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미야는 1906~12년 안토니 가우디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1984년에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덕분에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이 하루 24유로 요금을 내고 찾아가야 하는 바르셀로나 여행 필수 코스가 됐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간 수많은 사람이 문 앞에 설치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간다. 기념품 가게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항상 사람들이 밀리다 보니 이곳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 여성이 줄 선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간다. 돈도 내지 않는다. 검색대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이 여성에게 인사까지 한다. 이 여성은 누구일까? 까사 미야 관리 직원?
이 여성의 이름은 안나 빌라도미우다. 직업은 작가. 그녀는 왜 다른 관광객들을 제치고 먼저 무료로 입장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녀는 카사 미야에 사는 유일한 주민이기 때문이다.
안나는 30년 전 남편 페르난도, 두 딸 니나 및 마리아와 함께 까사 미야의 복층 아파트 4층에 세를 얻어 이사 갔다. 계약 기간은 평생이었다. 까사 미야가 있는 칼레 프로벤차 거리와 파세오 데 가르시아 거리는 안나가 이사 갈 때만 해도 부자 동네였다. 당시에는 까사 미야에 여러 사람이 살았다. 지금은 모두 이사 가거나 죽었기 때문에 안나만 산다.
스페인의 한 신문은 카사 미야의 유일한 주민인 그녀의 생활을 흥미롭게 표현했다.
‘안나는 철제 기둥, 석재 굴뚝, 화사한 정원, 완벽한 보안시설 속에서 살고 있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여행 쓰나미 속에서 서핑을 즐기는 ’마지막 모히칸 인디언‘ 같은 존재다.
까사 미야에서 자란 두 딸은 건축가가 됐다. 그녀는 여전히 까사 미야에서 살지만 두 딸은 벌써 오래 전에 떠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수시로 집 대문을 두들겨대는 바르셀로나 여행객들의 간섭을 참을 수 없었던 게 이유였다.
안나는 카사 미야에 사는 유일한 거주자이면서 마지막 거주자다. 그녀가 이사를 나가거나 죽을 경우 앞으로는 누구도 그곳에 들어가 살 수 없다. 1986년 ‘카이사 카탈루나 재단’이 카사 미야를 매입했기 때문이다. 재단은 당시 카사 미야에 살던 여러 세입자에게 수백만 유로를 주겠다면서 이사 가라고 종용했다. 안나 가족은 그럴 생각이 없어 돈을 받지 않았다.
카사 미야는 지금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양복점, 부동산, 공증소 같은 상업용 공간이 있는가 하면 영사관 같은 행정 사무실, 문화 공간, 여행 코스도 있다. 물론 안나가 사용하는 아파트처럼 주거용 공간도 있다.
안나는 30년 전 소설 소재를 찾고 있었다.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카사 미야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2022년 3월 발간된 ‘아 울티마 베치나(마지막 거주자)’였다.
안나가 사는 4층 아파트는 소파에서부터 벽, 커튼, 카펫에 이르기까지 눈부실 정도로 하얀 색이다. 외부인이 그녀 집에 들어가면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다. 안나가 쓴 소설에 집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밤에 나는 복도를 걸어 다니고,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 또는 테라스에서 달이나 별을 올려다보는 것을 사랑한다. 이럴 때면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사는 착각을 느끼게 된다. 마치 아름다운 동화에 나오는 성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안나는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검색대 직원들에게 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또 문 앞에서 만나는 직원들에게도 밝은 미소로 인사하다.
하지만 카사 미야의 현실이 늘 동화와 같은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뒤 카사 미야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안나는 그 이후 상황을 한 신문 인터뷰에서 힘들게 설명했다.
“주말에 두 딸과 함께 해변에 수영을 하러 가려고 문을 열었죠. 우리는 당연히 수영복을 입고 있었답니다. 고무 튜브와 물병, 도시락도 들고 있었고요. 그런데 건물 내부를 둘러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쏟아졌답니다. 우리는 민망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렸지요. 어느 날은 슈퍼마켓에서 생필품을 잔뜩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관광객들이 우리를 몰지각한 사람인 듯 쳐다보더군요. 낮에 창밖을 잠시 내다보면 사람들이 카메라로 저를 찍기도 했고요. 카사 미야 안에는 많은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요. 저는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감시당하는 셈이지요.”
안나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관광객들이 그녀를 만나려고 ‘침입’하는 일까지 생겼다. 아침 일찍 현관문 벨을 누르는가하면, 거주자용 승강기를 몰래 타는 사람도 있었다. 안나는 이런 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도 만약 이탈리아의 역사적 건물에 들어가면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안나는 자신이 죽은 후 카사 미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한다. 재단이 이곳을 고치거나, 아예 헐어서 새 건물을 지어 러시아나 중국의 갑부들에게 팔거나 세를 놓을 수 있다는 게 그녀의 근심이다. 바르셀로나의 역사적 건물이 부유한 외국인들의 관광용 거주지로 바뀌는 것을 그녀뿐만 아니라 카탈루나 사람 누구나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