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나를 지탱해 온 것은

by SomeDay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 사는 게 뭐라고 사노요코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귀이다. 누군가의 딸이자 평범한 회사원,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로 살아가는 나는 정작 나의 삶만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아내이자 며느리로서 결혼한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를 하고자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반복되는 유산과 실패하는 시술로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초초해지고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나의 가임기간은 짧아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점점 많아지고 주변에 사람은 줄어갔다. 같은 공감거리 얘기도 없어지고 나는 시간만 많은 전업주부였다. 처음에 찾은 취미는 독서였다. 책을 사는 즐거움, 다 읽었다는 성취감이 재미있었다.

중고서점에 들러 하루종일 책을 고르고 무겁게 돌아오는 일도 즐거웠다.


바쁜 회사생활에서는 취미라고는 술을 마시는 게 전부였던 내가 점차 여러 가지 취미를 즐기기 시작했다.

캔들 만들기, 비누 만들기는 물론 꽃꽂이,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원데이클래스를 배워가며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성격상 하나를 진득하게 할 수 없는 편이라 나에게 딱 맞춤으로 배우고 싶은 것만 배워가는 원데이클래스는 재미있었고 인간관계도 그때그때만 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감이 덜 했다. 어딜 가나 아이가 있냐는 질문에 진절머리가 날 때였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홈카페도 즐기지만 밖에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었다.


사노요코의 말처럼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스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아가면 스트레스 상황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 내면이 단단해지기 위해 남들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남들은 모를 것이다. SNS 상에서는 늘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팔자 좋은 여자니까.

어릴 때는 고민이 있으면 친구한테 툴툴거리고 털어버리면 한 50% 이상은 고민이 줄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아무리 친한 친구한테 나의 고민을 얘기한 날은 돌아오면서 괜히 찝찝하고 '그 얘기는 하지 말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나의 치부를 온천하에 퍼트리고 온 것처럼.. 영원한 비밀도 영원한 내편도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전에는 특히 주변 사람들에게서 '운동을 해봐라. 일을 하는 게 어떻겠니. 사람을 좀 만나'등 여러 가지 잔소리를 들었었다.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나는 이미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멘털이 나갈 때로 나가있던 시기에는 누구를 만나 얘기를 하는 것도 즐겁지 않다. 그냥 혼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길 장을 봐서 남편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 너무나 행복했다.


이렇게 내면의 힘을 기른 덕분에 나는 3년이 넘도록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병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다.

시술을 세 번 받고 여전히 남은 바이러스로 몇 개월마다 추적검진을 받는 달이면 몇 주번부터 벌써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먼 거리 때문에 혼자 다니다 보니 늘 안 좋은 결과를 들을 때면 지하철역에서 주저앉아 울기도 했고, 비행기를 탈 때면 차라리 떨어져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왔다 갔다 당일치기로 다니면서 마음이 힘들 때면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하루 더 보내다가 왔는데 딱히 어떤 일을 한다거나 구경을 하는 게 아니라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 앉아 책을 읽거나 독서를 했고 좋아하는 초밥을 주문해 호화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 내려와 남편을 만났을 때 울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며 검사결과를 담담하게 검사결과를 얘기할 수 있었다.


아무리 길러도 딱딱하게 마음이 굳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간들을 보냄으로써 나의 마음속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여전히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촛불이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나의 내면 속으로 깊이 들어가 나를 찾는 연습을 한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주문을 외운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자' '자신을 치유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혹인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키우는 시간을 좀 더 갖자고 말하고 싶다.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고 하는 지적인 생활이야말로 누구나 경험해야만 하는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다. - 혼자 있는 시간의 힘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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