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o Jul 05. 2024

‘새것이면서 헌것’ 스타로노바 시나고그


1270년 프라하 유대인 지구의 체르베나 거리에는 모처럼 활기가 넘쳐흘렀다. 거리 끝의 공터에는 많은 유대인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표정이 밝았고, 손짓 하나 몸짓 하나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앞으로 당분간 우리를 박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시나고그를 하나 더 지은 게 그 증거지. 한동안 마음 놓고 살아도 되겠어.”

“십자군이 프라하를 지나가면서 말라 스트라나와 비셰헤라트의 유대인 주거지역을 파괴하고 학살 만행을 저지른 것도 벌써 200년 전이야. 왕이 세금 때문에 유대인을 우대하기 때문에 차별당할 걱정은 안 해도 돼.”


이날 체르베나 거리에서는 프라하 유대인에게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새로운 시나고그 건설 공사를 마친 뒤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봉헌식이었다.


유대인 지구에 사는 유대인은 3천여 명이나 돼 적지 않은 수였지만 지금까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시나고그는 하나뿐이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인파가 넘쳐 큰 혼란을 빚었다. 이런 차에 체르베나 거리에 새로 시나고그가 하나 더 생겨 유대인들로서는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봉헌식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대인의 지도자 랍비 아브라함 벤 아즈리엘은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시나고그가 하나 더 만들어진 것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교황 인노첸시오 3세(재임 1198년~1216년)와 보헤미아 국왕 오타카르 2세(재임 1253~78년) 덕분이야.’


프라하의 유대인 역사는 중부유럽에서 가장 오래됐다. 965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건너온 유대인 상인 겸 여행자 이브라힘 이븐 야쿠브가 프라하를 방문하고 남긴 기록에 그 내용이 처음 나온다. 이후 시대에 따라 쇠퇴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프라하에서 유대인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야쿠브가 갔을 때만 해도 프라하에는 유대인 밀집 거주지가 세 곳 있었다. 당시에 유대인은 한 구역에만 갇혀있기는커녕 프라하의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었다. 유대인은 1096년 제1차 십자군 원정 때 보헤미아를 지나가던 기독교 군대에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은 뒤 성벽을 쌓은 지역에 모여 살게 됐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구시가지의 유대인 지구였다.


유대인을 혐오했던 인노첸시오 3세는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신을 죽인 죄’에 대한 벌이라며 유대인을 기독교 사회에서 격리시키기로 결정했다. 유대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시키고, 기독교 마을에 살지 못하게 하고, 길드와 모든 공직에서 추방하는 내용이었다.


인노첸시오 3세의 결정은 유럽의 여러 왕에게는 진퇴양난의 골칫거리였다. 유대인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바람에 세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헤미아 왕국 오타카르 2세의 사정도 다른 나라 왕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고가 텅텅 비어 골머리를 앓던 그는 교회의 반발을 무릅쓰고 1254년 왕립 헌장을 발표했다.


“앞으로 유대인은 왕에게 고율의 세금을 내고 언제라도 돈을 빌려 줘야 한다. 대신 왕은 유대인을 ‘왕의 심부름꾼’으로 삼아 보호해 주겠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은 유대인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유대인의 재산, 시나고그, 공동묘지에 손을 댈 수도 없다.”


왕립 헌장의 내용을 본 교회는 왕이 교회의 영역을 침범한다면서 크게 분노했고 반발했다. 이들은 왕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왕께서는 교황의 명령을 어길 생각이십니까?”


오타카르 2세는 실실 웃으며 능청맞게 대답했다.


“유대인은 프라하 시민이 아니라 왕의 하인이오. 따라서 교회가 아니라 왕의 통제를 받고 보호를 받는 게 옳소.”


오타카르 2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대인 지구를 자치구역으로 지정했다. 내부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게 된 덕분에 유대인의 생활은 더 활기를 띠고 인구도 늘어나는 효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왕에게 바치는 세금은 이전보다 더 많아지는 게 당연했다. 인구가 늘어나자 시나고그를 하나 더 지을 필요성이 생겼다. 체르베나 거리에 시나고그를 새로 건설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벤 아즈리엘은 인기척을 느끼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언제 온 것인지 유대인 자치지구의 초대 구청장인 밀로슈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지만 곤혹스러운 분위기도 숨어 있었다.


“구청장님, 무슨 걱정을 하시는 건가요?”


밀로슈는 벤 아즈리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름은 뭘로 하죠?”

“이름이라뇨?”

“새로 지은 시나고그의 이름 말입니다.”


벤 아즈리엘은 구청장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당혹스러웠다. 그는 새로 지은 시나고그를 어떻게 부를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나고그를 하나 더 만든다는 사실을 기뻐했을 뿐 이름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군요. 이름이 필요하군요. 그걸 생각하지 않았군요.”


새 시나고그가 생기기 전 유대인 지구에는 시나고그가 하나뿐이었다. 유대인이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한 초창기에 만든 것이었는데 그곳에는 이름이 없었다. 시나고그가 하나였으니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성이 없었다. 그냥 ‘시나고그에 간다’라고만 해도 누구나 다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밀로슈와 벤 아즈리엘은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머리에 떠올릴 수 없었다. 벤 아즈리엘은 한참이나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노바 시나고그라고 부릅시다.”


밀로슈는 눈을 번쩍 떴다.


“노바 시나고그? 새 시나고그라는 말씀인가요?”

“굳이 거창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부르기 편하고 알아듣기 쉬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존 시나고그에는 스타라 즉 ‘구(舊)’라는 이름을, 새로 만든 시나고그에는 노바 즉 ‘신(新)’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합시다. 한마디로 ‘옛 시나고그’, ‘새 시나고그’인 겁니다. 어떻습니까?”


밀로슈는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스타라 시나고그와 노바 시나고그! 좋군요. 거창한 이름보다 오히려 간단하고 부르기 쉬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체르베나 거리에 새로 지은 시나고그의 이름은 ‘노바 시나고그’로 결정됐다. 그런데 노바 시나고그라는 이름을 만들고 200년 뒤에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유대인 지구에 새로운 시나고그가 하나 더 생긴 것이었다. 새로 만든 곳이었으니 이곳에 ‘새롭다’는 뜻인 노바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기존의 노바 시나고그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노바 시나고그의 랍비는 유대인 지구에서 지도자로 평가받는 사람들을 모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다들 이름 문제를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누구도 뚜렷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한참동안이나 갑론을박했다. 그들이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웅성거리기만 하는 걸 지켜보던 랍비는 200년 전에 벤 아즈리엘이 왜 ‘노바’라는 이름을 달았는지를 생각했다.


“벤 아즈리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이름에 얽매이지 맙시다. 거창한 이름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랍비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궁금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노바 시나고그는 지금까지는 ‘노바’였지만 이제부터는 ‘스타라’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곳을 ‘스타로노바’ 즉 ‘신구’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새 것이면서 헌 시나고그라는 뜻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 요정과 마이셀로바 시나고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