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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Apr 05. 2024

성 루이, 성 유물과 생트 샤펠 성당


1.


센강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하류를 향해 흘렀다. 선선한 바람은 느린 강물에 아주 미세한 물살을 일으켰다. 그 물살 사이로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노는 게 보였다. 갑자기 허공에서 쏜살같이 날아온 새 한 마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다시 물 위로 솟아나온 그의 부리에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물려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어. 잠시만 방심하면 끝장나는 게 세상 이치야. 이런 곳에서 유일하게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장소는 이곳뿐이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는 콩시에르주리 궁전의 창밖으로 센강을 내려다보다 몸을 돌려 예배당 쪽으로 향했다. 그는 예배당 십자가 아래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기도를 드렸다. 국정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비로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예배당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때뿐이었다.


열두 살 때 왕위에 오른 루이 9세는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의 신심이 얼마나 깊었던지 온 유럽은 생전에 그를 ‘살아 있는 성인’으로 불렸고, 그가 평생 기독교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지 교황청이 사후에 그를 ‘시성’해 성 루이로 부를 정도였다. 수많은 역대 프랑스 국왕 중에서 성인이 된 사람은 루이 9세뿐이다.


루이 9세가 한 일을 보면 성인이 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그림을 넣은 성경인 ‘모건 성경’과 구약의 프랑스판인 ‘아스날 성경’을 발간해 프랑스 곳곳에 배포했다. 십자군 전쟁에 나섰다가 포로로 잡혀 3년간 고생한 끝에 몸값 40만 리브르(약 1000억 원)를 내고 풀려난 뒤에는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예루살렘 왕국으로 달려가 아크라 등 기독교 전통을 가진 도시 재건 작업에 자금은 물론 직접 일손을 보태기도 했다. 주변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는 놀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프랑스는 교회의 장녀라네. 프랑스의 국왕이 하느님을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루이 9세가 형식적인 신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심신을 다 바친 신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서 아들에게 하느님을 모시는 진실한 국왕이 되라고 가르쳤다. 심지어 “나는 세상의 어떤 어머니보다 더 너를 사랑해. 하지만 네가 불신자로 영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발아래서 숨이 끊어지는 걸 보는 게 나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루이 9세는 한참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뒤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예배당 문 앞에 재상 살리에리가 조용히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도를 드릴 때에는 절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예배당까지 온 걸 보면 서둘러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가?”


살리에리는 그의 마음을 잘 읽은 왕에게 고개를 약간 숙였다.


“먼 나라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루이 9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 나라에서 손님이? 누구지? 그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어떤 나라에서도 사람을 초대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시점에 그를 찾아올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손님이라니?”


살리에리는 예배당 밖으로 나가자는 뜻에서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먼 나라, 라틴제국의 황제가 보낸 사신이 왔습니다.”

“라틴제국 사신?”


루이 9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틴제국은 1204년 중동으로 가던 제4차 십자군이 이슬람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플랑드르백작 보두앵 1세가 세운 나라였다. 루이 9세 시절의 황제는 1228년에 집권해 10년째 권좌를 지킨 보두앵 2세였다.


프랑스는 라틴제국과 어떠한 용무도 걸리는 게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신이 올 일도 없었다. 라틴제국이 이슬람의 공격으로 위협받는다면 그가 아니라 이탈리아 로마의 교황을 찾아가면 될 것이고, 무역을 원한다면 세계 최대 무역도시인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게 더 적합한 일이었다.


“라틴제국 사신이라면 보두앵 2세 황제가 보낸 사람이라는 이야기인데, 파리에는 왜 왔지?”


살리에리는 왕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루이 9세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궁전의 접견실로 향했다. 살리에리의 말대로 그곳에는 라틴제국 사람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독특한 옷을 입은 사신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프랑스 국왕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저는 라틴제국 보두앵 2세 황제의 특명을 받고 먼 길을 달려온 사신입니다.”


루이 9세는 라틴제국 사신의 의자와 제법 떨어진 곳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프랑스와 라틴제국은 서로 거래할 일이 없는 걸로 아는데, 그대는 왜 파리에까지 온 것인가?”


사신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과거에는 거래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서로 주고받을 게 있다고 저의 주군께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고받을 것이라니, 그게 무엇인가?”

“저의 주군께서는 베네치아에 13만 5000리브르(약 400억 원)의 빚을 지고 계신데, 전하께서 그걸 대신 갚아주시기를 바라십니다.”


루이 9세는 어처구니가 없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내가 태어나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말이로군. 자네 주군의 빚을 내가 왜 갚아줘야 하는 것이지?”


사신은 이번에도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저의 주군께서 그 보답으로 루이 9세 전하가 가장 원하는 것을 드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이 9세는 웃음을 딱 거뒀다.


“내가 원하는 것을 준다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사신은 루이 9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전하께서는 유럽에서 가장 신심이 깊은 국왕으로 명성이 자자하신 성군(聖君)이십니다. 저의 주군께서는 이런 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히셨던 성 십자가 조각과 머리에 쓰셨던 가시관을 보내드릴 것입니다.”


루이 9세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 십자가 조각과 가시관이 콘스탄티노플에 숨겨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것이 정말 있다는 말인가?”

“1000년 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께서 예루살렘에 성지 순례를 가셨을 때 발견한 걸 콘스탄티노플에 가지고 오셨습니다. 비잔틴제국은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게 그걸 비밀 장소에 숨겨 보관했습니다.”


루이 9세는 살리에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살리에리는 국왕이 왜 쳐다보는지 이유를 잘 알았다. 사신의 말이 사실인지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저도 여러 기록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만 라틴제국에서 보내준다는 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사신은 살리에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답변을 내놓았다.


“라틴제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감히 유럽 최강국인 프랑스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의 주군께서 베네치아로부터 돈을 빌릴 때 성 유물을 담보물로 보내셨습니다. 성 십자가와 가시관이 가짜라면 베네치아가 왜 돈을 빌려주었겠습니까? 만약 전하께서 나중에 가짜라고 판단하신다면 그때 가서 라틴제국을 벌하더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루이 9세는 앞선 필립 오귀스트 국왕에 이어 프랑스를 ‘황금시대’로 이끌어 정치적, 경제적으로 유럽 최강국 자리에 앉힌 성군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황금기를 구가했고, 군사적으로도 규모나 전투력 면에서 유럽 최강이었다.  그는 이런 업적 덕분에 당대 사람들에게서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 즉 ‘모든 왕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들었다. 라틴제국 사신이 그를 찾아간 것은 이런 프랑스의 사정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루이 9세는 사신의 대답을 듣고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만약 성 십자가와 가시관을 파리로 가져온다면 이미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유럽 최고 자리에 오른 프랑스와 그의 위상은 종교적으로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에까지 오를 게 분명했다.


루이 9세는 환하게 웃으면서 사신의 두 손을 잡았다.


“자네는 내가 이길 수 없는 뛰어난 협상가로군. 자네 주군에게 당장 달려가서 이야기하게. 베네치아에 진 빚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단 돈은 자네 주군이 아니라 베네치아에 바로 보낼 걸세. 그리고 한 가지 더. 만약 자네 주군이 보낸 성물이 가짜라면 베네치아에 보낸 돈을 다시 돌려받을 걸세. 그걸 자네 주군에게 분명히 전달하게.”



2.


라틴제국 사신을 돌려보낸 재상 살리에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왕이 도대체 왜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전하, 보두앵 2세의 빚을 갚아주고 성 유물을 받아오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루이 9세는 어리둥절해 하는 살리에리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잘 생각해 보게나. 나는 물론 프랑스에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닐 테니까.”

“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루이 9세가 보두앵 2세를 돕기로 한 것은 나름대로 철저한 계산을 한 결과였다. 당시 프랑스는 ‘교회의 장녀’라고 불릴 정도로 교회를 많이 돕고 교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유럽 최고의 기독교 국가라고 평가를 받기에는 1%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성 십자가와 가시관이 파리에 온다면 이를 메우고도 남는 것이라고 루이 9세는 생각했다.


“라틴제국은 흔들리고 있어. 신성로마제국은 예전만큼 강력한 조직이 아니야. 대다수 유럽인은 대륙을 하나로 묶어줄 강력한 힘이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고대하고 있어. 프랑스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종교적인 면에서 아쉬움 점이 많지. 하지만 성 유물이 온다면 사정이 달라져.”


살리에리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것처럼 이마를 탁 쳤다.


“샤를마뉴가 유럽을 구하고 첫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에 오른 것처럼 이제 전하께서 유럽을 하나로 묶을 새로운 구심점이 되시겠군요.”


루이 9세는 더 밝게 싱글벙글하며 살리에리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보두앵 2세의 빚을 갚아주고 베네치아에 있는 성 유물을 이송하는 일은 자네가 맡게. 일 하나는 분명하게 하는 사람이니 전혀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네.”


살리에리는 루이 9세의 깊은 신뢰에 감동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왕은 말을 이어갔다.


“라틴제국에서 성 유물이 파리에 도착하면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지도 벌써 결정했어. 콩시에르주리 궁전 바로 옆에 새 성당을 짓도록 하겠네. 성 유물을 모시는 성당이니 이름은 생트 샤펠로 하는 게 좋겠군. 아울러 성 유물을 넣어둘 새로운 유물함도 하나 만들도록 하지. 궁전과 성당은 안쪽으로 서로 연결되도록 짓겠네.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궁전에서 성당으로 바로 갈 수 있게 만들어 틈 날 때마다 성 유물 앞에서 기도를 드릴 생각이야.”


루이 9세가 궁전과 새로 짓는 성당을 내부 통로로 연결하기로 한 것은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 궁전과 연결된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는 또 새 성당을 2층으로 지어 1층은 시종, 시녀 등이 사용하게 하고 성 유물을 보관할 2층은 왕실 가족만 이용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이것은 샤를마누가 아헨에 지은 성당과 같은 형태였는데, 그가 샤를마뉴의 후계자라는 걸 입증하겠다는 뜻이었다.


루이 9세가 새 예배당 건설 공사를 직접 챙겨가던 사이 학수고대하던 성 유물이 도착한 것은 라틴제국 사신이 파리를 방문하고 1년여 뒤인 1239년 8월이었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수도사 2명이 여러 병사의 호위를 받아 베네치아에 보관 중이던 성 유물을 파리로 운반한 것이었다. 미리 전령을 보내 성 유물 이송 현황을 살피던 살리에리는 성 유물이 파리 근처에까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루이 9세에게 달려갔다.


“전하,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 유물이 파리에 왔습니다. 잠시 후에 궁전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콩시에르주리의 예배당에서 며칠째 안절부절 못 하며 기도를 드렸다가 이리저리 오가기도 하던 루이 9세는 성 유물 도착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궁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 수도사 2명이 궁전 입구에 도착해 성 유물을 실은 마차에서 내리던 중이었다.


루이 9세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그대로 온 몸을 던져 땅에 엎드렸다. 성 유물이 든 함을 든 수도사가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하자, 다른 수도사가 서둘러 달려가 왕을 일으켜 세워 함을 건네주었다.


루이 9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 유물이 파리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1주일 동안 축하행사를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거기에다 참회자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채 베네치아에서 가져온 유물함에서 성 유물을 하나씩 꺼내 은으로 새로 만든 성 유물함 ‘그랑 샤세’로 옮겼다. 생트 샤펠은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랑 샤세를 뱅센 성과 생제르맹앙레 성의 예배당에 보관했다.


성 유물이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교황 인노첸시오 9세는 질투인지 부러움인지, 한탄인지 찬탄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루이 9세에게 직접 왕관을 씌워주신 셈이로군.”



3.


생트 샤펠 성당은 7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248년 4월 완공됐다. 루이 9세는 뱅센 성과 생제르맹앙레 성의 예배당에 보관 중이던 그랑 샤세를 곧바로 이송해 2층 주교좌석 꼭대기에 놓았다. 평소에는 왕족만 그랑 샤세를 알현하고, 신하 및 귀족에게는 매년 성 금요일에만 공개했다.


15m 높이의 유리창 15개가 달린 생트 샤펠 성당은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하다. 스테인드글라스 총 면적만 600㎡에 이른다. 이 중 13세기에 만든 원본은 전체의 3분의 2 가량이고, 나머지는 수리 등을 통해 새로 만든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내용에서부터 성 유물이 파리에 오게 된 과정에 이르기까지 총 1113개 장면을 담았다. 루이 9세가 맨발로 성 유물을 나르던 장면도 묘사됐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 순서로 봐야 한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정수는 2층이다. 빛, 컬러, 공간이 합쳐진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술과 종교의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생트 샤펠을 낮에 방문해야 한다. 운이 좋아 햇빛이 좋은 날이라면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보석함 안에 서 있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밤에 가면 특이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 콘서트가 매일 열리기 때문이다. 실내조명을 받아 낮과는 색다르게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서 귀에 익은 모차르트, 비발디, 바흐 등의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맛도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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