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밥순이가 된 나에게 저녁이 주는 행복은 남다르다. 결혼 전 마른 먹는 것에 관심은 없었지만, 요리를 좋아했던 나는 결혼 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저녁을 늘 준비했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를 떠나 하루 한번 마주 보고 먹는 식사는 무엇보다 부부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나와 달리 아침밥 준비는 필요 없다는 신랑 덕분에 아침은 바쁘지 않다. 하지만 점심때쯤이면 오늘은 뭘 먹지 생각하면서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한다. 가끔 매일 반복되는 밥순이가 지겨울 때면 외식이나 배달음식도 시켜 먹지만 그래도 함께 저녁을 보내는 시간만큼은 꼭 지키려고 한다. 신랑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당일 저녁 약속은 잡지 않고 미리 사전에 약속을 잡고 있다.
우리 시댁은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아주 늦은 저녁을 먹거나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반대로 나의 부모님은 매일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시는 일을 하셨고 저녁이 되면 두부한모 심부름이나, 마늘을 빻는 일 등 저녁을 함께 준비하고 저녁식사를 했다. 그래서인지 자취를 하던 대학시절에도 나는 밥을 사 먹지 않고 장을 봐서 혼자 된장찌개를 끓여 먹던 아이였다. 주인집 아저씨가 식당을 하고 계셨는데 자취를 하는 동안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그런 내가 신기했는지 우리 엄마를 보시고는 "OO는 밥은 정말 잘해먹어요."라고 하셨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햇반도 없던 그 시절 어린 여학생이 매일 작은 자취방에서 밥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신기할 만도 했을 것이다.
남편은 평생 살이 찐 적이 없다는 신랑은 59kg대를 유지했는데 지금은 무려 10kg가 질만큼 집밥의 위력은 대단했다. 밥은 배만 채우면 되는 거라던 남편은 요리 잘하는 와이프를 얻어 매년 김치를 담그고 제철에 나오는 신선한 식재료들을 찾아다닌다. 우리에게 계절은 단순히 춥고 덥고의 개념이 아닌 '이맘때쯤이면 이걸 먹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나에게 몇 해 전 먼 거리에 사는 시댁 근처로의 이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작은 편의점 하나를 차려서 함께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장사를 해본 적 없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러던 중 어머니와 얘기를 하면서 나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사를 접게 되었다. 단 둘이 사는 딩크부부인 우리에게 오전과 오후를 나눠 일을 한다는 것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단 둘이 사는 우리가 저녁도 함께 먹을 수 없다면 그것은 부부로써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나는 되물었다.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신 어머니는 늦은 저녁을 먹던지, 평일은 그렇게 지내고 주말에 만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시며, 몇 년만 고생하면 될 텐데 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하지만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우리 부부만의 루틴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저녁을 대충 때우는 식의 생활도 할 수 없었다. 남편과 같은 회사를 다니다가 둘 다 그만두고 1년 가까이를 백수로 지낸 적이 있는데 그 후 이직을 할 때도 나는 남편에게 그전 회사보다 높은 연봉이 아닌 빠른 퇴근을 하는 것을 가장 1순위로 말했다. 함께 다니던 회사는 매번 10~11시 퇴근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높은 연봉보다는 워라밸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을 희망했고, 덕분에 지금은 공무원과 같은 칼퇴근을 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삶을 포기하고 밤낮이 바뀐 삶을 살라는 것은 부부로써의 의미를 잃는 것만 같았다. 물론 주말부부를 하는 부부들도 많고, 저녁에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부부들도 많겠지만 아이가 없는 우리 집의 룰은 함께 저녁을 먹는 것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정성껏 차린 된장찌개와 갓 한 뜨끈한 밥을 남편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밥을 차린다. 별다른 것 없는 소박한 식탁이지만 오늘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리는 행복을 쌓아간다. 그깟 코로나도 무섭지 않을 만큼 냉장고에 김치만 있으면 든든한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을 남편에게 전한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함께 커피를 내려 과일을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소소한 행복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