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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04. 2024

황금 요정과 마이셀로바 시나고그


1.


모르데카이 마이셀은 17세기 프라하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존경받던 사람이었다. 너그럽고 손이 컸던 그는 사비를 들여 유대인 지구의 더러운 진흙탕 도로를 돌로 포장했고, 아름다운 구청사를 건설했고, 시나고그 두 곳과 대학교도 만들었다. 여성이 이용하는 제례용 목욕시설을 건설했고 빈민 구제시설과 고아원도 설립했다. 게다가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루돌프 2세 황제에게 많은 돈을 바치기도 했다.


마이셀이 유대인 지구 개발에 투입한 돈과 황제에게 바친 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사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벌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황금의 요정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만들어지게 됐다.


‘황금의 요정’ 전설은 유대인 지구의 유명한 랍비 이츠하크가 프라하를 떠나 시골에 다녀올 때 일어난 일에서 시작한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도로가 없어 도시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는 사람이 많았다. 그도 그날따라 시골에서 돌아오는 길에 울창한 숲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버렸다. 마차를 몰던 마부는 늘 가던 곳인데도 웬일인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오른쪽으로 갔더니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고, 왼쪽으로 갔더니 눈앞을 가로막는 절벽이었다. 가운데로 달려가자고 하자 말 두 마리는 비명을 지르며 앞발만 들어올렸다. 


이츠하크와 마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마차에 앉아 비지땀만 뻘뻘 흘릴 뿐이었다. 이츠하크는 참다못해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차 옆의 큰 나무 뒤에서 희미한 불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나무를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나무 뒤로 돌아선 순간 이츠하크는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곳에는 키가 30cm밖에 안 되는 작은 요정 둘이 서 있었다. 턱에는 엄청나게 긴 갈색 수염이 달려 있었고, 등에는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를 넣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둘은 이츠하크를 보고도 아는 체 하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냥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었다.


이츠하크는 바닥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둘을 지켜보았다. 둘은 정말 작은 데다 금이 든 배낭이 너무 무거워 걸어가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1m를 가는 데에도 10분 이상이 걸릴 정도였다. 참다못한 이츠하크는 둘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너희들은 금을 어디로 가져가는 거니?”


마치 마법사의 지시라도 들은 것처럼 두 요정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배낭을 벗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배낭에 든 금덩어리는 사라졌다. 겨우 한두 개만 땅에 떨어져 반짝였다. 둘 중 하나는 화난 표정으로 이츠하크에게 소리를 지르더니 달아나 버렸다.


“너 때문이야.”


이츠하크는 나머지 하나에게 다시 물었다.


“네가 말해 보렴. 이 금은 누구 거야?”


다른 요정은 조용히 대답했다.


“이스라엘 부족 사람 중 한 명에게 가져가는 거야. 네가 우리한테 말을 건 것은 잘못된 거야. 그렇게 하면 금의 주인에게 큰 해를 끼치게 돼.”

“금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름을 말해 줄 수 있겠니?”

“그럴 순 없어.”


이츠하크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요정에게서 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 같았지만 일단 아무 질문이나 던져 보기로 했다.


“금의 주인은 언제 금을 받게 될까?”


그런데 요정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네 딸이 결혼한 뒤야.”


이츠하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딸? 그것이 금과 무슨 상관이 있지?”


요정은 두 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말해 줄 수 없어. 그냥 땅바닥에 떨어진 금이나 주워 가. 그러면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이츠하크는 더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품에서 큰 쌈지를 꺼내 땅에 떨어진 금 세 덩이를 집어넣었다. 머리를 다시 들었을 때 두 요정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어둠이 깔렸고 요정 둘을 가렸던 나무도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그는 할 수 없이 마차로 돌아갔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세.”


집에 도착한 이츠하크는 작은 종이 3개를 꺼내 금을 하나씩 따로 넣었다. 그중 하나를 창문에서 골목으로 집어던졌다. 누가 금을 주워 가는지를 보면 요정이 말한 금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속셈이었다. 많은 사람이 골목을 오갔지만 아무도 금을 건드리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바닥에 떨어진 걸 못 보는 건가?’


이츠하크는 할 수 없이 금을 다시 챙기려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다 해진 옷을 입은 소년이 맨발로 깡충깡충 뛰어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두루 살피더니 땅에서 금을 주워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이츠하크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손도 못 쓰고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며 탄식했다.


“저런 꼬마가 어떻게 백만장자가 될 수 있겠어!”


이츠하크는 다음날 두 번째 금덩어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번에도 어제 그 소년이 뛰어오더니 금덩어리를 주워 달아나 버렸다. 이츠하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일이군. 저렇게 철없는 어린 꼬마가 금덩어리를 가져가다니! 저 꼬마는 돈도 모르고 장사도 모르는 애일 텐데. 금덩어리를 가져가서 뭘 하려는 거지?”


이츠하크는 다음날 다시 금덩어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날도 결과는 똑같았다. 다 해진 옷을 입은 소년이 와서 금을 주웠다. 그제야 이츠하크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이틀 동안 저 아이의 외모에만 눈을 둔 거야. 저 아이의 내면은 어떤지 보지 않았어. 저 꼬마는 나중에 커서 두 요정이 갖고 가던 금덩어리의 주인이 될 게 분명해.’


이츠하크는 소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유대인 지구 경찰서로 찾아갔다. 


“거리에서 금덩어리 3개를 잃어버렸다네. 분실한 것인지 도둑맞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아. 어쨌든 금을 챙긴 사람이 돌려주면 문제를 삼지 않겠네. 자네가 알아봐 주도록 하게.”


경찰관은 유대인 지구 한복판에 방문을 붙였다. 이츠하크가 이야기한 내용을 그대로 담은 방문이었다. 불과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츠하크가 봤던 소년이 경찰서로 찾아왔다.


“훔친 것은 아니에요. 땅바닥에 떨어져 있기에 주운 것일 뿐이에요.”


이츠하크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돼 정말 기뻤다. 자세히 살펴보니 금덩어리 3개를 주워 간 소년이 분명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아이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내 금덩어리를 찾아 준 대가로 뭘 줄까?”


소년은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다른 건 필요 없어요. 하나님의 은총만 빌어 주세요.”

“너는 정말 바보구나. 아무도 네가 금을 주워 가는 걸 못 봤는데 그냥 챙겨도 되지 않았겠니? 그런데 왜 나한테 돌려주려고 두 개를 가지고 온 거니?”


소년은 놀란 눈으로 이츠하크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하느님이 저를 욕심의 지옥에서 구해 주신 거예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 지켜보고 계셨잖아요?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저의 행동을 모르실 리 없어요. 아버지는 늘 저에게 ‘돈은 구름처럼, 꿈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단다. 돈은 진정한 구원이 되지도 못한단다. 그러니 돈에 얽매이지 말거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츠하크는 정말 감격한 나머지 소년을 꼭 껴안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느님이 너에게 축복을 내리실 거야. 얘야!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나랑 같이 사는 것은 어떨까? 풍요롭게 살게 해 주고 학교에도 보내 줄 거야.”


소년은 고개를 거칠게 가로저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떠나면 눈먼 아버지는 어떻게 해요? 하루 종일 아버지를 돌보시느라 아무런 일도 못 하는 어머니는 또 어떻고요. 제가 푼돈이라고 벌지 않으면 두 분은 굶다가 돌아가실 거예요.”


이츠하크는 소년의 착한 심성에 다시 감동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드릴 거야. 그건 그렇게 네 이름은 뭐니?”

“저는 모르데카이 마이셀이에요. 올해 열다섯 살이에요.”



2.


마이셀이 이츠하크의 집에 들어가 산 지 5년이 지났다. 그는 학교에서는 여러 언어와 수학, 논리를 배웠고, 이츠하크에게는 유대교의 진리와 장사하는 기술, 사람을 다루는 요령을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덩치는 커지고 용모는 단정해졌고, 이츠하크의 외동딸 레이철과는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츠하크는 두 아이를 결혼시키기로 결심했다. 둘이 혼인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대인 지구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츠하크 씨는 유대인 지구에서 가장 재산이 많고 가장 유명한 랍비잖아? 반면에 마이셀은 가난한 집안의 외동아들이고. 그런데 이츠하크 씨의 딸이 마이셀과 결혼한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이유가 있을 거야. 이츠하크 씨의 머리가 이상해졌을지도 모르지.”


이츠하크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모르지 않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하든 어떤 눈초리를 보내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이셀과 레이철의 결혼식은 유대인 지구의 구 시나고그 정원에서 열렸다. 결혼식과 결혼 축하행사는 1주일간 이어졌다. 


결혼 축하행사가 모두 끝난 다음날 이츠하크는 마이셀과 함께 마차를 몰고 여행에 나섰다.  5년 전 두 요정을 만났던 시골길에 가려는 것이었다. 그는 하늘이 미리 지정해 놓은 황금을 사위에게 찾아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늦은 오후 무렵 두 사람은 요정이 나타났던 장소에 도착했다. 이츠하크는 마차에서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마이셀은 왜 그곳에 갔는지 궁금했지만 현명한 장인에게 깊은 생각이 있을 걸 믿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짝이는 빛도, 작은 요정도, 황금 덩어리가 가득 든 배낭도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한 이츠하크는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위에게는 왜 그곳에 갔는지, 왜 밤을 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는 혼자 응접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5년 전 일이 단순히 꿈이었던 것인지 헷갈렸다. 


‘황금덩어리 3개가 있었잖아! 꿈이라면 그것은 뭐지? 꿈을 꾼 건 아니야. 분명히 봤어. 그래서 마이셀을 만난 것이고. 아마 때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 거야. 다음에 다시 가 봐야겠어.’


1주일, 한 달, 1년이 지났다. 2년, 3년, 4년이 지났다. 이츠하크는 요정을 본 장소에 여러 번이나 찾아갔다. 하지만 그때마다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 덩어리 가방을 멘 요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요정이 장난을 친 것일까? 나를 속인 걸까?’


이츠하크는 화가 났고, 시간이 갈수록 분노는 더욱 커졌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데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위를 냉담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장인의 행동에 실망한 마이셀은 장인의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장인의 태도가 이전과는 달라. 전에는 나를 따뜻하게 대하시더니 지금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어. 내가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재산을 축낸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너무 부담스러워서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여기에서 나가서 직접 몸으로 돈을 벌어야겠어.”


남편을 정말 사랑한 레이철은 분가하자는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사람은 며칠 뒤 이츠하크의 집을 떠나 유대인 지구의 작은 방 한 칸을 빌렸다. 딸 부부가 떠나는데도 이츠하크는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속의 분노가 풀린 것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마이셀은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해 오던 조그마한 철물점을 물려받았다. 그는 매우 부지런하고 정직한 데다 장사 수완이 좋았기 때문에 철물점은 날이 갈수록 번성했다. 그 덕분에 순식간에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철물점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지구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 장인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어느 날 마이셀이 평소처럼 철물점 안의 작업장에서 일을 할 때 이상한 모양의 초록색 옷을 입은 농부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그는 철물점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기어드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큰 망치랑 긴 삽이 꼭 필요한데 돈이 없어요. 며칠만 기다려 주시면 반드시 갚을게요. 명예와 양심을 걸고 약속할게요.”


마이셀은 팔짱을 끼고 농부를 가만히 쳐다보다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필요하시다면 당장 가져가세요. 돈은 나중에 생기면 갚도록 하세요. 돈이 안 생기면 안 주셔도 돼요. 당신 얼굴을 보니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리건대 언제든지 다시 오셔서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세요.”


농부는 감격한 목소리로 울먹이며 대답했다.


“당신은 정말 친절하신 분이군요. 보답으로 돈벌이가 될 일을 하나 알려 드릴게요. 저는 집에 쇠로 만든 큰 상자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걸 열 수 없기 때문에 저에게는 필요가 없어요. 원하신다면 그걸 당신에게 팔게요.”


마이셀은 농부가 내놓은 제안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걸 사면 자신에게도, 농부에게도 동시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걸 가져오세요. 그러면 1kg당 2굴덴을 드릴게요.”


농부는 반색하며 망치와 삽을 챙겨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사흘 뒤 낡은 수레에 큰 철제 상자를 싣고 마이셀의 가게에 돌아왔다. 상자는 너무 무거워 농부와 마이셀이 힘을 합쳤지만 수레에서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마이셀은 무게를 잰 다음 농부에게 정확하게 값을 치러 주었다.


마이셀은 그날 밤 철물점 문을 닫은 뒤 망치와 끌을 사용해 상자를 열기로 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버티던 상자는 서너 시간 만에 마침내 포기한 듯 뚜껑을 열어젖혔다. 상자 안을 바라본 마이셀은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상자 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황금 덩어리 수십 개가 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 상자에서 황금 덩어리를 모두 꺼내 지하실로 옮겼다. 그는 아무에게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와 존경하는 어머니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농부는 상자에 황금이 든 걸 몰랐을 거야. 당연히 황금은 내 것이 아니야. 농부를 찾아서 돌려줘야 해.’


마이셀은 황금 덩어리를 돌려주려고 며칠 동안이나 농부를 찾아다녔지만 초록색 옷을 입은 농부를 알거나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번에는 황금 덩어리를 쓰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농부가 언젠라도 돌아오면 돌려주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농부는 철물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마이셀은 하느님이 정해 주신 황금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하느님이 황금 덩어리를 내게 선물로 주신 거야. 나를 위해 흥청망청 낭비하지 말고 훌륭한 용도로 사용하라는 게 하느님의 뜻일 거야.’


마이셀은 다음날 유대인 지구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랍비를 찾아갔다.


“존경하는 랍비시여! 제가 열심히 일해서 번 황금을 가져왔습니다. 이 황금으로 유대인 지구에 새로운 시나고그를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세 번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경건하게 일컫는 성소를 만들어 주십시오. 얼마나 크고 화려하게 지을지는 랍비께서 정하십시오. 단 누가 돈을 냈는지는 절대 밝히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랍비는 마이셀이 가져온 황금 덩어리의 크기에 처음 놀라고 그가 보여 준 겸손한 태도에 다시 놀랐다.


“당신에게는 영원히 하느님의 축복이 내릴 것이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시나고그를 짓겠소. 내일부터 당장 일을 시작하리다.”


랍비는 약속대로 다음날부터 사람들을 모아 시나고그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랍비가 갑자기 아름다운 시나고그를 짓는다고 하자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시나고그를 왜 짓는 것이지? 돈은 어디서 난 거야? 분명히 누가 기부했을 텐데 그 사람이 누구일까? 랍비는 왜 기부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이지?”


랍비는 많은 사람에게서 누가 돈을 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이셀과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한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누구인지 알게 될 걸세.”


랍비가 공사를 재촉한 결과 마침내 엄청난 규모를 갖춘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나고그가 완성됐다. 봉헌식이 열리던 날 새로 지은 시나고그를 구경하겠다면서 유대인 지구에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행사장에 몰렸다. 랍비는 봉헌식에서 시나고그 건설비 기부자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이런 엄청난 일을 이룬 사람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냅시다. 지금 그의 이름을 알려 드리겠소. 자, 앞으로 나오시오. 겸손한 사람이여. 왜 군중 사이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오?”


랍비는 군중 속으로 들어가 한쪽 구석에 숨은 마이셀의 손을 잡았다. 랍비를 따라 일제히 눈길을 돌리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철물상 마이셀!” 


랍비는 그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둠에서 나오시오. 당신은 하느님의 등불이오. 모르데카이 마이셀,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소이다.”


랍비의 함성이 터져 나오자 군중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소리도 퍼졌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마이셀이 마지못해 앞으로 나가자 많은 사람이 그의 몸을 만졌다. 가장 놀란 사람은 마이셀의 장인인 이츠하크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위에게 달려가 조용히 포옹했다. 모든 사람이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랍비는 마이셀의 등을 만지며 다시 한 번 고함쳤다.


“새로 지은 시나고그에는 건설비를 기부한 마이셀의 이름을 붙이겠소. 앞으로는 이곳을 마이셀로바 시나고그라고 부르기로 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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