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까칠합니다.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 데는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금 특별한 환경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자란 나는 늘 남들과는 조금 다른 편이었다. 왜소하고 작은 키의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나는 남들이 보는 시선과 내면의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40년대 생인 부모님은 그 시절 나를 40대에 낳으셨기 때문에 늦둥이였던 나는 부모님께 사랑으로 포장된 집착 속에서 살았다.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칭하지만 사춘기 소녀에게는 숨 막히는 집착이었다. 해가지면 들어와야 하는 나는 내성적인 성격에 친구도 많이 없었고 또래 아이들의 삶과는 조금 다른 가정환경이었다. 시골에서 6살 때 상경했던 나는 인스턴트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유명 피자는 고등학교가 되어서야 가봤을 만큼 모르는 게 많았다. 그만큼 부모님들도 늦은 나이에 도시로 오시면서 이런저런 고생스러운 일을 하며 나를 돌보셨다. 친언니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이미 내가 초등학생 때 결혼을 해서 떨어져 살아서 거의 외동처럼 자랐던 나는 늘 혼자였다.
바쁜 도시의 삶은 시골과 달랐고 반지하에서 시작한 도시에서 맞벌이를 하시며 바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머니가 나를 살뜰히 돌봐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갓집 식구들이 주변에 있어서 많이 의지를 하고 살았다.
가족여행이란 것도 모르고 살았던 나는 그나마 작은 이모네에 얹혀서 놀러를 다녔다. 그나마 형편이 좀 피이던 초등학교 6학년 생애 첫 아파트를 매매하자마자 IMF가 터지고 아버지는 실직자가 되셨다.
바람 잘날 없던 우리 식구를 지탱한 것은 억척같던 엄마였다. 귀한 부잣집 첫째 딸로 태어나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사셨다던 엄마는 가난한 집에 시집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는 도시에 오시고는 사고를 더 많이 치고 다니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직장에 나가셨다. 억척스럽게 대학 졸업까지 시키고 나는 드디어 직장인이 되었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이었지만 대졸 백수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효녀라 불렸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애가 매일매일 출근을 하고 월급까지 받사오니 그보다 좋은 효도는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집은 보통의 삶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보통의 가정과는 조금 다른 삶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일찍 결혼을 할 거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나이 많은 부모님과 산다는 게 절대 좋은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늦게까지 고생을 해야 했고 나는 나대로 소통이 안 되는 부모님이 힘들었다. 조금 더 젊은 부모님들이었다면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방향성을 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생은 한 적이 없을 만큼 편안한 삶이었지만 그만큼 나는 의욕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앞두면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고 나는 알았다. 그동안 나는 우물 안 개구리로만 살았다는 것을..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면접을 보러 가는데 날 굳이 쫓아와 사장님께 하루 3시간만 일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엄마였다. 대학졸업 전 취업도 안정해졌을 때 이미 내방 벽도배를 새롭게 하고 가구까지 구비해 놓은 부모님은 취직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당연히 집에 내려와 있으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신 적도 없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라고 하신 적도 없다. '그냥 내 옆에만 있어라'라는 게 유일한 조건이었다.
부모님이 기대하지 않는 나의 미래는 과연 밝을 수 있었을까? 운이 좋게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나는 남편을 만나고 내 삶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남편은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전혀 부자와는 관계가 먼 내가 돈에 대한 욕심도 없고 그저 평온한 삶에 만족하며 산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저 먹고 싶은 거 먹을 정도의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집에서 쉬면서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왜 쓸데없는데 돈을 쓰냐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에게는 세상 빡빡한 짠돌이인 그는 늘 나를 응원했다. 뭐든 해보라며 나를 격려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못하는 38살의 팔자 좋은 전업주부이다. 그냥 이렇게만 살면 딱히 문제없이 사는데 왜 굳이 험한 세상에 발을 내딛냐며 나를 꾸짖는다. 그런 걸보는 남편은 애를 바보로 만들어 놨다며 장모님에게 핀잔을 준다. 세상 곱게곱게 편안하게 살라는 부모의 마음과 달리 나는 온실 속 화초, 그저 우물 안 개구리로 영원히 살아가는 바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 밖이 어떤지 좀 보고 싶다며 목소리를 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