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인생
대학병원에 다녀오면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이 든 사람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도 각자의 이유로 인해 병원 진료를 보기 위해 지친 표정으로 기다린다. 한집에 암환자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인 요즘이다.
첫 번째 수술을 위해 다인실에 입원했더니 코로나 이전 병실 풍경과는 다르게 모두 커튼을 치고 말도 섞지 않고 있었다. 연세가 우리 많은 부모님은 병원을 꽤 번갈아가며 입원하셨었다. 그때만 해도 음식을 나눠먹고 모두 수다를 떨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몰라도 다인실이지만 각자의 슬픔을 커튼으로 가리고 있었다.
입원 첫날은 잠도 오지 않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괜히 눈물이 나서 커튼 속에서 눈물을 훔쳤다. 입원한 3박 4일 동안 옆사람과 말 한 번을 섞지 않고 퇴원을 했는데 신기한 것은 아침이 되면 아이들 등교를 챙기며 영상통화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인실이다 보니 통화내용이 다 들렸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있는데 아파서 퇴원을 할 수 없는 엄마의 표정은 어쩜 아이 없는 내가 덜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초기에 난소 혹을 발견하고 수술로 절제만 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던 나는 빠른 퇴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 후 가스를 빼기 위해 아픈 배를 붙잡고 병원을 몇 바퀴씩 걸었다. 그러다 보면 마주치는 사람들은 머리에 두건을 한 환자들인데 항암치료를 하는 분들인듯했다. 다들 어떤 병명을 가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 부인과 질병인 분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대충 어떤 상황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초기여서 제거수술만 하고 항암치료를 할 필요가 없던 나는 천운이었다. 더 힘든 상황의 사람을 보고 희망을 얻는다는 게 참으로 죄송한 일이지만, 이만하면 나는 운이 좋은 거라 생각하게 됐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다들 "내가 아는 누구도 암 이래. 누구는 몇 기라던데 너는 다행이다"라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 위로가 참 싫었다. 암이 걸리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암이 걸린 사람과 비교하며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니 말이 되는 건가 싶었지만, 실제로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을 보면 덜컥 겁이 났다.
실제로 내가 아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외숙모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아들이 결혼하고 손주를 본 지 1년도 되지 않은 때였다. 그 나이 60도 되지 않은 때였다. 증상을 늦게 발견하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진단을 받고 딱 3개월 후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너는 정말 운이 좋았다"라며 위암 말기의 외숙모의 모습은 너무 안쓰러웠다고 하셨다.
내 가까운 가족들도 다양한 암을 겪었고, 겪고 있으며, 얼마 전 친구도 위암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 세상에 나의 암 따위는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죽기 전에 병하나 없이 죽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싶은 세상이다.
다들 나만 보면 잔소리를 해댄다. "술은 먹지 말고, 운동을 하고 살을 빼야 해, 열심히 걸어, 어떤 버섯이 좋데 등등" 흡연도 안 하고 술도 마시지 않는 우리 사촌오빠는 위암에 걸렸고, 날씬하던 외숙모도 위암에 걸렸다. 식습관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스트레스를 받고 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큰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아버지가 아프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병을 진단받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것과 같다.
살면서 받는 여러 스트레스들을 우리는 어떻게 풀고 받아들이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입버릇처럼 '짜증 나. 스트레스받아. 죽겠다 정말'과 같이 습관적으로 내뱉어내던 나는 "나 이러다 정말 암에 걸려 죽을 거 같아"라는 말을 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암을 진단받았다. 말하는 대로 되어버린 나는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평소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입버릇처럼 내뱉던 "짜증 나"라는 말 자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화가 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는 무심코 내뱉는 말 때문에 생각보다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화를 내게 되는 것 같다.
법륜스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가 화내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상대에게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에 대한 화인지 진짜 화의 원인을 생각해 보고 왜 내가 화가 났는지 화의 진짜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화라고 하더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해 보는 것이 중요하며, 화가 올라올 때 무작정 화를 내기보다는 그렇게 화를 낼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화내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득보다는 독이 되기 때문에 타인 때문에 생긴 화를 스스로 다스리고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면 그것은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화를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무조건 참기보다는 분위기 전환&생각 전환을 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차분해지고 화의 크기를 많이 줄일 수 있다.
화를 내면 내 기분만 더러워진다. 짜증 섞인 말을 내뱉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생각을 하는 것 또한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분과 생각이 그것들로 뒤엉키는 일임으로 나를 위한 일이 절대적으로 아니다. 나 또한 누군가를 미워하고 짜증을 쉽게 내는 편이었지만, 내 입과 생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복잡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 때면 잠시 거리를 두고 보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며칠밤낮을 그 생각에 빠져 나를 온통 화로 채우지 말고 괜찮아질 때까지 멀리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
그때가 되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볼 수 있게 되니 작은 일에 연연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을 하지 말자. 좋아하는 것만 해도 짧기만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