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인생
'자려고 누워있다 보면 이런저런 고민들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혀요'라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INTJ인 나는 내일 일어나 먹을 것까지 미리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을 냈다. '어쩜 그렇게 계획이 없냐 미리 준비하면 당황하지 않는다'라는 나와 '닥치면 다 하게 된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ESTP 남편은 이런 문제로 나와 첨해하게 부딪혔다.
사소한 문제는 단순 성격차이라고 치부하고 싸우고 화해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암'이라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치료하면 낫는 병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는 남편은 나의 암을 단순한 질병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에 비해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A-Z까지 여러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생각하던 나는 걱정을 사서 하며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치달았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암은 나를 치료받기도 전에 스트레스로 죽일 모양이었다.
암이란 소리를 듣고서는 귀에서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인생은 끝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낫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죽을병에 걸린 영화 속 주인공이 되며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부터 원인과 원망이 함께 몰려왔다. T지만 F의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이 멈추질 않아 지하철역에 주저앉아 실연당한 사람처럼 울어버렸다.
도저히 이대로 집에 가서 남편을 마주하고 얘기를 할 자신이 없어 그날 숙소를 잡고 하룻밤을 지냈다. 호텔방에 좋아하는 커피하나를 사고 수첩을 꺼내 내 마음을 글로 끄적였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이유를 찾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글이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는 결론은 "그래서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수술을 해야지"라며 불안감을 감춘 채 다음날 남편을 만나 담담하게 나의 상황을 공유했다.
내가 울고불고해 봤자 소용이 없는 상대임을 이미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알았기에 담담히 수술계획을 얘기해 갔고 남편은 "수술하면 될 거야. 걱정 마"라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내 안의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장장 6년 동안 시술과 재발을 반복하며 같은 패턴으로 나는 서울을 오가며 힘든 싸움을 했다.
먼 거리를 오가야 했기 때문에 연세가 많은 친정엄마는 단 한 번도 병원을 함께 갈 수 없었고, 나는 늘 혼자 꿋꿋이 병원을 다녔다. 병원을 가는 날은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하며 서울 구경을 간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늦둥이 병원을 함께 갈 수 없는 엄마는 물질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덕분에 몸이 힘들지 않게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오가며 편하게 다녔다. 마음은 힘들었지만 몸만큼은 힘들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보다 예민하고 마음이 약한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줬다. 내가 30대에 여러 번의 유산과 암을 겪으며 느낀 것은 인생은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몇 년 뒤에는 아이를 가지고 몇 년 후에는 학부모가 되어있을 줄 알았던 나름 스타트가 빨랐던 나의 멋진 미래를 그려왔는데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오히려 넘어져 모두가 나를 앞질러 가는 상황이었다. 모든 게 내 계획대로 흘러갈 줄 알았지만 결혼 후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결혼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며 한심한 생각을 했다.
엄마를 원망했다가 남편을 원망했다가 아빠를 원망했다가 결국은 나의 팔자를 원망하는 지경까지 갔다.
하지만 틀렸었다. 원인불명 그야말로 원인이 없으니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남편의 말대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 해결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3번 하고도 재발했을 때 남편은 처음으로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화를 냈다. 의사가 돌팔이가 아니냐며 원망했다.
평생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다음 계획을 위해 살아온 내가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계획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 계획, 내후년 계획 모두 의미가 없었다. 닥치는 대로 해결하며 올해는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버텨왔다.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평생을 나 자신이 꽤 우울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나는 꽤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힘든 세월을 꽤 꿋꿋하게 버텨낸 걸 보니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였어"
그리고 뒷말은 스킵했지만 속으로 생각한다."이 모든 걸 단 한마디의 불평불만 없이 지켜봐 준 당신 덕분에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다시 웃기도 하며 내가 버텼어 고마워. 항상 불안하고 사서걱정을 하는 내가 긍정적인 당신을 만난 덕분이야"
서로 정반대인 사람들이 왜 끌리는지 알겠다. 서로 달라서 싸우지기도 하지만 서로 다르기때문에 부족한 점을 채워가고 긍정적인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다. 너무 다른 우리지만 나와 너무 달라서 좋은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