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배려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

by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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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서도 일명 무개념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어릴 때는 절친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영원히 나의 편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나이가 들고 친구보다 소중한 가족이 생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이기심이 눈에 띄게 된다.

'친구니까 그 정도는 배려해 줄 수 있잖아.' '뭘 그런 걸 가지고 예민하게 굴어. 쪼잔하게'라는 말을 당연하게 하는 친구도 있다. 특히 아이가 없이 사는 나는 모임을 하더라도 늘 양보를 하고 배려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어느 순간 나의 작은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너희는 아이가 없으니까 여유 있잖아'라며 작은 손해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 빈번히 생긴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우리에게도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권리를 요구한다.


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만나기로 하면서 약속을 잡는다.

친구가 아이가 어리니 '베이비 카페'에서 만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키즈 카페는 커녕, 베이비 카페라는 곳을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검색을 해봤다.

아이도 없는 내가 아이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입장료 자체가 높은 곳이었다.

난임기간이 오래되었던 나에게 이게 맞는 요구인가? 결국 나는 약속을 취소했다.

물론 가줄 수 있지만,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잖아. 친구야.


친구 모임에서도 각자 가족 수가 다르다 보니 당연히 손해가 발생함에도 우리는 그 불평등을 함부로 건의할 수 없다. 매월 같은 금액으로 모아 만나는 것임에도 우리는 둘, 누구는 혼자 오는데 누구는 성인이 된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는 4인 가족이 있다. 1/n도 아닌데 어떻게 매번 가족 모두를 데리고 오는 거야?

'갓난 아이거나 미취약 아동도 아닌데'라며 볼멘소리를 해도 우리가 그런 얘기를 하면 쪼잔한 사람이 된다.

아니면 '너희는 아이가 없으니까..'가 되어버릴 테니 손해인 줄 알면서도 늘 우리는 져줘야 한다.

적어도 이런 배려를 배려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이런 배려가 몇 년이 되어도 늘 당연하게 받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부분은 나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언니는 아이들이 있고, 나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아프면 모시는 일은 늘 내 몫이다. 모임을 해도 언니는 아이들이 있어 돈 들어갈 곳이 많다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나는 둘이니까.. 젊으니까..로 나의 배려를 강요당한다.


아파트에 살면서 새로운 시설을 만들거나 공간을 만드는 것도 대부분은 성인을 위한 시설보다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 많다. 물론 약자인 아이들을 위한 공간 배려도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관리비를 내는 나에게는 불평등하고 여겨지는 부분도 충분히 있다. 아이 없는 우리는 누릴 권리조차 없다.


티브이를 보다가 어떤 분이 임신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임신을 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따뜻하고 많은 배려를 받아 행복했다고 했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절대 겪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를 핑계로 나의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당신이 난 참 밉다. 사람 대 사람으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그것은 아이의 유무를 떠나 도리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런 불평등한 세상에서 나는 묻고 싶다. 세상의 약자라면 오히려 아이없는 내가 약자 아닌가요? 노후에 쓸쓸히 늙어갈 나는 배려받을 존재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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