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gentina, El Calafate
2023.07.23 출발 전 준비
영화-Into the wild(2007)
여행을 떠나기 3년 전인 2020년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게 됐다.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속세와 사회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알래스카를 목도하는 장면이다.
하얀 눈, 광활한 자연, 자유롭게 뛰어가는 순록을 보고 그는 감탄과 환희, 경외에 빠진다.
그로부터 3년 후, 속세이자 폐쇄적 사회인 군복무를 마치고 떠난 파타고니아 여행은 크리스토퍼의 감동을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여행을 가기 전에 많은 준비물을 챙기게 되는데, 나는 영화 한 편과 음악 하나를 꼭 챙겨간다.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가거나 cd를 챙기는 것이 아닌 여행동안 계속해서 상기해 가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마인드와 행동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느낌을 느끼게 되고 여행의 추억과 영화의 향기가 함께하며 색다른 나만의 경험이 된다.
이번 여행은 이렇듯 크리스토퍼와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음악-Cinema Paradiso, Ennio Morricone
음악도 영화와 마찬가지이다. 영화가 내게 마인드와 영감을 선물해 준다면 음악은 여행 내내 나의 메인 ost가 된다. 여행 중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몇 년 후 다시 들을 때 여행의 추억, 영화가 같이 떠오른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 중 단연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하는 Cinema Paradiso를 선정 한 이유는 추운 겨울 따듯한 옷을 입었을 때, 특히 따듯한 머플러와 함께할 때 내부는 따듯하고 외부는 차갑듯이 상반되게 느껴지는 공기와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여러 악기를 조합해 사용하면서 따듯한 한 느낌과 차가운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데, 파타고니아의 여행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2023.07.24 출발 당일
시간상 파타고니아-엘 칼라파테 여행은 아르헨티나 여행의 마지막 장거리 여행이었다. 앞선 40일간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편해졌다.
기억상 새벽 비행기를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르헨티나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 중들 하나는 비행기를 타는 시간들이었다. 나의 설렘뿐만 아닌 비행기에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의 설렘이 함께 어우러진 에너지가 좋았다.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6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린다비스타 호텔은 칼라파테를 여행하는 한인들에게는 최고의 장소라고 볼 수 있는데 한인 주인분이 운영하시고 연세가 꽤 있으심에도 스페인어를 굉장히 잘하시기에 여행일정이나 티켓, 이동수단, 도시락 등 모두 도와주시고 조언해 주신다.
첫날에는 일정이 없는 자유여행이었기에 바로 수면을 취하고 여유롭게 산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일어나서 보니 더욱 아담한 느낌의 호텔이었다. 여행을 가면 으레 그렇듯이 호텔 주위를 산책하며 길을 익히고 익숙하게 만드는 탐험을 떠났다.
사진상으로는 굉장히 추워 보이지만 영하 1도 정도의 날씨였기에 크게 춥지는 않았다. 칼라파테의 가정집들이 조화롭게 서있는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과 하얀 눈, 정겨운 집과 정원은 자연스럽게 내게 따듯함을 주었다. 사람도 없었기에 모리꼬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들개를 만나다
산책은 곰을 만났던 크리스토퍼와 같이 다이내믹하게 끝났다. 길을 가다 들개를 만나버린 것이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거리가 좀 돼서 천천히 물러날 수 있었다. 후퇴할 때는 후퇴할 줄 알아야 한다.
번화가
들개를 피해서 반대방향으로 가니 번화가가 나왔다. 길을 안내해 준 들개에게 감사를 표해야겠다. 번화가에서는 사진을 많이 안 찍어서 인터넷 사진으로 대체했다.
당시에는 겨울이었기에 눈으로 덮여있었다. 사진은 여름의 사진으로 눈이 녹은 모습이다.
AV, San Martin 거리를 따라 많은 상점과 약국,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었다. San Martin은 아르헨티나 포함 남아메리카의 독립영웅으로 어딜 가든 그의 동상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릴 적(3살에서 7살 때까지였던 것 같다.) 내가 살던 길도 Remedios de escalada de San Martin으로 같은 이름이다.
여름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겨울의 눈 덮인 모습이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사진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많은 상점을 돌면서 마테잔과 할머니가 원하던 키링 인형을 사고 호텔로 돌아왔다.
NINA Pasión y Sabores
저녁이자 사실상 칼라파테에서의 첫끼 메뉴는 cordero라고 불리는 구운 양고기였다. 아르헨티나 남쪽 지역은 해산물, 양고기로 유명했기에 소고기가 아닌 양고기를 선택했다. 식당은 번화가 거리에 있었고 바이크가 매달려있는 모습이 매력적이어서 선택했다.
바이크와 조명의 배치가 매력적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저녁식사를 8시, 9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7시에 갔음에도 사람이 없었다. 담당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정했다
가장 매력적인 바이크 옆에 자리를 잡고 레스토랑을 둘러봤다. 보통 음식부터 시키는 한국이지만 아르헨티나는 모든 것이 여유롭고 한 템포 쉬고 진행되기에 레스토랑을 둘러볼 시간은 충분하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재밌던 순간 중 하나는 이렇게 여러 레스토랑을 다니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저녁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한국에 오래 있었기에 주류 문화나 레스토랑 문화 같은 어른들의 문화는 어릴 때 보기만 했을 뿐 배우진 못했다.
와인, Primogenito Patagonia Pinot Noir
식전 빵이 나오고 muso(담당 직원을 칭하는 아르헨티나식 표현)가 와인카드를 가져왔다. 보통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벡이 대중적이고 질이 좋기 때문에 말벡을 시키지만 이번에는 파타고니아 피노누아를 시켰다.
가격은 말벡보다 확실히 비싸지만 한국에 비하면 반의 반값도 안 됐을 것이다. 와인과 함께 레모네이드도 한잔 시켰다.
muso가 와인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는데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피노누아는 색이 진하고 검붉은 말벡이나 까베르네 소비뇽과 달리 옅고 붉은색을 띤다는 것이었다.
재배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품종이라 한국에서는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맛볼 기회가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피노누아의 맛은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말벡에 비하면 훨씬 부드러웠다 탄닌이 적기 때문에 강한 맛보다 강한 풍미가 느껴졌다. 이때 먹었던 피노누아가 아직까지는 가장 맛있게 먹은 와인인 것 같다.
빵도 매우 따듯하게 데워져 나왔고 레모네이드도 상당히 맛있었다.
메인, Cordero Braseado
메인은 감자퓌레에 구운 토마토, 구운 양고기 조림을 올린 모습이었다. 양고기는 소고기 장조림과 같은 식감이었고 퓌레와 함께 먹으면 특히 조화롭게 느껴졌다. 퓌레, 양고기, 피노누아의 조합은 특히 너무나 맛있고 행복하게 해주는 맛이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40일 동안 저런 표정으로 다녔다. 와인을 먹으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식당은 북적북적 많은 사람들로 차기 시작했고 나도 이야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를 많이 까먹었지만 억양과 말투가 남아있어서 스몰토킹은 쉽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한 저녁은 어느덧 무르익어갔다.
후식, Mousse, café doble
후식으로는 초콜릿과 누텔라, 산딸기와 플랄린으로 이루어진 초콜릿 무스와 café doble 하나를 시켰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한국과 달리 커피와 디저트도 메뉴판에 포함되어 있다. 커피와 디저트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커피를 시키면 탄산수가 같이 나온다는 특징이 있다. 입을 헹구는 용도이다.
디저트의 맛은 뭐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가는 길에 길거리에 개들이 굉장히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두 대형견들이고 주인이 없는 것 같았다. 쓰다듬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냄새만 맡게 해 주고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에 도착하고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이대로 흙이 돼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으로 잠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날이 끝났다.
2023.07.25 Glaciar de Perito Moreno
이튿날 아침 모레노 빙하를 보기 위해 배를 타야 했다. 호텔조식을 먹는데 사장님이 왜 배만 타고 트레킹은 하지 않냐고 물으셨다. 나는 트레킹이 날씨의 영향 탓에 닫혀있는 줄 알았다. 다행히 사장님이 다음날 일정에 트레킹을 잡아주신다고 해서 너무나 감사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에서 크리스토퍼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과 같이 나의 여행에도 항상 은인들이 있었다.
푸른 하늘, 그보다 푸른 바다 시원한 공기와 따듯한 햇살은 너무나도 기분 좋은 출발을 선물해 줬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다 보니 빙하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기대를 품으며 배는 달려 나갔다.
배가 목적지를 향해갈수록 빙하의 크기는 점점 커져갔고 우리들의 기대감도 함께 커져갔다.
빙하 이외에도 Santa Cruz의 산맥들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모레노 빙하
모레노 빙하를 처음 봤을 때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압도적인 크기와 영롱한 색은 모두를 감동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사진상으로의 크기가 체감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실제로 모레노빙하, 스페가찌니(Spegazzini) 빙하는 앞쪽으로 더 많은 면적이 있었지만 온난화의 영향으로 몇 km씩 줄고 있기에 보존에 힘써야 하는 유산 중 하나이다.
높이 60m, 너비 5km의 엄청난 크기이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살아있는 빙하로 불리는데 실제로 빙하가 앞으로 전진하기도 후퇴하기도 해서 그렇다. 투명하고 하얀 이 빙하는 태양을 우주로 반사시켜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배는 모레노빙하를 앞에 있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국립공원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모레노 빙하가 어디서든 보이고 빙하와 눈, 푸른 나무와 맑은 물의 조합이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배 위에서 봤을 때보다 국립공원에서 본 것이 더욱 조화로워 보였다. 국립공원에서 자유롭게 보낸 시간이 이곳을 떠난다는 것을 아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배를 타는 것이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다 내일은 저 모레노 빙하를 직접 오르는 트레킹 일정이 있고 저녁에 방문할 또 다른 레스토랑에 대한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페리토 모레노 빙하와 국립공원의 일정은 종료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