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수도사들은 사흘 내에 클레멘티눔에서 떠나라. 모든 재산은 프라하 시청에 넘겨주고 몸만 가져가라.’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의 지엄한 명령이 프라하 예수회의 본부인 클레멘티눔에 전달된 것은 날씨가 매우 추운 겨울인 1782년 1월이었다. 회의실에 모여 황제가 보낸 편지를 함께 읽던 예수회 수도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가 프로테스탄트 세상이던 보헤미아에 들어와 가톨릭 정신을 되살리느라 고군분투한 게 200년을 넘었어요. 온갖 욕을 다 들어가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처리했는데, 이제 와서 우리를 세상의 적이라고 몰아붙이다니….”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에서도 다들 쫓겨났다더군요. 요제프 2세는 자칭 계몽군주라고 떠들며 종교를 무시하는 사람이니 예수회는 신경도 안 쓰겠지요.”
1540년 로마에서 창설된 예수회가 프라하에 진출한 것은 16년 뒤인 1556년이었다. 그들은 황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카를로바 거리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수도원을 건설했다. 바로크와 고전주의 양식의 혼합체인 클레멘티눔이었다.
예수회는 엄청나게 넓고 화려한 클레멘티눔에 엄청난 분량의 보물을 소장했다. 다이아몬드는 물론 금, 은 같은 귀금속으로 만든 종교용품에서부터 식기,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보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요제프 2세가 재산을 놔두고 나가라고 한 것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요제프 2세의 속셈은 보물을 강탈해 빈으로 가져가려는 겁니다. 황제는 음악에 미쳐 궁중 오케스트라는 물론 민간 작곡가에게 돈을 퍼 준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을 준비하느라 돈을 많이 쓴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리 보물을 팔아서 전비에 충당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수도사들은 재산을 빼앗으려는 요제프 2세의 욕심을 비난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수도원장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클레멘티눔을 200년 가까이 운영해 왔어. 우리 손으로 훌륭하게 일군 수도원을 빼앗기는 것도 억울한데 대대로 조성한 재산까지 강탈당할 수는 없어. 세월이 흘러 정치 상황이 바뀌면 다시 클레멘티눔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재산을 숨겨 두기로 하세. 어떻게 하면 재산을 빼앗기지 않고 숨길 수 있을까?”
수도원장이 클레멘티눔의 재산을 빼돌려 숨기자는 말을 하자 수도사들은 앞다퉈 각종 제안을 내놓았다.
“한밤중에 재산을 마차에 실어 프라하 외곽 동굴에 숨겨놓으면 어떨까요?”
“클레멘티눔은 밤낮 없이 사람이 오가는 카를로바 거리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잖소. 보물을 클레멘티눔 밖으로 빼내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지. 금세 들통이 날 거야.”
“예수회를 지원하는 귀족의 대저택 지하에 숨겨둘 수는 없을까요?”
“사람의 마음은 늘 변하는 법입니다. 지금은 예수회를 지원한다지만 엄청난 보물을 보고 마음이 변하게 될 겁니다.”
수도사들이 많은 의견을 내놓았지만 현실적으로 타당한 제안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한참동안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수도사들은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때 한 젊은 수도사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이색 제안을 내놓았다.
“클레멘티눔에 벽을 쌓아 비밀공간을 만들어 보관하면 어떨까요? 우리 중에서 일부만 알 수 있는 표식을 벽에 남겨 두면 안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도원장은 젊은 수도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기막힌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이야기구먼. 좋은 제안이야.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수도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좋은 방안이라며 박수를 쳤다.
“보물이 사라지더라도 클레멘티눔 비밀의 공간에 숨겨 두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할 겁니다.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입니다.”
수도원장은 젊은 수도사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라면 비밀공간을 어디에 만들 텐가?”
“우리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곳이어야 합니다. 클레멘티눔에는 그런 공간이 딱 한 곳 있습니다.”
수도사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젊은 수도사가 제안한 공간이 어디인지 곧바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2층에 있는 수도사 휴게실이지.”
수도원장은 환하게 웃으며 젊은 수도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남은 문제는 벽을 어떻게 쌓느냐 하는 건데…. 우리는 평생 기도를 하고, 책을 읽거나 쓰고, 가벼운 밭일만 했어. 아무도 모르게 벽을 쌓을 능력이 없어. 그건 어떻게 해결할까?”
이번에는 바깥세상과 연락을 자주 하는 나이 든 수도사가 손을 들었다.
“클레멘티눔 근처에 안드레이라는 유명한 벽돌공이 삽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지요. 그자를 밤중에 몰래 데려와서 벽을 쌓으라고 시킵시다.”
수도원장은 다시 밝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수도원장은 다음날 자정 무렵 수도사 두 명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들은 수도사 옷을 벗고 불량배에게나 어울리는 험악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벽돌공 안드레이는 클레멘티눔에서 걸어가면 2~3분 정도 걸리는 후소바 거리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수도사는 일부러 마차를 타고 갔다. 수도원장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후소바 거리 맨 끝에 자리 잡은 벽돌공의 집 문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안드레이 씨, 안에 계시오?”
안드레이는 자고 있었던지 눈을 비비고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누구시오? 이 늦은 밤에.”
“곤히 잠든 당신을 깨운 모양이군요. 워낙 급한 일이라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한밤중에 찾아왔다오. 벽 공사를 서둘러야 하는데 당신이 일을 맡아 주면 좋겠군요. 공사를 다 마치면 보수는 다른 곳에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넉넉히 드리리다.”
두 수도사는 강제로 끌다시피 벽돌공 안드레이를 마차에 태웠다. 그들은 실례하겠다면서 검은 천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정말 가까운 거리였지만 수도사들은 바로 가지 않고 프라하 시내 곳곳을 여러 번 돌았다. 때로는 골목길로 들어갔고, 때로는 대로를 질주했다. 벽돌공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수도사들은 클레멘티눔에 도착해서도 벽돌공의 눈을 바로 풀어 주지 않았다. 그를 의자에 앉힌 뒤 수도사 여러 명이 들어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여러 번 오르내렸다. 어느 층에서 공사를 하는지 알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수도사들은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 마침내 2층 복도 끝에 의자를 내려놓았다. 다른 수도사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를 데려온 두 수도사만 남아 벽돌공의 눈을 풀어 주었다. 공사를 할 비밀 공간 주변에는 커튼을 쳐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다지 어려운 공사는 아닐 거요. 이 방 앞에 벽돌을 쌓아 주기만 하며 된다오. 다만 다른 벽과 전혀 구분할 수 없도록 쌓아 주시오. 당신조차 새로 쌓은 벽이 어딘지 알 수 없도록 만들면 된다오.”
벽돌공은 가린 눈을 풀자마자 공사를 시작했다. 평생 벽돌만 쌓아 온 그로서는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벽돌이랑 몰타르도 다 가져다 놓아 공사 준비에 시간을 허비할 이유도 없었다. 그 덕분에 자정이 다 돼서 시작한 공사는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마무리됐다. 낡은 옷을 입은 두 수도사는 벽돌공에게 금화 세 개를 건네면서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수고가 많았소. 이번 일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도록 하시오. 만약 누군가에게 오늘 일을 발설한다면 당신은 저주를 받아 남은 인생을 힘들게 살아야 할 거요. 우리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말고 명심하시오.”
두 수도사는 다시 벽돌공의 눈을 가려 의자에 앉혔다. 그가 클레멘티눔에 들어올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위층, 아래층을 오르내리다가 마차에 태운 다음 시내를 여러 바퀴 돈 뒤 그의 집에 내려 주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복잡했던지 벽돌공은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마치 그날 밤의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벽돌공이 클레멘티눔인 줄도 모르고 벽돌 공사를 해 주고 여러 날이 흘렀다. 벽돌공은 매일 일을 마치면 귀가하기 전에 자주 찾던 선술집에 들렀다. 주인은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그때 뒤에서 여러 명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자네들, 그 이야기 들었나? 클레멘티눔에 살던 예수회 수도사들이 모조리 쫓겨났다는 이야기 말일세. 프라하 시청 사람들이 수도사들을 몰아낸 뒤에 가 보니 그 많던 재산이 모조리 없어졌다더군. 소문에는 그곳에 엄청난 귀중품이 넘쳐났다고 하던데…. 시청 사람들은 수도사들이 재산을 빼돌려 어디에 숨겨 놓았다고 믿는다더군. 그런데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으니 찾을 수가 있어야지.”
벽돌공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상한 느낌이 머리를 스치는 걸 감출 수 없었다. 며칠 전 밤에 눈가리개를 하고 찾아가 벽돌을 쌓은 건물이 클레멘티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술집 안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의 눈에 커다란 종이 하나가 보였다. 프라하 시청이 시내 곳곳에 붙여 놓은 방문이었다.
‘클레멘티눔에서 예수회 수도사들이 빼돌린 재산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그 재산의 10분의 1을 상금으로 주겠다.’
두 눈을 번쩍 뜬 벽돌공은 마시던 술을 그대로 남겨놓고 곧바로 시청으로 달려갔다. 그는 시장에게 며칠 전 밤에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시장은 수도사들이 비밀 벽을 만들어 보물을 숨겨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클레멘티눔으로 가서 비밀 벽을 찾도록 하게.”
벽돌공은 시청 직원들과 함께 클레멘티눔으로 달려가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돌아다니며 모든 방과 복도를 샅샅이 뒤졌다. 이 벽, 저 벽을 눈으로 살펴보고 손으로 두들기거나 귀를 가져다 대고 소리를 들어보곤 했다. 하지만 그조차 며칠 전에 세운 벽이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직접 만든 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공사는 완벽했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비밀을 지키라고 했던 수도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클레멘티눔을 뒤진 벽돌공은 며칠 뒤 눈이 멀고 말았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천국에 올라가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눈먼 유령이 됐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밤마다 클레멘티눔 근처를 떠돌며 모든 건물의 벽을 톡톡 두들겨 보고 있다.
예수회의 처지는 벽돌공보다 낫지 못했다. 그들은 영원히 클레멘티눔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비밀의 벽을 만들었던 수도사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여서 어느 누구도 비밀의 벽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숨긴 엄청난 보물은 지금 클레멘티눔 어딘가에 있을 비밀공간에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예수회가 말라 스트라나 지역의 블타바 강변에 대형 보물 상자를 묻어놓았다는 전설도 있다. 지금까지 아무도 보물 상자를 찾지 못했다. 땅을 파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보물 상자에 저주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보물을 노리고 땅을 파는 사람은 살아서는 온갖 불행에 시달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간다는 저주였다.
게다가 예수회가 보물 상자를 묻었다고 알려진 곳에는 스트라코바 아카데미라는 건물이 들어섰다. 과거에는 부모를 잃은 귀족의 아이들을 보호하던 일종의 보육원 시설이었지만 체코공화국 수립 4년 후인 1993년에는 정부청사 건물로 바뀌었다. 이 건물을 허물지 않는 한 이제는 땅조차 파볼 수 없게 됐다. 예수회의 보물은 과연 어디에 숨겨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