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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24. 2017

당신의 '편지'에 대한 답장

아마도 끝내, 보내지 못할. inspired by 김광진-편지

안녕

다시 시작하는 인사인지

영영 헤어지는 인사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적습니다

안녕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당신은 그렇게 썼습니다


여기까지,


그래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여기까지'는 얼마만큼일까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당신을 위한

'억지노력' 을 내내 해왔던 나로서는

당신이 어디까지 왔었는지,

이미 늦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혹시 내가 좀 더 마중나갔어야 하는걸까-

정말 부질 없는 거란 걸 이젠 알지만요


인연이라는 것은 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요

결국 어떤 관계의 결론을 내린 사람만이

인연이란 말을 담을 수 있죠

모두가 쉽게 입에 담는

'인연이 아니었던 거지' 란 말처럼 말입니다


한 사람을 끝내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겐

인연이란건 마치 도박같은 거에요

겨우 쥐고 있는 한 줌의 판돈 같은 겁니다


한 때는 이렇게 힘드니까,

그런데도 서로를 보는 우리가

정말 인연인거라고

이 고통 끝에 '두 사람은 인연 이었습니다' 라는

짜릿한 반전이 있을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시절을

당신은 다 잊으셨겠죠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당신이 남겨두겠다는 그 말을

나는 영영 모릅니다

내내 몰랐고 앞으로도 그럴테죠


나는 궁금했습니다

당신의 마음과 생각이 그리고

당신의 그 기대가

당신 혼자 기대하고 실망해서

돌아서버렸다는 그 기대 속의

나는 우리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나요?

왜 당신은 한번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나요?

마지막 이 편지에서조차

당신은 침묵하네요


그러니

우리 사이에 있었던 침묵을

그대 침묵, 이라고 하진 말아줄래요


당신이 표현했던 그 기나긴 침묵의

몇 곱절이 되는 시간 동안

당신의 침묵 앞에서도 쭉 침묵했어야 했던

그 때의 나, 그 기분을

당신은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그래요 이제와 차라리 다행입니다

나는 당신 덕분에 힘겨웠는데도

조금도 힘겹지 않을 수 있었던 날들마저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내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다고 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보냈던 시간이 그저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때늦은 합리화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온통 아름답고 상냥한 말로만 가득한 편지인데도

사랑한 사람, 이라고

과거형으로 적힌 당신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찌릅니다


아마 당신은 생각도 못했겠죠

어쩌면

이 편지를 쓰며 스스로 감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정확히 그런 당신이

나를 아프게 힘들게 했다는걸

아마 당신은 영영 모르겠죠


여기까지가 끝,

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는 당신

붙잡지 않고 붙잡지 못하고

그렇게 나는 당신의 뒷모습마저 지켜보겠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주세요

여기까지, 라는 말은 거기까지 간 사람에게

끝, 이라는 말은 시작한 사람에게

허락되는 말이라는 것을


나보다 좋은 사람은 못만나길 바래요

사는 동안 날 잊지 말길 바래요

진정 행복하지는 않기를 바래요

이 맘, 곧 버리겠습니다


그럼 이젠 정말

안녕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두겠소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보아도

사실 그대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 김광진 '편지'



p.s
김광진의 '편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이고 영원히 남을 클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사에 얽혔다, 고 하는
여러 사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만 그와 무관하게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가 이 곡을 듣고서 생각한 것을 적은
'픽션' 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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