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May 31. 2017

24시 카페의 도시전설

이야기는 이 곳에서 가끔 시작되다가, 실없이 끝나버린다

그런 때 있잖아


그 사람하고 둘이 신나서

그야말로 삘 받아서

1차, 2차,

3차까지 마시고 났는데


지친 얼굴의 치킨집 사장님이

오늘 영업은 여기까지라며

미안한 표정을 지을 때


아직 밖은 깜깜하고

첫차가 다닐 시간도 남아있는데다

솔직히 첫차고 뭐고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진 않을 때


그런 때에

그 사람하고 손 잡고

어디 갈 것 같아?


엠티?

그럴거면 진작에 갔지


서로 입술만 쳐다보고 머뭇거리는

그 때가 얼마나 좋은지 알면서


그럴 때

우리는 결국

24시간 카페에 가게 돼


편의점 불빛 만큼이나 환하게

심야의 도시를 비추는 등대 같은 곳이지


그리고 그곳엔 온갖 사람들이 모여있어

과제나 일을 하는 사람들

아니면 첫차를 기다리는 주정뱅이들

지금이 아침이든 밤이든 상관없다는 커플들



나랑 그 사람도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 사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


그러면 그 때 24시간 카페의

마법이 펼쳐지는거야


술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건데도


컴컴한 술집 불빛 아래서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도

비틀대는 것도 없이


깨끗하고 환한 카페의

유럽풍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마치 트렌디 드라마의 어떤 장면처럼


차마 잡지 못한 손을 잡거나

차마 기대지 못했던 머리를 기대거나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해버리는 거야


너랑 사귀고 싶어

네가 정말 좋아

요즘 계속 네 생각이 나

보고 싶었어


그 마법은 사실

이미 마신 술 때문

그리고

새벽의 기운 때문이기도 하지만


커피의 카페인 때문일까

그런건 다 관계없는 것 같은,

이미 다 깨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래서 평생 이런 밤이 또 있을까 싶은 기분으로

나란히 앉아 서로 부비고 사랑을 속삭인 다음에

첫차를 타고가는 서로를 배웅하고 나면

오후쯤 잠에서 깨어 조금 부끄러워지지


술취해서 한 실없는 얘기, 였을까

맨정신에 한 진지한 얘기, 였을까


그는 어느 쪽이었을까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먼저 쿨해져야할까

철판 깔고 한번만 질척거려볼까

그럴까, 말까...


그래서 24시간 카페에서 나올 때

수줍게 잡고 있던 손이

다음 방문 때도 여전히 그 모습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차라리 확실한 술주정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래서 더 다른 생각 안하게 했음 좋았을 걸


그 새벽의 그 시간은

마치 보석반지 사탕처럼


가짜인 걸 알면서도 너무 예뻐서

쉽게 버릴 수가 없어서


쿨해지지도 질척대지도 못하고

그 희미한 양쪽의 가능성 그대로 품은 채로

박제되어버린 그런 기억들이


그렇게 한참을 놓아두어

이제는 어딘지 쓸쓸해져버린 도시전설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거야


24시간 까페들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편지'에 대한 답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