경비원은 물론 통신부 직원도 모두 퇴근하고 텅 빈 상태였다. 그들은 경비실에서 열쇠를 꺼낸 뒤 서로 나눠가졌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통신성의 각 사무실을 뒤지고 다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다들 여기로 와봐. 우리가 찾던 게 바로 여기 있어.”

청년들은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지하시설물 관리부’라는 이름이 붙은 사무실이었다. 소리를 지른 청년은 서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수십 장의 지도였다. 파리의 각종 건물에 연결된 터널 같은 지하시설물의 위치를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지도를 복사해서 건물을 빠져나가자.”

청년들은 서둘러 지도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복사를 마친 뒤에는 열쇠를 다시 경비실에 갖다놓았다. 이번에는 지하실, 터널로 가지 않고 대담하게 통신성 정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정문 밖에도 경찰이나 경비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여명이 밝아왔다. 청년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여러 해가 흘렀지만 그들이 지하시설물 지도를 훔쳐갔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지도를 훔쳐낸 청년들은 UX(Urban eXperiment·도시의 실험)라는 문화게릴라 단체 회원들이었다. 그들은 훔친 지도를 이용해 매일 파리의 각종 지하 시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터널이 어떤 정부건물·박물관 등과 연결돼 있는지 그리고 지하시설물의 어느 지점에 가면 어떤 공터가 있는지를 하나하나 조사했다. 

이제 파리의 지하시설물은 UX의 세상이 돼 버렸다. 그들은 세느강과 연결되는 한 터널에 본부 사무실을 차렸다. 그곳에 전선을 연결하고 냉장고도 갖다 놓았다. 그림 액자를 걸기도 했다. 사무실 인근 지하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를 상영했다. 그들은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거나 지하시설물에서 잠을 잤고, 밤이면 지하를 통해 파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2.


2005년 9월 자정 무렵 팡테옹 천장에 있는 비밀 장소에 사람들이 모였다. 다름 아니라 UX 회원들이었다. 20여 년 전 지도 절취를 주도했던 장 밥티스트 비오트가 UX의 회장이었다. 그는 유명한 시계회사에서 일하는 시계공이었다. 그가 회원들을 팡테옹에 불러 모은 것은 팡테옹에 있는 바그너 시계 때문이었다.

원래 성당으로 만들어졌다가 지금은 위인 묘지로 사용되는 팡테옹에는 시계가 하나 있다. 19세기에 만든 ‘바그너 시계’다. 원래 아무 이상 없이 잘 돌아가던 태엽시계였다. 하지만 1960년대에 게으른 담당 직원이 매주 한 번씩 태엽을 감는 게 지겹다며 부속을 일부러 손상시키는 바람에 고장이 났다고 한다. 

이후 어느 누구도 바그너 시계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시계는 고장 난 상태로 수십 년간 방치됐다. 팡테옹을 오가는 많은 관광객은 시계가 작동되는지 아닌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위인 무덤이나 잔다르크 연작 그림, 또는 푸코의 진자만 구경하고 돌아가 버렸다. 

비오트는 수년 전 밤에 지하실을 통해 팡테옹에 몰래 들어갔다가 시계가 고장 나 수십 년 동안 멈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프랑스 문화성에서는 시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계가 움직이든 말든 관심을 갖는 사람은 프랑스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 사실에 화가 났다. 비오트는 UX 회원들의 뜻을 모아 시계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날 회의를 소집한 것이었다.

“파리는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야. 팡테옹은 프랑스의 위인들을 모신 유적이지. 따라서 팡테옹은 프랑스는 물론 세계의 정신적 중심이라고 볼 수 있어. 그런데 정부는 예산 타령만 하면서 시계를 수리하지 않아.  정부의 무능에 항의하는 뜻에서 우리가 밤마다 팡테옹에 들어와 시계를 고치자.”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정체가 드러날지도 몰라.”

“우리는 팡테옹 말고도 벌써 파리 시내 유물 14군데를 몰래 수리했어. 그런데 정부는 물론이고 유물 관리인들은 우리가 어디를 어떻게 수리했는지 몰라. 팡테옹도 마찬가지야.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좋아. 회장의 뜻대로 하자. 수리비도 우리 지갑에서 내는 거야.”

UX 회원들은 다음날부터 밤마다 팡테옹의 시계 수리를 시작했다. 이들은 팡테옹 직원들이 퇴근한 뒤 자정 무렵부터 시계를 고쳤다. 수리를 하다 배가 고프거나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회원 중 한 명이 팡테옹 정문을 열고 나가 근처 카페에서 사오곤 했다. 가끔 경찰이 검문을 했지만 위조한 팡테옹 직원신분증을 보여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들은 판자로 의자, 테이블 등을 만들어 팡테옹 내 비밀 장소에 갖다 두었다. 전선도 연결해 불을 켰고, 지하에서 인터넷도 이용했다. 이들이 1년 동안 팡테옹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했지만 팡테옹 직원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숨겨진 계단과 비밀 장소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회원들이 1년여 동안 노력한 끝에 바그너 시계는 2006년 9월 정상으로 회복됐다. 수리비 4000유로(약 600만 원)는 모두 회원들이 나눠 냈다. 시계 수리가 끝나던 날 UX 회원들은 다시 팡테옹에 모였다. 비오트는 샴페인을 가득 채운 술잔을 높이 치켜들고 건배사를 했다.

“모두 수고했어. 다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던 일을 우리가 해낸 거야. 여러분들이 경찰에 체포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애써준 덕분이야. 이제 다른 사업을 찾아서 우리의 조국애를 발휘하기를 기원하면서 건배를 하자. 비바 프랑스.”

UX의 축하 행사가 끝난 다음날 팡테옹에서는 난리가 났다. 정부 관계자, 언론사 기자, 경찰관 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팡테옹을 구경하러 간 시민들이 정부, 언론사, 경찰에 “안 움직이던 팡테옹의 시계가 갑자기 움직인다”는 제보를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팡테옹 관리직원들은 이들이 왜 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 정부 관계자가 흥분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바그너 시계가 어디 있는지 안내를 하세요.”

어리둥절해하는 팡테옹 직원의 안내를 받아 정부 관계자, 기자, 경찰관 들은 시계를 향해 달려갔다. 문 위 벽에 바그너 시계가 걸려 있었다. 놀랍게도 수십 년 동안 멈췄던 시계는 또각또각 분명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펑펑 하며 터지기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와 경찰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누가 수리를 했는지 그들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파리경찰서에 전화가 걸려왔다. 비오트가 건 전화였다. 그는 정부 관계자 등이 팡테옹을 찾아가 시계 수리 사실을 확인했다는 언론 기사를 보고 자신들이 수리를 했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기로 했다. 

“우리는 UX 회원들입니다. 팡테옹의 시계는 우리가 고쳤습니다. 정부의 문화재 관리 실태를 고발하고 국민들이 팡테옹의 시계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수리를 했습니다.”

파리경찰서는 경찰관들을 곳곳에 보내 UX 회원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며칠 동안 조사를 실시한 뒤 비오트 등 UX 회원들을 문화재 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팡테옹에 피해를 입힌 게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래 된 시계를 고쳐서 잘 돌아가도록 만든 것은 문화재 훼손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경찰과 프랑스 정부는 말도 안 된다고 펄펄 뛰었지만 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UX 회원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법원 문을 나섰다. 

UX 회원들은 지금도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활동을 지하세계에서 펼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어디에서 어떤 문화재를 고치는지 이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경찰은 이들을 적발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역부족만 느끼며 한숨만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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