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 거리는 성베드로대성당까지 막히는 것 하나 없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널찍한 거리를 따라 걷는 기분은 꽤 상큼하다. 대성당 정면을 한눈에 담은 채 계속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대성당의 모양과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콘칠리아치오네 거리에서 볼 때 성베드로대성당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대성당의 하이라이트인 돔이다. 정면 부분은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고 오직 돔만 눈에 들어온다.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하고 지아코모 델라 포르타와 도메니코 폰타나가 완성한 작품이다. 높이가 136m여서 세상에서 가장 큰 돔 구조물이라고 한다. 돔 내부에는 1.4m 크기의 글씨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리라’라는 성경 『신약』 ‘마태복음’ 16장 18~19절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교회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라는 걸 알려주는 문장이다.
미켈란젤로는 1546년 성베드로대성당 건축공사를 맡아달라는 교황 바오로 3세(재임 1534~1549년)의 부탁을 받았다. 당시 건축가들은 대성당에 돔을 올리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에 교황이 선택할 수 있는 건축가는 미켈란젤로뿐이었다.
미켈란젤로는 고향 피렌체에 있는 두오모, 즉 산타마리아 델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생각했다. 피렌체의 지인으로부터 브루넬레스키가 100년 전 로마의 판테온 돔에 몰래 올라가 벽돌이 서로 완벽하고 견고하게 맞물려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두오모 돔에 적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직접 판테온에 가보기로 했다.
미켈란젤로는 사물을 볼 때는 항상 예술가의 눈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견지하던 사람이었다. 어떤 일에 쉽게 감동받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판테온에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쉽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판테온은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만든 것이야”라고 감탄했다.
돔은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도무스’에서 나온 말이다. 르네상스시대에 돔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는데 ‘성스러운 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돔 양식이 교회, 성당을 대표하는 구조물이지만 원래는 이교도의 건축 양식이었다. 돔 모양 구조물은 5만 년 전 석기 시대 무덤에서 먼저 나타난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돔처럼 둥근 반구를 천국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무덤을 돔 모양으로 만들면 ‘죽은 사람이 영원히 평화롭게 안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도의 스투파는 물론 우리나라의 둥근 무덤도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성당의 돔도 천국의 집을 의미하고 석기 시대 무덤도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니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하는 셈이다. 5만 년 전 사람이나 대성당을 만든 16~17세기 기독교인이 돔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경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가 아닐까?
고대 페르시아는 물론 그리스, 고대 로마 사람들도 석기 시대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사각형을 ‘지상’이라고 생각했고, 돔의 반구 모양은 ‘완벽’ ‘영원’ ‘천국’을 상징한다고 봤다. 페르시아 왕은 ‘우주’ ‘태양’ ‘천국’을 뜻하는 황금색 돔 모양 천막에서 신하, 외국 사절을 접견했는데 왕이 하늘과 연결된다는 점을 상징한 것이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를 모방했는데 나중에 로마는 알렉산더를 따라 하면서 돔 모양을 도입했다.
로마에서 돔이 건축물에 최초로 적용된 사례는 1세기 네로 황제가 ‘도무스 아우레아(황금 궁전)’를 건설할 때 그의 방을 돔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돔 모양 방에서 살면 황제의 신분이 신으로 승격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후 로마에 돔 형태 지붕을 가진 건축물이 여럿 들어섰지만 완벽한 형태로 적용된 것은 미켈란젤로가 극찬한 판테온이었다.
성베드로대성당의 웅장한 돔에 정신이 팔린 채 걷다보니 콘칠리아치오네 거리가 끝나는 곳에 사다리 모양의 너른 터가 나타난다. 이곳의 이름은 교황비오12세광장이다. 콘칠리아치오네 거리는 이탈리아 정부와 교황청 사이에 라테라노 조약이 체결된 걸 기념해 만든 도로였고, 교황비오12세광장은 조약을 체결한 교황 비오 11세의 후임인 비오 12세를 기념해 이름을 붙인 광장이다. 조약은 비오 11세가 체결했지만 광장이 완공됐을 때 교황은 비오 12세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교황비오12세광장은 속세와 ‘신국(神國)’의 중간지점이다. 성베드로광장 안쪽은 신의 나라인 바티칸시국이고, 반대로 콘칠리아치오네 거리 쪽은 세속 국가인 이탈리아 수도 로마다. 광장을 지나 성베드로광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간 세상’인 이탈리아에서 ‘출국’해 바티칸시국이라는 ‘신의 나라’로 ‘입국’하는 것이다. 물론 신의 나라로 들어가는 데에 여권, 비자는 필요하지 않고 천사가 관리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도 없다.
성베드로광장은 둥근 열주인 콜로네이드로 둘러싸였다. 대리석 기둥 248개가 네 줄로 늘어선 형태인 콜로네이드는 광장 입구인 콘칠리아치오네 쪽으로 열렸고 반대편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끝난다. 콜로네이드는 광장과 주변을 구별지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안팎을 단절시키지 않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이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무더위에 지친 여행객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한다.
성베드로광장 입구에 서면 콜로네이드 처마 돌림띠에 엄청나게 많은 조각상이 세워진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두 140개에 이르는 조각상의 주인공은 예수의 제자에서부터 순교자, 교황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독교를 이끌어 온 성인이다.
조각상은 오른쪽 첫 기둥 위에 세워진 4세기 로마 장군이자 순교자였던 성 갈리카누스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성 갈리카누스 맞은편의 12세기 프레몬트레 수도회 창건자 성 노베르에까지 이른다. 성경 『마가복음』을 쓴 성 마가는 물론 성 베드로의 죽음을 다룬 첫 기록을 남긴 4대 교황 성 클레멘스도 있다. 조각상을 쭉 살펴보면 성베드로대성당은 역시 기독교의 최고 성지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콜로네이드는 성베드로대성당이 400년 전인 1626년 완공됐을 때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성베드로광장은 처음에는 담장 하나 없이 사방으로 트였고, 교황 처소인 사도궁전을 포함해 여러 저택이 주변을 에워싸 전체적인 분위기는 산만했다. 그러다 보니 교황이 대성당 창가에 나가 설교할 때 광장에 모인 신도들의 집중력을 높이는 게 쉽지 않았다. 이런 점을 불편하게 여긴 교황 알렉산데르 7세(재임 1655~1667년)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에게 광장을 재설계하라고 지시했다.
교황의 지시에 따라 사업을 맡은 베르니니가 선택한 것은 밋밋한 담장이 아니라 오늘날처럼 광장을 에워싼 콜로네이드였다. 그는 교황에게 “콜로네이드는 성모 마리아의 따뜻한 품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광장을 동그랗게 에워싼 콜로네이드는 성모 마리아의 길게 벌린 두 팔이고 광장은 따스한 가슴이라는 것이다. 광장에 모인 신도들은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이며 그들에게 설교하는 교황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설명을 들은 알렉산데르 7세의 표정이 환해졌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베르니니의 설명대로 성베드로광장이 ‘성모 마리아의 따스한 품’인지 아닌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면 될 일이지만, 콜로네이드로 에워싸인 광장에 들어가면 실제로 사방으로 창이 난 방에 들어간 것처럼 포근하고 안온한 기운을 얻고, 시각적으로 집중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베르니니의 의도는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 베르니니가 ‘성모 마리아의 따스한 품’을 의도하며 건설한 콜로네이드는 뜻밖에 성베드로광장을 열쇠구멍 같은 모양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실제 광장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구글 지도에서 성베드로광장을 찾아보거나 드론을 이용해 공중에서 사진을 찍어보면 광장은 정말 거대한 열쇠구멍처럼 보인다. 성 베드로를 상징하는 물건이 무엇인가?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면 그가 항상 손에 든 게 무엇인가? 바로 열쇠가 아니던가! 성 베드로가 열쇠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은 이유는 성경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나온다. 예수가 성 베드로에게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성베드로광장이 정말 열쇠구멍이라면 천국, 즉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열쇠를 집어넣는 구멍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광장에 가서 열쇠를 꺼내면 천국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린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때 열리는 문은 성베드로대성당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완전히 다른 문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 가지 더! 콜로네이드가 성베드로광장을 에워싸는 바람에 광장은 뜻하지 않은 또 다른 모양을 띠게 됐다. 성베드로대성당 전망대에 올라가 광장을 내려다보면 알 수 있는데, 광장은 초대형 해시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 영침은?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높이 42m의 4500년 전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다. 실제 오벨리스크 그림자는 이른 아침에 하늘 높이 해가 떠서 오후에 질 때까지 해시계 영침처럼 광장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오벨리스크에서 북쪽의 마데르노 분수 쪽으로 하수구 뚜껑 같은 대리석 원판 7개가 일직선으로 늘어선 게 보인다. 원판 이름은 ‘해시계 표식’이다. 각 원판에는 날짜가 두 개씩 적혀 있는데, 오벨리스크 그림자가 정확하게 각 표식과 일치할 때의 날짜를 알려주는 것이다. 처음과 맨 끝의 원판 두 개는 하지와 동지를 나타내고, 나머지는 황도 12궁에 따른 변화를 표시한다.
사실 베르니니가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성베드로광장을 열쇠구멍으로 만들지 않은 것처럼 일부러 해시계처럼 조성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콜로네이드를 만들고 보니 해시계 모양을 이루게 됐을 것이다. ‘해시계 표식’이 19세기에야 만들어진 것이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광장과 오벨리스크를 해시계로 활용할 가치가 높다는 걸 이해한 교황 비오 12세(재임 1800~1823년)가 천문학자인 대주교 필리포 루이기 루이스 길에게 지시해 만든 것이었다.
달리 생각하면 이것조차도 신의 깊은 뜻일지 모른다. 성베드로대성당은 30만이 넘는 신을 모신 이교도 제국이었던 고대 로마의 방향을 바꾼 기독교의 핵심 성소다. 유피테르 신으로 상징되는 고대 로마의 시계는 멈추고 성 베드로로 상징되는 기독교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곳이 성베드로대성당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 시대는 새 시계’로 맞아야 한다는 것이 신의 복안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해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