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집권기인 3세기 말 고대 로마가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할 때였다. 바르셀로나 인근의 켈티베리아라는 작은 마을에 아주 선량한 부부가 살았다. 금슬이 좋았던 두 사람은 예쁜 딸을 낳아 에우랄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을 잘하는 아이’라는 뜻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통합과 안정에 해를 끼친다며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신앙을 금지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신도를 탄압하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했다. 대다수 신도들은 집이나 비밀 장소에서 몰래 기도를 올려야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부부는 로마의 탄압을 두려워해 신앙을 숨겼다.
부부의 외동딸 에우랄리아는 부모를 닮아 아주 선량하면서 용기 있는 아이였다. 이웃 주민들이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부모와 함께 달려가 도와주곤 했다. 나쁜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하지 않고 잘못을 지적하면서 고치라고 이야기했다.
에우랄리아는 이름 그대로 열두 살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잘했다. 누구라도 그녀와 이야기하다 보면 논리적인 말에 넘어가 설득 당하게 마련이었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을 활용해 마을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해 많은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기키기도 했다.
아우렐리아는 마을에서 비밀리에 설교하는 데에만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로마가 기독교를 탄압하는 부당한 현실을 고쳐야 한다면서 로마 총독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버지, 어머니! 로마 총독을 만나겠어요. 그에게 이베리아반도에서만이라도 기독교를 탄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겠어요. 이렇게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떳떳하게 이야기해서 우리 신앙을 인정하라고 설득하는 게 저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명이에요.”
아우랄리아는 거듭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타라코니아로 떠났다. 타라코니아는 당시 이베리아반도를 통치하는 로마 총독이 살던 지역이었다. 아우렐리아는 타라코니아로 가던 도중 오늘날 바르셀로나인 바르시노에 도착했다. 그녀는 먼저 바르시노의 지방 행정관을 찾아가 기독교 탄압을 중지하라고 요청했다.
“행정관님, 로마의 단순한 지식이 기독교 신앙보다 뛰어날 수는 없습니다. 지식은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무익한 자료에 불과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 탄압을 계속한다면 기독교의 적이자 하느님의 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행정관님이라도 기독교 탄압을 중단하셔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당시 바르시노의 지방 행정관은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모든 로마 관리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교활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어린 소녀가 로마 행정관 앞에서 황제를 비난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랐다. 아무리 어린아이이지만 그냥 놔뒀다가는 큰 낭패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감히 로마 황제를 비방하다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듣기로는 바르시노의 로마 신전에 오물을 던지기도 했다더군. 아무리 어린 소녀라도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여봐라. 당장 저 못된 요물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어라.”
로마 행정관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부하들에게 이제 겨우 열세 살인 에우랄리아를 고문하라고 지시했다. 잘못했다고 뉘우치면서 빌 때까지 고문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었다. 로마인들이 에우랄리아에게 자행한 고문은 12가지였다. 모두 평범한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이었다.
‘감옥에 가두기, 채찍으로 때리기, 피부 벗겨내기, 맨발로 불타는 숯덩이 위 걷게 하기, 가슴 잘라내기, 거친 돌로 상처 문지르기,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몸 지지기, 끓는 기름을 몸에 붓기, 뜨거운 납덩이로 온몸 문지르기, 뜨거운 석회에 몸 담그기, 아주 작은 상자에 가두기, 옷을 벗겨 유리조각과 거친 돌이 깔린 언덕에서 굴리기.’
아우렐리아는 매일 고문을 당하면서도 절대 하느님과 예수를 부정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고문하는 간수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설명했다.
어린 기독교 소녀가 로마 행정관을 자극하는 바람에 고문을 당해 죽어간다는 소문은 금세 바르시나에 퍼졌다. 어떤 소녀인지 궁금해진 사람들은 매일 감옥 근처로 찾아가 그녀가 고문당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아우렐리아가 아무리 고문을 당해도 기독교를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바르시노 사람들의 동정을 산다는 소식은 로마 행정관에게 전해졌다.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 고문으로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람들 사이에 동요를 불러 일으켜 폭동으로 이어질지도 몰라. 소녀를 죽여 버려야겠어.’
행정관은 마침내 아우렐리아를 사형시키기로 했다. 바로 13번째이자 마지막 고문이었다. 그는 아우렐리아를 십자가에 매단 뒤 피를 많이 흘려 죽을 때까지 바르시노 한가운데에 내버려두었다.
아우렐리아는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며칠 만에 숨을 거둬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시신 곁으로 하얀 거위 열세 마리가 다가오더니 그녀를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주변을 에워싼 것이었다. 기적은 거위만이 아니었다. 맑던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갑자기 눈이 내리더니 그녀의 몸을 하얗게 덮어주었다.
놀라운 일이 연거푸 일어나자 바르시노 주민들은 물론 그녀를 고문한 간수와 십자가에 못 박은 병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저 소녀는 정말 하느님이 보낸 성인이었구나. 우리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려던 천사를 죽이고 만 거야!”
당시 로마에서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범죄자의 시신은 바다나 강에 던져 물고기 밥이 되게 하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바르시노의 기독교인들은 아우렐리아의 시신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로마 병사들을 매수해 시신을 몰래 빼돌렸다.
기독교인들은 아우렐리아를 남들이 모르는 비밀 장소에 묻었다. 그녀의 무덤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수십 년간 방치됐지만, 세월이 흘러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무덤 앞에 기념비가 하나 세워졌다.
다시 수십 년 뒤 서고트족이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을 때에는 아우렐리아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산타 마리아 델 아렌스 이 산타 에우랄리아 성당’이 건설됐다.
8세기 이슬람이 이베리아반도에 쳐들어왔을 때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무슬림이 에우렐리아의 유해를 훼손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며 비밀장소에 숨겼다.
이후 레콩키스타(국토회복전쟁) 덕분에 바르셀로나가 다시 기독교의 손으로 넘어온 9세기 말, 에우렐리아의 유해는 새로 건설된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으로 이장됐다. 1339년에는 당시 건설 중이던 ‘바르셀로나 대성당’으로 다시 옮겨졌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안에는 내부 정원이 있다. 그곳에는 언제나 하얀 거위 13마리가 산다. 그녀의 시신을 지키는 기적을 일으켰던 거위를 기념하기 위해 키우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정식 이름은 ‘성 십자가와 에우랄리아 대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