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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Apr 21. 2016

잘은 모르지만 그리운 사람

오늘의 마음 일기

요즘 그리운 것이 없어.


반쯤 비운 맥주병을 내려놓으며 친구가 말했다.

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사실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있지,

그 사람을 만난 건 딱 세번 뿐이고

지금 먼 곳에 있는데, 한동안은 그럴텐데,

아무래도 나,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뜻 그러지 못했다.


확신이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무어라 할지,

무어라 하면,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한편으론, 내가 지금 제정신이긴 한건지.


오랫동안 나는 그런 생각들에 시달렸다.

말하자면 '꾸준함'에 대한 강박, '시간성'에 대한 집착. 어쩌면 사랑에도 인턴쉽 기간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거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효율성' 강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무의식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안정적인 긴 관계로 이어지지 않을 감정놀음은 불필요하며, 시간낭비다.'


'일시적인 감정'과 '사랑'은

아주 다른 것이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므로

일정기간 이상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제 조금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현실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나서 그 때 말하는 감정이야말로 진실된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연애'의 첫걸음, 결혼을 전제로 한 관계, 미래를 바라보는 관계.


우리 세대에게 '사랑', '연애', '결혼', '감정'- 같은 말들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또 사회적인 의미망들 속에서 무진장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어디까지가 남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가족 것인지 때론 너무 헷갈리고,

그래서 그것들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비극인지도 잘 모르고 뭐 그런 아수라장 속인데-


어쨌거나 본의 아니게

지금 나의 그리움은, 어쩌면 나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제 멋대로 진행 중.


그런데 그렇게 되고 보니

그동안 얼마나 말도 안되는 목표속을 헤매이고 있었던건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머리가 나서기 전에, 그놈의 '이성'이 말리지 못한

'감정'도 참으로 오랜만.


다른 복잡한 것 다 떼고,

그냥, 그리운 사람

잘은 모르지만 그리운 사람

어쩌면 잘 몰라서 그리운 사람

어쨌거나 그리운 사람

을 갖게 되었으니


이 감정이 끝이 무엇이든

이 마음을 품고 관찰하고 다독이면서

그렇게 지내보기로 결심했다.


오늘 밤은 비가 오네.

그 사람은 까무룩 잠들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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