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아벤세라헤스 홀의 비극

by leo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의 여러 시설 중에서 화려하기로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한 곳은 ‘아벤세라헤스 홀’이다. 이곳에는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의 마지막 왕국이었던 나스르 왕조에서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려온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몰락을 둘러싼 전설이 숨어 있다.


나스르 왕조의 14대 왕은 ‘왼손잡이’라는 별명을 가진 무함마드 8세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수장인 유세프 아벤 제라지를 고문으로 삼았다. 아벤세라헤스 가문은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무함마드 8세는 백성들은 물론 다른 신하들에게 배려심이 부족하고 거만하다는 평을 듣는 왕이었다. 국정을 꼼꼼하게 돌보기는커녕 하루의 대부분을 알람브라 궁전에 틀어박혀 후궁들과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당연히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피폐해졌고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는 민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아프리카 튀니스로 달아나고 말았다.


무함마드 8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은 사촌인 무함마드 9세였다. 그는 아벤세라헤스 가문을 포함해 무함마드 8세 치하에서 득세하면서 왕의 국정 방치를 조장했던 여러 신하를 내쫓았다. 당연히 제라지도 고문 자리에서 물러났다.


제라지는 ‘가문의 영광’을 되찾겠다면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는 기독교 국가인 카스티야의 후안 왕을 만나 해마다 조공을 바칠 테니 무함마드 8세를 복위시키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제라지는 가문에 충성하는 기사들을 데리고 카스티야로 말을 달렸다. 당시 후안 왕은 즉위 직후여서 권력이 튼튼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처지에 이슬람 측에서 도움을 요청하면서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자 그는 ‘얼씨구나’ 했다.


“공께서 분명하게 약속을 해 주시고, 직접 튀니스로 가서 무함마드 8세를 모시고 온다면 내가 도와 드리리다. 지원 약속을 담은 편지를 써 드리지요.”


후안 왕의 승낙을 받은 제라지는 곧바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로 향했다. 후안 왕은 자신의 친서를 품에 안은 사절을 그와 동행하게 했다.


낯선 아프리카의 누추한 골방에서 외롭게 신세 한탄을 하던 무함마드 8세는 먼 길을 찾아온 옛 신하를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에게서 뜻밖의 희소식을 들은 왕은 곧바로 행장을 꾸려 배에 올라 알 안달루시아로 돌아갔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후안 왕이 보낸 기독교 군대는 물론 아벤세라헤스 가문에서 모은 병력과 기사 500명, 그 밖의 다른 지지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무함마드 8세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그라나다로 향했다.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무함마드 9세를 몰아내기란 그라나다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오렌지나무에서 잘 익은 오렌지 하나를 골라 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의 10년 만에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됐다.


무함마드 8세가 즉위하자 후안 왕은 곧바로 축하 사절을 파견했다.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친서도 함께 보냈다. 그런데 무함마드 8세는 어려운 시절에 했던 약속을 잊어버린 듯 후안 왕이 보낸 사절의 눈앞에서 친서를 찢어버렸다. 그는 대신 조롱의 내용을 담는 답서를 사절에게 들고 가라고 했다.


‘짐을 도와 다시 복위하게 애쓴 노고를 치하하오. 이 모든 것은 인샬라(신의 뜻대로)가 아니겠소? 앞으로 신께 당신의 나라가 무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소. 필요한 게 있다면 능력에 맞게 가져다 쓰도록 하시오.’


무함마드 8세의 답서를 읽은 후안 왕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모욕을 당하고 참는다면 신하들과 백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무슬림들에게 반드시 본때를 보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그라나다에는 돈 페드로 베네가스라는 기사가 살았다. 원래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어릴 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뒤 나스르 왕조 왕자의 후손인 세티메리안 가문에 입양된 처지였다.


왕족들이 기독교 군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 베네가스의 가슴에 엉뚱한 야망이 불타올랐다. 그는 큰형인 유세프 아벤 알하마르 등 다른 형제들을 모았다.


“우리 가문이라고 왕이 되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겠어? 내가 카스티야에 가서 후안 왕을 만나겠어. 무함마드 8세의 배신에 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질러 큰형을 왕으로 만들게 도와달라고 할 거야.”


베네가스는 일부 형제들의 만류와 걱정을 뿌리치고 카스티야 왕국으로 급히 말을 몰았다. 그는 후안 왕에게 자신의 태생을 설명한 뒤 도와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기독교 군대가 나타난다면 큰형이 군대를 모아 힘을 합칠 수 있습니다. 무함마드 8세를 몰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미 복수심에 눈이 멀었던 후안 국왕은 앞뒤 잴 것도 없이 그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나스르 왕조와 카스티야는 운명을 건 전쟁을 벌이게 됐다. 전쟁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치열한 전투가 여러 차례 벌어져 양측 모두에게 엄청난 희생을 안겼다. 특히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집안의 큰 어른인 제라지도 전투 도중 목숨을 잃었다.


오랜 전쟁에서 이슬람 측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무함마드 8세는 다시 한 번 아프리카로 달아나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티메리안 가문이 득세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 도중에 수많은 무슬림 동포가 목숨을 잃은 모습을 지켜본 유세프 아벤 알하마르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오랜 전쟁으로 인한 피로까지 겹쳐 병에 걸려 신음하다 즉위한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달아났던 무함마드 8세는 다시 그라나다로 돌아와 세 번째 왕위에 올랐다. 그는 고문으로 위촉한 압델바르의 조언에 따라 대 사면령을 내렸다. 세티메리안 집안을 포함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모든 사람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단 한 명만 예외였다. 바로 베네가스였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 딸을 남겨놓고 대 사면령이 내리던 날 밤 그라나다를 탈출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차례나 위기에서 벗어난 아벤세라헤스 가문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이 번영이 ‘아벤세라헤스 홀의 대학살’로 불리는 비극의 전조인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무함마드 8세가 죽은 뒤 그의 조카인 아벤 이스마엘이 형과 전쟁을 벌인 끝에 왕위에 올랐다. 아벤세라헤스 가문은 이번에도 줄타기를 잘한 덕분에 왕의 고문 가문이 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스마엘도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인 뮬리 아불 하산이 왕 자리를 차지했다.


하산은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추천에 따라 무함마드 8세의 조카손녀인 아이샤 라 호라와 결혼해 보압딜 등 두 아들을 낳았다. 하산은 아이샤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들의 여자와 정략적으로 결혼했을 뿐이었다.


나이가 들어 국정을 직접 챙기게 된 하산은 어느 날 알람브라 궁전의 화려한 조각들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했다. 포로로 잡혀 온 기독교인인 이사벨라 솔리스였다. 그는 첫눈에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아벤세라헤스 가문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극력 반대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결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산은 이사벨라를 개종시켜 조라야라는 이름을 가지게 한 뒤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와의 사이에서도 역시 두 아들을 두었다.


하산이 반대를 무릅쓰고 기독교인과 결혼해 두 아들까지 낳자 아벤세라헤스 가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들이 결혼을 반대한 이유 한 가지가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라야를 포로로 잡아와 왕에게 바쳐 왕비로 만든 사람은 베네가스의 두 아들, 압둘 카심과 레두안이었다. 베네가스가 누구였던가? 무함마드 8세를 몰아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많은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자제가 목숨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 아니던가?


하산의 생각은 그들과는 달랐다. 그는 아벤세라헤스 가문에 맞서 자신을 도와줄 다른 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차에 마침 베네가스 가문의 두 아들이 사랑하는 여인까지 선사하자 그들에게 크게 의지하게 됐다. 그는 조라야 왕비를 적극 지지하는 압둘 카심을 국정 고문으로, 레두안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베네가스 가문은 이것만으로는 아버지를 그라나다에서 쫓아낸 아벤세라헤스 가문에 대한 복수를 완성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책략을 꾸몄다.


“전하, 아벤세라헤스 가문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전하를 몰아내고 아이샤 왕비가 낳은 보압딜을 즉위시켜 부위영화를 지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압둘 카심의 귓속말을 들은 하산은 그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샤 왕비의 태도는 영 마음에 들지 않던 터였다. 그는 당장 병사들에게 아이샤 왕비와 보압딜 왕자를 코마레스 탑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내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그게 뭘까?”


이때 레두안이 나섰다. 그는 국왕의 귀에 조용하게 속삭였다.


“전하께서 연회를 베푼다는 핑계를 붙여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주요 인물들과 기사들을 알람브라 궁전의 홀에 모이게 하십시오. 당연히 비무장인 채로 와야 한다고 명령하셔야 합니다. 그들이 연회를 즐기는 도중 제가 병사들을 풀어 그들을 모두 제거하겠습니다.”


하산은 레두안의 말을 듣자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압둘 카심과 레두안 형제에게 일을 일임하겠다는 증표로 자신의 반지를 건넸다.


며칠 뒤 왕이 연회를 베푼다는 소식이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주요 인물들과 그들을 따르는 용맹한 기사들에게 전해졌다. 왕은 평소에도 수시로 연회를 베풀던 터라서 그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화려한 홀에 모였다. 그곳에는 이미 온갖 산해진미를 차린 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자리에 앉아 왕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다른 홀에 숨어 있던 중무장 병사들이 갑자기 우르 달려 나왔다. 병사들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아벤세라헤스 가문 사람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일부는 달아나다 인근에 있는 ‘사자의 정원’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자의 정원’에 있는 한 기둥에는 아직도 빨간색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아벤세라헤스 가문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흘린 피가 기둥에 묻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날 초청돼 학살당한 사람들이 30명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더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훗날 사람들은 아벤세라헤스 가문이 학살당한 방에 ‘아벤세라헤스의 홀’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알람브라 궁전에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한 인물이 아이샤 왕비를 유혹해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 가문 사람들은 이를 알면서도 숨겼다. 뒤늦게 진상을 알게 된 하산 국왕이 단죄를 내렸다.’


나스르 왕국은 하산이 죽은 뒤 즉위한 보압딜(무하마드 12세)이 1492년 기독교 군대에 항복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면서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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