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 종일 프라하 시내를 뜨겁게 달궜던 해는 서서히 기울었다. 블타바강 너머로는 빨갛게 노을이 졌다. 건물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가 오늘 하루도 다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랍인 차림의 한 남자가 오피슈 언덕에서 강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뒤로는 무장한 병사 10여 명과 하인 10여 명, 그리고 수레 10여 대가 서 있었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에 다 왔군. 황제가 장사꾼이라면 다른 곳은 몰라도 프라하에는 반드시 가 봐야 한다고 말했지. 내려가 보면 저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겠지.’
아랍인처럼 보인 남자는 이슬람이 지배하던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이브라힘 이븐 야쿠브라는 무역상이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당시 칼리프 알 하캄(재임 961~976년) 2세의 명령을 받아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1세(재임 962~973년)를 만나러 긴 여행을 떠났다.
야쿠브는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코르도바에서 출발해 북부 카탈루냐와 프랑스 프로방스를 거쳐 독일 막데부르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토 1세를 만나 알 하캄 2세의 뜻을 전했다. 그가 무엇을 전달했는지, 어떤 대답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장사꾼이어서 지리와 여행에 관심이 많았던 야쿠브는 오토 1세에게서 신성로마제국 영토를 자유롭게 여행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황제가 붙여준 병사 10여 명이 그를 따라다니며 길을 안내하면서 호위도 맡았다. 신이 난 그는 독일은 물론 폴란드를 거쳐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까지 들어갔다. 당시 보헤미아는 ‘선한 왕’ 바츨라프 1세를 암살한 볼레슬라프 2세(재임 935~972년)가 다스렸다.
야쿠브는 일행을 이끌고 블타바 강에 설치된 나무다리를 건너 구시가지의 공터로 갔다. 그곳에는 시장이 조성돼 있었다. 건물로 이뤄진 상설 시장은 아니었고, 바닥이나 자판에 물건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비상설 시장이었다. 공터에는 각종 식품과 물건을 파는 자판이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빵, 도자기, 양모, 약, 공예품을 파는 자판은 물론 채소, 버터, 치즈 등을 파는 농축산 자판이 거리에 빼곡하게 들어찼다.
장사꾼인 야쿠브는 북부 아프리카와 중동은 물론 비잔틴 제국에 수시로 장사를 하러 다녔다. 이렇게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인 그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도시인 프라하에 놀라운 규모의 시장이 차려진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는 프라하에 외국 상인이 몰려오는 국제무역시장이 있다고 했어. 이곳에는 전부 프라하 사람들만 있는 걸로 봐서는 국제무역시장은 아닌 모양이군. 지역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이 이 정도 규모라면 국제무역시장은 얼마나 큰 걸까?’
야쿠브가 시장을 쭉 둘러보고 있을 때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보라고 보낸 집사가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주인 나리, 저쪽으로 가면 틴스키 드부르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름의 뜻이 ‘폐쇄된 정원’이라고 합니다. 다들 그냥 틴이라고만 부르더군요. 국제무역상인은 그곳에서만 장사를 할 수 있으니 거기로 가야 된답니다.”
“외국 상인을 한곳에 몰아넣어 관리하는 모양이군. 어찌 보면 그게 서로에게 편리할 수도 있겠군.”
야쿠브는 일행과 함께 집사가 알아 온 틴을 향해 걸었다. 구시가지 공터 바로 앞이어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틴은 깊이 판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는 두 개뿐인 데다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 아무나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었다. 그는 다리를 건너 틴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공터와는 달리 꽤 큰 목재 및 석재 건물이 여러 채 있었다. 주거용 건물이라기보다는 술집, 여관, 상점으로 이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집사가 미리 파악한 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관 주인이 그를 보고 서둘러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나리.”
야쿠브는 아무 말 없이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은 식당 겸 술집이었다. 방은 아마 2층에 있는 모양이었다. 집사는 야쿠브 뒤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주인 나리, 2층에 일행 모두가 묵을 수 있는 방을 구했습니다.”
“수레와 짐은 어떻게 보관하지?”
“틴스키 드부르 한쪽에 지하 창고가 있습니다. 외국 상인 물건은 모두 그곳에 보관합니다. 물건을 맡기면 보관증을 준다고 합니다. 병사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물건을 훔쳐가거나 빼돌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국왕이 그냥 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야쿠브는 국왕이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외국 상인은 국왕으로 봐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신변은 물론 물건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면 더 많은 상인이 찾아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자네가 짐을 잘 맡기고 오게. 이곳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야. 돌아갈 때 돈이 없어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물건을 잘 사고팔도록 하게.”
“예, 주인님.”
야쿠브는 여관 주인을 불렀다. 그와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프라하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을 좀 해 주게나.”
주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야쿠브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했다. 야쿠브의 옷과 그가 가져 온 수레에 실린 물건을 보건대 지금까지 틴에 온 다른 상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물임에 틀림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런 큰 상인을 단골로 잡아놓으면 앞으로 장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한마디로 유럽에서 가장 큰 국제무역시장입니다. 이곳을 들락거리는 수레는 매일 수백 대에 이릅니다.”
“하루 수백 대의 마차가 오간다고? 그게 사실인가?”
“주변에 해자를 파서 보호하는 걸 보십시오. 그만큼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보호할 가치가 있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틴 바깥에도 넓은 공터가 있고 시장이 형성돼 있더군.”
“원래는 단순히 넓기만 한 공터였지요. 틴이 생겨 외국 상인이 몰리자 공터에서 장사를 하려는 현지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답니다. 나중에는 수십 명, 수백 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공터는 광장이자 시장으로 변했지요.”
야쿠브는 식탁에서 몸만 돌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처음에 볼 때는 아주 폐쇄된 공간처럼 느껴졌지만 내부 분위기는 전혀 폐쇄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활기차고 즐거운 곳이었다. 낮에 장사를 하느라 진이 빠진 상인들은 술을 마시면서 피로를 풀었다.
“틴을 라틴어로 ‘라이타 쿠리아’라고 부릅니다. 번역하자면 ‘즐거운 집’이라는 뜻입니다. 상인이 워낙 많이 몰려 돈이 바닥에 굴러다닐 정도인데다 상인에게서 돈을 뽑아내기 위해 온갖 재미있는 유흥거리가 흘러넘치기 때문이지요.”
야쿠브가 자리를 잡은 여관의 식당에서는 삼삼오오 모인 상인들이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온갖 일을 자랑하듯이 앞다퉈 털어놓았다. 때로는 거짓말을 보태기도 하고 때로는 침소봉대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 보고 들은 소식이나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야쿠브가 들은 이야기도 있었고,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다.
‘물건은 물론이거니와 정보도 넘쳐나는군. 이곳에 앉은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른 상인들에게서 들은 희한하고 신기한 소식과 정보는 한두 가지가 아니야. 정말 대단한 곳이야.’
여관 주인이 야쿠브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나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신 분이신가요?”
야쿠브는 주인을 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알 안달루시아라고 들어 본 적이 있나?”
“알 안달루시아라고요? 거기가 어디죠?”
야쿠브는 주인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은 당시에는 별로 부유하지 않은 유럽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와 무역하거나 교류해도 엄청난 부를 챙기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당연히 유럽에서도 동쪽 끝에 자리를 잡은 보헤미아에 사는 작은 여관 주인이 알 안달루시아를 알 까닭이 없었다.
“자네, 이슬람은 잘 알겠지?”
“그럼요. 이곳에는 독일, 폴란드, 러시아, 헝가리, 베니스,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스는 물론 아르메니아, 투르크, 아랍에서도 상인들이 온답니다.”
“알 안달루시아는 프랑스 아래에 있는 곳이야. 그곳을 이슬람이 200년 전에 정복했지. 나는 그곳에서 국왕을 모시면서 세계 각국을 돌며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네.”
여관 주인은 야쿠브의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기는 평생 프라하에 틀어박혀 살던 사람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유럽 한쪽에서 벌어진 일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야쿠브가 알 안달루시아에서 왔건, 러시아에서 왔건 그에게 돈만 많이 벌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그는 싱글벙글거렸다.
야쿠브는 961~962년 사이 2년 동안 유럽을 한 바퀴 여행하고 이베리아 반도에 돌아가 3년 뒤인 965년에 책을 썼다. 여행하면서 알게 된 낯선 지역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 여행기였다. 거기에는 프라하 부분도 들어 있었다. 책이든 문서든 종이로 된 자료에 프라하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프라하는 돌로 만들어진 도시다. 이곳은 중요한 무역 도시다. 북쪽에서는 가장 잘 사는 도시다. (폴란드의)크라쿠프에서 슬라브 족이 장사를 하러 온다. 투르크의 영토에서 오는 무슬림과 유대인도 마찬가지다.’
2.
알 안달루시아의 상인 야쿠브는 실존인물이었고, 그가 프라하를 방문한 것도 기록에 남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2천400㎞나 떨어진 먼 곳이어서 야쿠브는 잘 몰랐지만 사실 그 당시만 해도 프라하는 이미 많은 나라의 질시를 받을 만큼 번성하던 도시였다. 이곳에 살던 유대인은 금과 은을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산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야쿠브가 책에 남긴 ‘돌의 도시’라는 것은 돌로 집을 지을 만큼 돈이 넘쳐나는 부유한 곳이라는 뜻이었다.
야쿠바는 오늘날 ‘구시가지 광장’과 운겔트(당시 틴)에 간 것으로 추정된다. 구시가지 광장은 원래 9세기까지만 해도 단순히 넓기만 한 공터였다. 유목민이 블타바 강을 오갔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먼 옛날에는 가축에게 풀을 뜯기거나 물을 먹이던 초원이었을지 모른다.
구시가지 광장은 야쿠브가 프라하에 갔던 10세기만 해도 아직 형성 초기여서 오늘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저택 같은 건축물은 하나도 없이 노점상들만 모인 넓은 공터에 불과했다.
이러던 차에 광장 한쪽 구석에 국제무역시장인 운겔트가 생겼다. 이곳에 외국 상인이 몰려 성황을 이루자, 외국 상인에게 직접 만든 물건을 팔려고 공터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지역 사람들끼리 장사를 하게 됐다. 처음부터 대규모로 시장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나중에는 수십 명, 수백 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변한 것이었다.
당시 시장의 흔적은 아직도 지명으로 남아 있다. 코트바 백화점 뒷골목의 이름은 리브나(Rybná)다. ‘생선 거리’라는 뜻이다. 운겔트 뒤쪽에는 ‘고기 거리’라는 뜻의 마스나(Masná)가 있다. 하벨 시장 앞의 우헬니 트르흐는 ‘석탄 시장’이라는 뜻이다.
공터에 시장이 형성되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돈이 오가는 시장 인근에 앞다퉈 저택을 건설했고,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러 가기 쉽게 교회도 만들었다. 마을은 처음에는 강변 지역에 자리를 잡았지만 나중에는 시장을 온통 에워싸게 됐다. 그러다 보니 시장은 마을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게 됐다. 결국 구시가지 광장은 처음에는 단순한 공터였지만 집들이 주변을 둘러싸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구시가지의 중심지가 돼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은 시장을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건설된 게 아니었다. 빈자리가 생기면 아무나 대충 집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길은 좁고 구불구불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길이 막혀 끊어져 버리기도 했다. 오늘날 구시가지 일대의 도로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구시가지 광장은 처음에는 단순히 ‘큰 광장’으로 불렸지만 건물이 제법 들어선 13세기에는 ‘옛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북쪽에 신시가지가 들어선 이후인 18세기부터는 ‘구시가지 지역’ 또는 ‘큰 구시가지 광장’으로 불리게 됐다.
지금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됐고 체코인에게 가장 소중한 광장이다. 프라하를 ‘보헤미아 도시들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체코인이 구시가지 광장을 ‘프라하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