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떠나 혼돈을 개척하는 아이들.
본 글은 영화 스탠 바이 미(1986)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년 네 명이 시체를 찾아 떠나는 이틀간의 여행을 담고 있다. 제각각의 상처를 안고 살던 소년들은 그 여행을 통해 우정과 용기를 얻는다.
시놉시스
죽은 형의 그늘에 가려 사는 고디(윌 위턴),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억눌려 사는 크리스(리버 피닉스), 2차 대전의 영웅인 아버지를 존경하는 테디(코리 펠드만), 꼬마 벤(제리 오코넬)은 시체를 찾아 영웅이 되고자 한다. 이틀간의 여행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소년들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데...
1959년 시골 마을 캐슬록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나무 위의 오두막에선 어른들을 흉내 내며 담배를 피우고 카드를 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의 공간은 아늑하고 질서가 서있다.
그들의 오두막은 암호 없이는 출입이 불가하다. 그들만의 룰이자 질서는 그들의 합의로 나타나고, 합의가 나타난 공간은 그들에게 아늑함을 준다.
그들은 벤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늑한 오두막에서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동기와 욕망을 얻는다. 벤의 시체를 찾아 영웅이 되자는 지극히 어린아이들의 낭만적인 동기이다.
하지만 바깥세상은 질서 정연하고 아늑한 오두막이 아닌 혼돈의 세계이다. 어른들의 세계, 패거리들이 상주하는 거리, 모르는 지역, 길이 없는 숲, 처음 가는 길 등. 모두 혼돈의 세계이며 미개척지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도전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시작을 하기 전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패거리들은 아이들을 폭행하고 형의 유품을 가져간다. 이중에는 크리스의 형도 포함된다. 우리도 어떤 모험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 아늑한 집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많은 방해를 받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지지하며 털고 나아간다.
이때 영화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앞으로 나아갈 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모습에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희들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미소를 짓고 긍지 있게 나아간다.
기차에 맞서는 테디
즐겁게 노래하고 농담하며 걷던 중 기찻길을 통해 기차가 달려온다. 아이들은 당연하게 기차를 피하지만 테디는 자신을 시험한다며 기차에 맞선다. 4차원 기질의 테디의 모습과 참전용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테디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테디는 끝까지 기차와 맞서고 싶어 했지만 크리스가 그를 저지하며 기찻길에서 내려오게 하고 테디는 이에 불만을 표하게 된다.
이때 크리스의 리더다운 모습이 연출되는데 테디의 돌발행동과 적반하장에도 불구하고 먼저 사과하고 푸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단순한 이야기의 고전영화임에도 인물 설명과 복선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연출이다.
폐차장에서 생긴 일
우리들의 모든 도전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고 서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실하게 준비됐다. 결국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사고 물을 마시러 아이들은 폐차장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룰을 따라 동전 던지기를 하고 고디가 걸린다. 고디는 슈퍼마켓에 들려 음식을 사는데 가게 주인이 고디의 형을 이야기하며 고디를 불편하게 한다. 모든 점에서 뛰어났던 형과 달리 평범한 고디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는 장면이다.
내기에서 진 고디가 음식을 사 왔을 때 아이들은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었다. 폐차장의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고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기 살기로 달아났다. 등 뒤에서 매서운 맹견의 소리가 들려 더욱더 겁을 먹은 상태였다. 소문에 의하면 폐차장의 맹견은 아이들의 성기를 물어뜯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고디는 간신이 철장으로 넘어 친구들에게로 돌아온다. 철장으로 넘어온 고디는 웃음을 터트리는데 이는 소문 속의 매서운 맹견이 아닌 친근한 레트리버가 그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다 큰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맹견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때로는 겪어보지 못하여 두려워하는 경우가 혼돈을 만들어내고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정복하여 질서를 세우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주인과 개를 놀리며 돌아가려고 한다.
이때 아이들은 진정한 악마는 소문 속의 맹견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폐차장 주인은 소문 속 맹견과 달리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줄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테디의 아버지를 나무라며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테디는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려고 한다. 교활한 주인은 그를 철장 안으로 다시 불려드리려 하지만 크리스와 아이들이 막아선다.
이 장면에서 테디가 기차에 맞섰던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테디는 아버지의 정신이상에서 비롯된 폭력에도 2차 대전 참전용사인 아버지를 존경했다. 하지만 세상의 눈으로는 테디의 아버지는 그저 정신병자였다.
이러한 평가와 사람들의 시선, 잣대들은 아이가 견뎌내기에는 터무니없는 것들이고 이 것이 기차로 묘사된 것이라 생각한다. 즉 테디는 세상에 맞서고 싶어 했고 아버지를 욕하는 주인에게 한 것처럼 아버지를 변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테디가 기차에서 크리스에게 저지당했듯이, 이번에도 저지당한다.
고디와 크리스의 고민
고디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부모님은 이를 응원해주지 않고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한다. 고디는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부모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은 당연하게도 실업계 중학교로 가 머리에 똥만 찬 사람이 될 것이라는 크리스도 마찬가지이다.
고디는 크리스에게 너는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인문계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고, 크리스는 고디에게 위대한 작가가 될 것이라고 응원해 준다. 혼돈이 가득한 세상에서 길을 잃을 때 자리를 잡아주는 친구이자 동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크리스는 자신이 이상하냐는 고디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응원한다.
네 부모가 널 못 돌봐준다면 나라도 돌봐주겠어.
준비되지 않은 혼돈
아이들은 기찻길을 따르다 다리와 만나게 된다. 돌아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다리를 건너면 금방 갈 수 있는 두 갈래 길에서 아이들은 다리를 건너기로 한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기차는 매섭게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아이들은 죽기 살기로 뛰기 시작한다.
이전에 만났던 기차는 기찻길을 벗어나면 쉽게 피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준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차를 마주한다. 우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일을 맞닥드리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안전한 선택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준비되지 않은 혼돈이라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깊어가는 밤
아이들은 무사히 밤을 지낼 곳을 찾는다. 그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기찻길에서의 소동과 하루에 있었던 자신들만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고디의 웃긴이야기로 즐거워하기도 하고 평가하기도 한다. 영화는 고디의 이야기로 이들이 아직 아이에 불구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아이들이 숙면을 취하려는 때에 야생동물의 소리를 듣고 서로 보초를 서기로 한다.
고디와 크리스의 상처
깊어가는 밤에 크리스는 고디가 악몽을 꾸는 것을 목격한다. 고디는 형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네가 형 대신 죽었어야 했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깨어난다. 고디는 우등생에 운동도 잘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던 형이 살고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는 자책을 하려고 한다. 그가 세상에게 받는 느낌은 그러했던 것이다.
크리스는 고디를 다독여 주며 고디의 옆에서 존재함으로써 그를 응원한다. 고디 자신에게 너무나도 잘해주고 응원해 주었던 형의 죽음만으로도 큰 충격이었겠지만 이후의 어른들의 무언의 생각을 읽는 것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니는 형 때문에 챔버스가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크리스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기에.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린다. 크리스가 어른스러운 면을 가지게 된 것과 일찍 철든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다시 서로를 응원하며 곁에 있기에, 서로의 아픔을 토로한다.
고디와 사슴
이튿날 아침 고디는 사슴을 마주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과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인데. 고디는 이 순간을 혼자서 간직한다. 이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지만 털어놓지 않고 혼자 극복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로써. 크리스에게 의지하던 고디가 독립적인 자아로 나아가는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순간의 깨달음으로, 앞으로 고디가 잘 가꾸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상념이다.
시체
스티븐 킹의 원작 "The body"와 같이 아이들은 결국 시체를 찾아내게 된다. 다사다난했던 일들을 이겨내고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직전에 가장 큰 깨달음과 그에 따른 행동이 있는 법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상념에 빠지게 된다. 특히 고디는 시체에 자신의 형을 투영하며 다시금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이 장면이 고디가 트라우마를 진정으로 이겨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고디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 선다. 테디가 기차에 마주했던 것처럼 고디는 자신이 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되뇐다. '내가 죽었어야 했어', '아버지는 날 싫어해', '날 싫어해'.
비록 흐느끼며 우는 고디이지만 더 이상 다른 이유를 찾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확실하게 정의한다. 문제를 알면 해결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우리들과 같이 문제를 다른 이유로 덮고 마주 서려하지 않는다면 문제든 더더욱 커질 것이다. 더 많은 먼지가 쌓이고 있는 침대 밑을 청소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고디가 회피하려 했던 트라우마를 마주설 때 큰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곁에서 크리스가 함께해 주며 동정(同情)한다. 동정 영어로 compassion으로 com은 '함께'를, pati는 '고통받다'를 의미한다.
이제 패거리 따윈
패거리들에게 형의 유품을 빼앗겨도 가만히 있던 고디는 이제 결의의 찬 모습으로 크리스와 친구들을 지켜낸다. 성장한 고디가 처음으로 세상과 맞서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사슴과 마주한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었다면 양아치 에이스에게 맞서는 순간은 첫 행동의 시작인 것이다.
이로써 아이들은 패거리들에게 시체를 지켜내게 되고 익명의 제보로 시체는 자신의 누울 자리를 찾게 된다.
작아진 마을
아이들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은 한 뼘 작아져 있었다. 그들의 혼돈은 더욱 개척되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끌어주고 붙잡으며 성장해 나아갔다.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영화는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메시지와 같이 우리도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역경을 겪을 때 나와 함께 하는, 영화의 제목처럼 "Stand by me" 즉 내 곁에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영화는 메시지뿐만 아닌 그 시절의 아름다운 촬영기법, 젊은 리버 피닉스의 연기력, 80년대 아이들의 패션, 현재까지도 너무 유명한 ost 등 우리는 롭 라이너 감독이 선물해 주는 아름다운 90분을 즐기는 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