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아저씨, 어제 피곤해 보이시던데 오늘 몸은 괜찮으세요?”
“나야 뭐 늘 그렇지. 산체스, 너야말로 어제 다친 허리는 좀 어떠니? 우리 같은 막노동꾼에게는 몸이 재산인데 다치면 안 돼!”
15세기 무렵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직 해가 뜨기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 외곽으로 연결되는 ‘라 프로타 데 산타 안나’(산타 안나의 문) 앞의 분수대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다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졸리는 눈을 비비거나 하품을 하고 있었다. 다들 남루한 옷차림에 얼굴은 지저분하고 궁상스럽게 보였다. 모두 귀족은커녕 평민도 아닌 빈민들 같았다.
사람들이 모인 분수대는 바르셀로나에서 물맛이 가장 좋기로 소문난 ‘폰테 데 카날레테스’ 즉 ‘카날레테스 분수’였다.
“오늘은 어디로 가는 일거리가 생기려나?”
“어제처럼 힘든 광산 일만 아니면 좋겠구만.”
카날레테스 분수에 모인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날품팔이 막노동꾼이었다. 이들은 매일 분수에 모여 자신들을 일터로 데리고 갈 도급업자를 기다렸다. 이런 사람들이 아침마다 모여든다고 해서 산타 안나의 문은 ‘도급업자의 문’이라는 뜻인 ‘라 포르테 델스 콘트랙티스테스’로 불리기도 했다.
바닥에 앉았던 파블로는 몸을 일으켜 먼 산을 바라보았다. 곧 동이 틀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잠시 후 여러 도급업자가 일꾼들을 태워 갈 마차를 몰고 올 터였다. 그는 카날레테스 분수로 가서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물통의 뚜껑을 열어 물을 가득 받았다.
“역시 물맛 하나는 끝내준단 말이야. 산체스, 이제 곧 일하러 가야겠구나. 여기 와서 얼른 물을 마시렴. 아무런 사고를 당하지 않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려면 이 분수 물을 마시고 가야지.”
파블로의 말을 들은 산체스는 빙그레 웃으며 분수로 갔다. 그는 분수 물을 두 손으로 받아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물을 다시 받아 목을 축였다.
카날레테스 분수에 모인 일꾼들은 매일 일하러 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분수의 물을 마셨다. 그래야 하루 일을 마치고 무사히 바르셀로나로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또 일을 마친 뒤에는 큰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다시 분수의 물을 마셨다. 누가 언제부터 시작한 관습인지는 모르지만, 매일 새벽 분수에 모이는 모든 일꾼들은 단 한 명도 거르지 않고 일을 하러 가기 전에 물을 마셨다.
멀리서 마차 여러 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호셉은 그중 맨 앞의 마차에 올라탔다. 산체스는 맨 뒤 마차에 매달렸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일터로 가는 모양이었다. 파블로는 산체스에게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든 뒤 마차 바퀴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마시며 산타 안나의 문 밖으로 사라졌다. 산체스는 ‘파블로 아저씨가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셔야 할 텐데’라고 걱정하며 사라져가는 마차를 한참동안이나 지켜보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수많은 세대가 바뀌었고, 세상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아침마다 분수 앞에 모여 일터로 데려갈 마차를 기다리던 막노동꾼들은 모두 사라졌다. 아침에 분수 앞에 사람들이 모여 물을 마시던 관습도 사라졌다.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가 됐다.
세상은 변했지만 두툼한 쇠로 만들어진 카날레테스 분수는 변함없이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분수가 있던 자리는 람블라스라는 거리로 바뀌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포트 벨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까지 이어지는 거리가 됐다.
언제부터인가 카날레테스 분수와 관련해서 이상한 이야기가 하나 생겨났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전설이었다. 분수 앞의 보도 블럭 바닥에 붙은 명패에 전설의 내용이 담겨 있다.
‘만약 당신이 카날레테스 분수의 물을 마신다면 당신은 영원히 바르셀로나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당신은 항상 바르셀로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세월은 다시 흐르고 흘렀다. 1901년이 일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에스테베 살라라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매일 람블라스 거리로 가서 산책하곤 했다. 당연히 카날레테스 분수 주변도 매일 지나다녔다. 람블라스 거리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명소였다. 어느 날 그의 머리에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카날레테스 분수 주변으로 정말 많은 사람이 다니는구나. 그렇다면 여기에 가게를 하나 차려서 술이나 음료수를 팔면 정말 장사가 잘 되겠는 걸!’
살라는 바르셀로나 시청의 지인을 통해 로비를 벌여 가게 허가를 얻었다. 제대로 된 건물로 차려진 가게가 아니라 그냥 테이블과 의자만 가져다놓은 노천 술집이었다. 그의 기대대로 술집은 손님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영업이 잘 됐다. 그는 매일 큰돈을 벌었다. 새벽까지 집에서 돈을 세다 밤을 샐 정도였다.
살라의 가게가 대박을 치는 장면을 본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시청을 물고 늘어졌다.
“특정인에게 람블라스 거리 최고 명소인 카날레테스 분수 앞에 가게를 열도록 허가해 준 것은 특혜가 아닌가요? 당장 허가권을 취소하고 시에서 공공 입찰을 해서 새 사업자를 선정하도록 하세요. 그래야 시도 세금을 더 챙길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시의회의 지적에 따라 바르셀로나 시는 공공 입찰을 통해 사업권을 카스타우수스라는 남자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살라는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잘되던 술집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대신 인근에 카페 로얄이라는 찻집 겸 술집을 열어 영업을 계속 이어갔다. 물론 이전만큼 장사가 잘되지는 않았다. 이후 람블라스 거리에는 여러 가게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그러던 1930년 어느 날이었다. 집권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면서 스포츠를 담당하는 언론인인 호셉 수니올이 카날레테스 분수 바로 앞에 당시 최고 인기신문사의 지국을 열었다. 신문사 이름은 ‘라 람블라’였다.
수니올은 사무실 앞에 큰 흑판을 하나 걸었다. 그는 매일 스페인 곳곳에서 벌어지는 프로축구 경기 결과를 흑판에 기록했다. 뜻밖에 이 흑판은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는 모든 축구 경기를 TV로 생중계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신문이 아니면 축구 경기 결과를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축구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특히 1899년 창단한 FC 바르셀로나가 한 해 전이던 1929년 사상 처음 라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한 덕분에 축구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야! 오늘도 바르셀로나가 이겼어! 마드리드는 세비야에게 졌구나. 정말 기분이 좋아.”
사람들은 라리가 경기가 열린 다음 날이면 모두 람블라스 거리의 카날레테스 분수 앞에 있는 라 람블라의 흑판에 몰려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바르셀로나가 이긴 날에는 즉석에서 술과 춤이 난무하는 축제가 벌어졌고, 패한 날에는 슬픔과 분노와 좌절이 거리를 뒤덮었다.
라 람블라가 인기를 끌자 유사한 서비스를 하는 신문사 지국이 람블라스 거리 곳곳에 생겼다. 그러나 라 람블라가 가장 먼저 서비스를 제공해 사람들의 이목을 끈 데다 카날레테스 분수 앞이라는 위치가 다른 신문사보다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곳에는 가지 않고 늘 카날레테스 분수 앞에만 모여들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TV가 널리 보급된 덕에 라 람블라의 서비스는 인기를 잃었다. 라 람블라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FC바르셀로나가 경기에서 이기는 날에는 팬들이 카날레테스 분수 앞에 모여 구단 깃발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축하하는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