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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Dec 06. 2020

8.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2)

라틴, 에트루리아, 사비니와의 전쟁



콜라티아의 항복을 받아낸 타르퀴니우스는 이번에는 다른 라틴 도시인 코르니쿨룸으로 쳐들어갔다.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코르니쿨룸 시골 마을을 초토화시킨 타르퀴니우스는 도시 근처에 진지를 설치했다. 그는 코르니쿨룸 주민들에게 로마의 동맹이 되라고 말했다. 


코르니쿨룸은 타르퀴니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튼튼한 성벽의 힘에 의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곳곳에서 지원 부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로마군은 할 수 없이 도시를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코르니쿨룸은 오랫동안 용감하게 저항했다. 로마군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진 전투에 지친데다 내부에서 분열까지 일어났다. 일부 주민은 항복하기를 바랐지만 다른 주민은 끝까지 싸우자며 반대했다. 결국 코르니쿨룸은 점령당하고 말았다.


가장 용감한 주민들은 도시 함락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반면 겁쟁이들은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아내, 자식들과 함께 노예로 팔려갔다. 코르니쿨룸은 약탈당했고, 도시는 불에 타 사라져버렸다.


타르퀴니우스의 연이은 승전에 자극받은 라틴 도시들은 연합군을 형성해 로마군에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엄청난 대군을 모은 뒤 로마 영토로 쳐들어갔다. 그곳에 살던 로마인을 포로로 붙잡았고, 그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았다.


타르퀴니우스는 즉각 싸울 준비가 돼 있는 경무장 보병을 이끌고 나섰다. 하지만 너무 늦어서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는 대신 라틴 지역으로 쳐들어가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했다. 


여러 번의 공격으로 양측에 연이어 피해가 발생했다. 마침내 양측은 피데나이 근처 평원에서 대규모 야전을 벌이게 됐다. 양측에서 많은 병사가 쓰러졌지만 결국 로마군이 승리를 거뒀다. 라틴군은 밤에 진지를 버리고 고향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타르퀴니우스는 군대를 이끌고 라틴 도시들로 쳐들어가 동맹을 맺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라틴 도시들은 전쟁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 중 일부는 도시를 내놓기도 했다. 


로마는 점령한 도시에서는 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도시를 파괴한 반면 항복한 도시에는 어떤 가혹한 행위도 하지 않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먼저 피쿨리아가 아주 우호적인 조건으로 항복했다. 이어 카메리아가 항복했고, 다른 작은 도시들과 성채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른 라틴 도시들은 이런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로마가 모든 라틴 도시를 정복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게 했다. 그들은 페렌티눔에 모여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모든 도시에서 연합군을 모아 진군할 뿐만 아니라 이웃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에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에트루리아 인과 사비니 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절을 보냈다. 사비니 족은 이렇게 약속했다.


“라틴 도시들이 로마 영토로 진격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도 무기를 들어 사비니 국경에 인접한 로마 영토를 초토화시키도록 하겠소.”


에트루리아도 라틴 도시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이든 지원하겠다고 약속다. 하지만 모든 에트루리아 도시의 마음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클루시움, 아레티움, 볼라테라이, 루셀라이, 베툴로니아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비니와 에트루리아의 약속에 고무된 라틴 도시들은 대규모 연합군을 준비했다. 여기에 에트루리아에서 보낸 병력을 더해 로마 영토로 쳐들어갔다. 동시에 사비니 도시들은 전쟁에 참가하겠다는 약속대로 로마 접경지역을 약탈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그동안 대규모 군대를 준비하고 있던 타르퀴니우스는 서둘러 적에 맞서 싸우러 나갔다. 


“군대를 둘로 나눠 라틴 도시들과 사비니를 동시에 공격하는 건 이롭지 않아.”


타르퀴니우스는 먼저 전군을 이끌고 라틴 연합군에 맞서 싸우러 나갔다. 양측은 처음에는 전력을 다 쏟아 결전을 벌이기를 꺼렸다. 상대방의 준비 상황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양측 참호에서 나온 경무장 보병들이 수시로 소규모 접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어느 쪽도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소규모 충돌이 이어지자 양측 군대에 증오감이 커졌다. 그러다 모든 병사들이 진지에서 달려 나오게 됐다. 양측 모두 전투에 익숙한 군대였고 병력도 비슷했다. 보병과 기병 모두 마찬가지였다. 양측 모두 싸우겠다는 열정으로 넘쳐났다. 병사들은 결정적인 고비를 만났다고 생각하면서 놀랄 만큼 용감하게 싸웠다.


양측 군대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밤에 진지로 돌아갔다. 전투를 벌인 이후 양 군대에 어느 쪽이 우세했는지 놓고 다른 감정이 돌기 시작했다. 다음날 타르퀴니우스는 병사들을 이끌고 평원으로 나가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라틴 병사들은 진지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라틴 연합군은 끝내 진지 문을 열지 않았다. 타르퀴니우스는 죽은 라틴 병사들의 시체에서 전리품을 챙긴 뒤 로마군 사망자들을 수레에 싣고 진지로 돌아갔다.


며칠 뒤 에트루리아가 파견한 지원병이 라틴 연합군에 합류했다. 다음날 두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첫 전투보다 더 규모가 컸고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 타르퀴니우스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처음에는 로마군의 1선 병사들이 흔들렸고 좌익의 밀집대형이 무너질 위기에 몰렸다. 우익에서 싸우고 있던 타르퀴니우스는 로마군에 발생한 어려움을 파악했다. 그는 기병과 보병 중에서 정예병을 따로 떼어내어 좌익에서 싸우는 로마군을 지나 측면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적의 우익으로 돌아가라. 아군을 밀어붙이는 에트루리아 군을 측면에서 공격하라.”


로마군이 갑자기 나타나자 에트루리아 군은 혼란에 빠졌다. 그 사이에 로마 보병은 조금 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다시 적을 향해 전진했다. 그들은 에트루리아 병사들을 대규모로 살육해 적의 우익을 붕괴시켰다. 


“대열을 유지한 채 천천히 보병을 적의 진지로 진격시키시오.” 


타르퀴니우스는 보병 사령관에게 지시한 뒤 기병을 이끌고 먼저 전속력으로 적의 진지를 향해 돌격했다. 그는 목숨을 건지려고 전투에서 달아난 적 보병보다 먼저 진지에 도착했다. 그곳에 남아 있던 적 병사들을 모조리 죽이고는 진지를 점령했다. 라틴 병사들은 진지 밖에서 벌어진 불운을 몰랐던데다 로마군 기병이 그렇게 일찍 쳐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손 쓸 틈도 없이 진지를 내주고 말았다. 


완패의 현장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한 진지로 후퇴하던 적군은 진지를 점령한 로마군에 학살당했다. 진지에서 평원으로 달아나려던 적군은 톱니바퀴처럼 대열을 이뤄 뒤따라오던 로마군 보병의 칼을 피할 수 없었다. 적군 대부분은 서로 떠밀려 발에 밟히거나 목책에 끼이거나 해자에 빠지는 등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적군은 도망갈 길이 없음을 발견하고는 로마군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타르퀴니우스는 많은 포로를 붙잡고 엄청난 전리품을 챙겼다. 포로는 모두 노예로 팔고 적군 진지의 전리품은 모두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이번에는 라틴 도시들을 향해 진격했다. 항복하지 않은 도시를 굴복시키려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그는 굳이 라틴 도시들을 포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든 라틴 도시는 탄원과 기도로 로마군을 맞았다. 모든 도시가 사절을 타르퀴니우스에게 보냈다.


“왕이 원하는 조건대로 전쟁을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도시를 왕에게 모두 바치겠습니다.”


모든 도시들의 지배자가 된 타르퀴니우스는 라틴 도시들을 최대한 자비롭게 온건하게 대우했다. 


“어떤 라틴인도 처형하지 않고, 강제로 추방하지도 않겠소. 어떤 도시에도 벌금을 부과하지 않을 것이오. 땅을 그대로 소유하도록 하시오. 지금 그대로 정부 형태도 유지하도록 하시오. 다만 로마군에서 도망간 병사들과 포로들을 몸값 없이 로마에 돌려보내시오. 라틴 병사들이 로마에 침입했을 때 붙잡아간 노예를 로마의 주인들에게 돌려보내시오. 농부에게서 빼앗은 재산을 반환하시오. 그들이 기습 공격에서 로마인에게 입힌 피해를 보상하시오.”


라틴 도시들은 타르퀴니우스의 요구를 모두 수행하고 로마의 동맹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로마와 라틴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결과였다. 타르퀴니우스는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며 전통적인 개선식을 거행했다.


타르퀴니우스는 다음해 사비니 족을 향해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 사비니 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로마군이 쳐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사비니 족은 전쟁이 그들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이들은 적당한 병력을 갖춘 뒤 로마군을 향해 진군했다. 로마군과 사비니군은 접경지역에서 해가 질 때까지 전투를 벌였다. 어느 쪽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양쪽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다음날 사비니군의 장군은 물론 타르퀴니우스도 진지 밖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가지 못했다. 양군은 진지를 철거한 뒤 상대 영토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양군의 의도는 똑같았다. 내년 봄에 더 큰 군대를 구성해 새롭게 한 판 붙어보자는 것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비니 족이 에트루리아 지원병을 충분히 받아들여 전력을 강화한 뒤 먼저 들판으로 나섰다. 그들은 아니오 강과 테베레 강이 만나는 지점인 피데나이 근처에 진지를 차렸다. 이들은 진지를 두 개 차렸다. 두 진지 사이에는 두 강이 합쳐져 흐르고 있었다. 이들은 그 위에 배와 뗏목을 연결해 다리를 건설했다. 두 진지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사실상 하나의 진지처럼 움직이게 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사비니 족 침입 소식을 듣고는 맞서 싸우러 나갔다. 그는 사비니 족 진지보다 조금 위쪽인 아니오 강 근처에 로마군 진지를 세웠다. 아주 위치가 좋은 언덕이었다. 


양측 병사들은 나가 싸우려는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두 군대 사이에는 크든 작든 단 한 차례의 야전도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타르퀴니우스의 적절한 전략이 사비니족의 계획을 망쳐버렸다. 그는 두 진지를 모두 빼앗아버렸다. 그 전략은 이러한 것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병사들에게 배와 뗏목을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지시했다.


“배와 뗏목을 묶어 두 강의 한쪽 측면에 세우도록 하라. 배와 뗏목에는 마른 나무 작대기와 땔감을 가득 채워라. 그리고 역청과 유황도 배에 실어라.”


타르퀴니우스는 바람이 좋은 방향으로 불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날 이른 아침이 되자 그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배와 뗏목에 불을 질러라. 그리고 강 아래쪽으로 흘려보내라.”


배와 뗏목은 아주 짧은 시간에 아래로 떠내려가 다리에 부딪혔다. 다리는 순식간에 불에 휩싸였다. 사비니 군은 갑자기 불길이 치솟는 걸 보고 다리로 지원병을 보내 불을 끄게 했다. 


사비니 군이 이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타르퀴니우스는 새벽 무렵 도착해 로마군을 전투대형으로 배열시켰다. 그리고 두 캠프 중 하나를 공격했다. 사비니 병사 중에서 상당수는 불을 끄려고 진지를 떠나 있었다. 남아 있는 병사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진지를 어려움 없이 빼앗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로마군 중 일부는 강의 반대쪽에 있던 사비니 군의 다른 진지도 급습해 빼앗았다. 타르퀴니우스가 미리 파견했던 이 로마군은 배와 뗏목을 타고 두 강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강을 건넜다. 사비니 군이 로마군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위치였다. 이들은 강을 건널 무렵 다리에서 불길이 치솟는 걸 보았다. 타르퀴니우스는 이들에게 미리 이런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불길이 치솟으면 적의 진지를 공격하라.”


진지를 지키던 일부 사비니 병사는 로마군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다른 병사들은 강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휩쓸려가고 말았다. 적지 않은 사비니 병사들은 다리를 살리려다 화염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타르퀴니우스는 두 진지를 차지한 뒤 병사들에게 전리품을 나눌 시간을 주었다. 적지 않은 사비니 및 에트루리아 포로들은 로마로 끌고 가 감옥에 가둔 뒤 감시하게 했다. 사비니 족은 이 참사 때문에 기가 꺾였다. 이들은 로마에 사절단을 보내 6년간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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