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나오는 그런 집..
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아니 그림 그리기를 싫어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두 살 터울 여동생과 함께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해바라기 안에 씨앗을 하나씩 그려내는 동생 옆에
나는 벌집 모양으로 지그재그 선을 주욱 긋고 노란 꽃잎만 샛노랗게 칠해 '다 그렸다~' 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어린아이가 자라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였으니 랜더링이나 3D MAX 프로그램을 배우는 시간이면 지루해서 랩룸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는 실무에 강한 편이라, 이론은 약해도 돼... 라며 합리화하면서...
사실 나는 앉아서 하는 일보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현장이 좋았다.
혼자 고상하게 컴퓨터로 드로잉이나 랜더링 하는 작업보다 드세고 드센 현장 아저씨들과 함께 일하며 농담 따먹기도 하고 호통도 치다 안되면 갖은 애교와 알랑방구로 어르고 달래 마감일을 맞추고 디테일을 꼼꼼히 해주도록 구워 삶을 줄 아는 곰살맞고 털털하지만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의 이미지는 세상 저런 깍쟁이가 없을 것 같고,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에 곱게 자라 응석 부리는 막내딸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 지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싹수없는 외동딸 이미지가 강하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선입견들이 있긴 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첫 집을 마련하셨다.
여기서 잠깐 나의 낭만 있던 시절을 회상해 보자면, 그전까지 우리 집은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가겟방에서 방 두 칸에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와 우리, 이렇게 방을 나누어 썼었다.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동생과 셋이 잠이 들면 슬레이트 지붕에서는 매일 쥐가 마라톤을 하였다. 그래서 자다가 그 소리에 깨어나 손을 뻗어 천장을 툭툭 치면 국민학교 3학년 꼬맹이 키로도 충분히 손이 닿았던 낮은 그 천장은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합판이 늘어져 있었다.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있고 비 오는 날이면 대야를 방 한 귀퉁이에 미리 준비해 둬야 새는 빗물이 방바닥 움푹 파인 데까지 흘러 내려오지 않던...
할머니가 피우던 담배 불똥이 튀어 장판 바닥 이곳저곳에 까맣게 곰보자국이 있던 그 집.
엄마가 외출하시면 연탄 제때 갈라며 지금의 내 아들보다 한참 어린 그 꼬맹이가 연탄집게를 두 손으로 잡고 아주 능숙하게 위아래 연탄을 바꿔치기하던 그 시절의 내가 살던 그 집...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보다 더 어렸던 그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
과거를 지나 새 아파트에 입주해 처음으로 갖게 된 내 방을 갖게 된 날이었다. 엄마가 맘껏 꾸며보라며 벽지와 커튼집에 데려가셨다. 그곳에서 샘플 차트들을 봐가며 하나하나씩 톤을 매치하고 패브릭 재질에 마감이나 스티치 실 색까지 골라가며 나만을 위한 맞춤 디자인을 골라냈고 사장님은 '아이고, 딸내미 디자이너 나셨네~~~??' 하시면서 (그 시절에는 애가 참 유별나다는 뜻) 디자인 값이라는 명목 하에 엄마는 더 비싼 돈을 지불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방의 도배와 커튼이 완성되자, 아빠께 이 컴포넌트 (오디오)는 내 책상 위 벽에 재미없게 세워져 있던
책장을 옆으로 매달아서 그 중간에 본체를 넣고, 양 사이드에는 스피커를 넣게 만들어줘. 해서 매달고..
피아노는 이쪽, 그리고 책상 뒤에는 화이트보드도 하나 달아줘. 그렇게 보통의 여자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취향의 모던하면서도 독특한 내 방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사 가던 날, 창 사이즈만 맞다면 저 로만쉐이드 (줄을 잡아당기면 커튼이 세로형으로 주름 잡혀 올라가는 타입의 커튼)를 떼어갈 텐데 하면서 너무나 아깝고 아쉬워했었는데 이삿짐이 다 빠지고 난 후 내 방에 들어가 보니 그 커튼이 없어진 것이다!! 누군가 훔쳐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때도 나는 지금의 나처럼 내 안몫이 너무 훌륭해 훔쳐가고 싶으리만큼 저게 탐났나 보군...
하며 오히려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훔쳐간 도둑 집에 따라가서 훔쳐간 내 커튼과 어울리게 그 집을 꾸며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을 정도다.
지금도 어떤 집이나 공간에 들어가면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찰떡인 색감과 가구들, 그리고 장식들이 머릿속에 두둥실 막 떠오른다.
그 아이템들을 찾아내어 스테이징을 하다 보면 잠시 딴 세상에 다녀오는 기분이 들만큼 몰입하여 공간을 꾸미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 세상에 이만큼 재밌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싶으리만큼 집을 꾸미는 일은
나에게 큰 즐거움의 원천이자 삶의 활력이다.
한국에서 고등학생 시절부터 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에 다다라 신축아파트의 모델하우스만 보면 설레는 기분으로 교복 입고 혼자 구경하고 다니던 나는 캐나다에 와서 첫 집을 산 후로는 주말이면 오픈하우스에 구경 가고, 프리세일 세일즈센터에 가서 예쁘게 꾸며진 공간을 보는 일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심심하면 IKEA에 가서
디스플레이된 공간을 구경하면 세상 행복할 수가 없었고, 그러다 예쁘고 저렴한 소품을 하나 발견하면 꼭 보물을 찾은 애처럼 기뻐서 펄쩍펄쩍 뛰곤 했었다.
이렇게 집 자체를 사랑하고, 그 공간을 구상하여 꾸며내는 일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행복을 일찍 깨달았기에 지금의 홈스테이져가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