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부부가 아이가 없이 긴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주 바닥까지 보여주게 된다는 뜻이다. 아이가 있음으로써 참아야 하는 부분들이 없는 채 싸우면 싸우는 대로 완전 끝까지 가게 된다. 결국 또 마지막 말은 '헤어지자'이다.
부모님에게 수없이 들었던 '너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갈라서는 건데.. 너 때문에 참았어'는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살아보니 아이가 있다는 것은 부부사이에 균열이 나도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아이가 있어서 다시 웃고 화해하게 된다는 뜻 같다. 연인이나 부부사이에도 권태기는 온다. 뭔가 예전 같지 않고 스킨십도 줄고 대화도 줄어가는 시기를 겪게 된다. '우리도 어쩔 수 없구나.' 싶은 순간이 오는데 그때를 잘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결혼에 대한 로망이라던가 남편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결혼한 케이스는 아니다. 연애를 하는 4년 동안 한결같던 남편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에 결혼을 했다. 엄마가 늘 말해오던 가정적인 남자였다.
딱히 입바른 말을 하지도 않고 서프라이즈 이벤트도 해본 적 없는 남자이지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줄 알고 빈말을 하지 않는 남자였다. 연애를 오래 했지만 서로 배려하고 조심했던 시기가 길었는지 결혼을 하고 오히려 서로의 진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했고 우리는 많이 방황했다.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아이가 있는 부부의 10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아이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무조건 둘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누구 하나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남편이 많이 양보를 했다. 늘 화를 내는 쪽은 나였으니까..
연애 때처럼 한 치의 양보를 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들에 부딪혔고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의 눈치도 봐야 할 것이고, 육아하느라 피곤한 몸 때문에 아마 대충 넘어가는 일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다시 아이 때문에 언제 싸웠냐는 듯이 웃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연애 초 '미안해'라는 말을 모르던 남자와 발만 밟아도 미안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만나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일 때문에 2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게 만든 날도 있고, 자느라 약속을 잊은 적도 있었지만 미안해라는 말을 안 하던 남자는 시간개념이 없는 사람이었다. 반복되는 일로 화를 내면 내가 언성을 높일 만큼 잘못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했던 남자였다. 처음 나는 이런 모습을 보고 '일부러 나 엿먹이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정말 화와 짜증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먼저 나한테 화를 내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덜렁거리는 내가 물을 엎지르거나 밥솥을 떨어트려 쌀이 온 바닥에 퍼지는 일을 해도 묵묵히 치워주는 일부터 한다. '왜 그렇게 덜렁거려 조심 좀 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칭 비위가 약하다는 남자는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 후 바닥에 토를 하고 오줌을 씻을 때도 짜증은 커녕 아무말없이 깨끗이 닦아줬다.
화내는 방식, 화해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던 우리들의 10년은 아주 치열했다. 생활습관부터 양가집안문제, 난임문제 등 아직도 답이 안 나온 부분들이 더 많다. 서로 너무 다른 성향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접근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그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당신이 전혀 고치지 않을 행동이라는 것도 알지만 나는 사과를 받아야겠다. 적어도 '미안해' 세 글자로 우리의 화해가 이뤄진다면 언제든지 '미안해, 사과할게'라고 해주는 당신 덕분에 우리는 오늘 또 화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