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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10. 2017

찔려서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다가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정말로 그렇다

그럴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있었던 일'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실'만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얼마전까지

오직 당신을 이해해보기 위해

당신에게 유리한 역사만을 기술하는

편향된 역사가였다고 하더라도


이제 나의 모든 기억과 생각은 오로지

남겨진

혼자가 된

나를 위로하고

주저앉지 않도록

어떻게든 버티도록

등을 떠밀어야하기 때문에


오직 그 목적으로 모든 기억은 재편되어야 하므로


그러니까 얼마간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욕하고

구제불능의 바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좋은 연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잘했다,

그렇게 결론내리고

했던 그것들은


결국 '나' 만의 기억,

'나' 혼자만의 역사


하지만- 그게 어디가 어때서

다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죽지않고 살아갈 수 있는건데


아무리 그 편향을 깨달았다한들

이제와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없는건

바로 그렇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오히려 궁금해지는 건

아마 당신도 한웅큼 만들어 쌓아놨을

당신만의 기억,

당신만의 이야기와 역사


그럴 수 있다면

언젠가 당신의 오랜친구 L씨로 변신해서

당신의 입에서 나올 우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너무나 터무니없고 뻔뻔하게 각색되었을지라도

그래도 한번은 들어보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 속에서는

나도 혹시 '썅년'일까?


기왕이면

당신이 언성을 높이고 흥분하며

열변을 토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얼마나 상처 받았고

찢어지게 후회했고 빌어먹게 괴로웠고

참혹하게 외로워졌는지

거칠고 거친 말들로 뱉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L씨의 얼굴을 한 나는

피식 웃으면서

'재수가 없었네, 다 지나갈거야'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나를 위한 나만의 역사가는


당신이 조금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많이 이기적이었다고 생각하고

내게 적지않은 상처를 남겼지만

이젠 다 나아간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렇게

잘 넘어가지지 않는 페이지가

결국엔 넘어가고

언젠간 사라진다 할지라도


차라리 무엇이라도 좋으니

어떤 억울한 누명으로든

당신의 페이지에

새빨간 각인처럼

남았으면

하고 바라는 이 맘이

바보 같은 바람인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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