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 보르게스는 스페인어권에서 매우 널리 알려진 소설가, 시인 겸 번역가다.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문학계에 ‘매직 리얼리즘’이라는 이색적인 분야를 도입한 작가로 유명하다.
보르게스는 194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발간된 잡지 『쉬르』에 프라하를 배경으로 삼은 판타지 단편소설 ‘비밀의 기적’을 썼다. 16~18세기 프라하의 가톨릭을 좌지우지했던 예수회가 건설한 클레멘티눔이 소설의 주요 무대였다. ‘비밀의 기적’은 클레멘티눔의 신비하고 은밀한 분위기를 잘 묘사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작가의 글에 왜 프라하의 클레멘티눔이 등장한 것일까?
보르게세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어릴 때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오래 살았다. 열여섯 살 때에는 구스타프 메이링크가 쓴 『골렘』을 읽고 감명을 받아 보헤미아와 프라하에 깊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보르게세는 아르헨티나로 귀국한 뒤에는 국립도서관 관장을 지냈다. 과거에는 수도원이었지만 지금은 체코 국립도서관으로 변한 클레멘티눔이 갖고 있는 깊은 역사와 시대적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쓴 ‘비밀의 기적’을 잠시 간단하게 읽어보자.
‘도서관 사서이면서 극작가인 야로미르 흘라딕은 프라하에 사는 유대인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체코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다. 흘라딕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돼 총살당할 위기에 몰린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지독하게 흘라딕을 괴롭힌 걱정거리는 오랫동안 매달려온 미완성 대본이다. 그는 눈을 감기 전에 대본을 꼭 완성하고 싶다. 그의 인생을 심판할 유일한 유산은 대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총살형이 예고된 탓에 흘라딕에게 남은 시간은 하루뿐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대본을 완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답답해진 그는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대본을 완성할 수 있게 딱 1년만 더 달라는 것이다.
흘라딕은 그날 밤 클레멘티눔에 가는 꿈을 꾼다. 신의 뜻을 담은 편지가 꽂혀 있는 책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그 책을 발견하려고 틈만 나면 도서관을 찾았다. 하지만 650만 권이나 되는 책 사이에서 제목도 모르는 책을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흘라딕이 도서관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사서에게 빌려간 지도를 반납한다. 그는 그 사람을 곁눈질하다 실수로 지도 중에서 아시아의 인도가 그려진 부분을 건드린다. 그때 갑자기 그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너에게 일을 할 시간이 주어졌다.’
깜짝 놀란 흘라딕은 꿈에서 깬다. 그는 다음날 아침 독일군 병사들에게 붙잡혀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게슈타포 장교는 흘라딕을 포함해 여러 유대인을 한 줄로 세워놓고 병사들에게 발사 지시를 내린다.
총알이 날아오는 순간 놀랍게도 세상의 시간이 멈추어버린다. 모든 것이 마치 얼음처럼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는 것은 흘라딕도 마찬가지다. 다만 의식은 잃지 않는다.
흘라딕은 이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신이 그에게 미완성 대본을 마무리할 시간을 준 것이다. 장교의 발사 명령과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겨 날아오는 총알의 ‘객관적 시간’ 사이에 1년이라는 ‘주관적 시간’이 생긴 것이다. 흘라딕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이다. 이것이 바로 ‘비밀의 기적’이다.
흘라딕은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대본을 늘리고 편집한다. 사소한 내용까지 모두 정리하는가 하면 최대한 만족스럽게 어감도 수정한다. 1년 만에 그는 대본을 완성한다. 남은 것은 필명을 적는 것이다. 그때 다시 ‘객관적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병사가 쏜 총알이 날아와 그의 목숨을 앗아간다.’
2.
19세기 후반 예수회가 떠난 뒤 클레멘티눔은 공공도서관으로 바뀌었다. 문을 닫은 여러 예수회 학교와 수도원에 보관돼 있던 책을 이곳으로 모두 옮겼기 때문이다. 처음에 클레멘티눔 운영을 맡은 도서관 관장은 프리메이슨 비밀 회원이었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친구였던 카렐 라파엘 운가르였다. 모차르트는 프라하에 가면 클레멘티눔을 찾아가 친구의 안내로 도서관을 둘러보곤 했다.
클레멘티눔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공산정권 시절이던 1950년대였다. 공산정권은 클레멘티눔을 국립도서관으로 지정한 뒤 여러 수도원에 흩어져 있던 각종 서적을 이곳으로 모두 옮겼다. 대규모 재건축 프로젝트를 실시해 클레멘티눔 내부 공간을 도서관 시설로 바꾸는 공사도 실시했다. 현재 클레멘티눔에 보관돼 있는 책은 650만 권에 이른다. 이미 시설 수용 용량을 초과한 상태다. 그래서 체코 정부는 새로운 시설을 지어 책을 옮길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650만 권의 책 중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 서고에는 2만 2천여 권만 꽂혀 있다.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돼 있다. 서고는 두 개 층으로 나뉘어 책을 전시하고 있다. 1층은 신학 서적이다. 2층은 수학, 언어학, 수사학, 라틴어, 그리스어, 철학 등 학술서적이다. 책 대부분은 라틴어로 쓰였다. 물론 독일어, 체코어나 다른 유럽어로 쓴 책도 있다.
클레멘티눔 도서관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관광객은 입구에서 잠시 사진만 찍을 수 있다. 만약 누구라도 도서관에 들어가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오랜 역사를 담은 수백만 권의 책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 된다. 도서관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 수백 년의 역사가 도서관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면서 옛날이야기를 함께 나눌 적당한 인물을 찾는다는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프라하에 여행을 갈 기회를 얻는다면 도서관에 한 번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비밀의 기적’에 나오는 흘라딕처럼 혹시 클레멘티눔의 보물이 숨겨진 ‘비밀의 지도’가 꽂힌 책을 발견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