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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피는 Dec 01. 2020

병원과 조리원 사이, 머나먼 하루


"아직도 퇴원 안 하셨어요?"


출산  3시간 만에 퇴원하게 해달라고 징징댄 나의 요청대로 다음날 오전, 퇴원 허락이 떨어졌다. 분만병원과 조리원이 연계되어 있지 않아, 조리원 연계 병원 소아과에서 검사를 받아야만 조리원 입소가 가능한 상황.  그런데 말이다, 나의 퇴원일은 연계 소아과가 운영하지 않는 토요일이다. 결국 출산 하루 만에 서둘러 퇴원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리 하기 위해 조리원을 가는데, 조리원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한 퇴원을 하는,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상황.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퇴원을 허락받아놓고,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은땀까지 흘려대면서 말이다. 출산 직후 젖이 바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초보인 우리 부부는 몰랐다.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얘기는 퇴원  조리원 입소하기까지 아기가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젖병준비해놓기는 했는데 세척  소독을 해놓지 않았다. 분유를 미리 구매해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했었고. 모유수유에 바로 성공할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병원과 집이 5분 거리였기에 남편은 급히 집으로 달려가 젖병을 가져왔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 요원했다. 이번엔 세척과 소독이 문제였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탕비실에서 젖병을 세제로 씻어 병원에서 사용하는 초음파 소독기에 젖병 소독을 부탁드렸다. 병원에서는 넉넉하게 분유도 두병이나 타서 챙겨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병실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충분히 저런 질문이 나올법한 상황이었다.


개인병원과 달리 대학병원은 아기가 입고 있던 병원 배냇저고리를 선물로 주지 않기에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혀야만 했다. 처음이다 보니 배냇저고리 입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입혔는데, 이건 입은 것도 벗은 것도 아닌 상태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갈  있을 만큼 옷매무새를 고친다고 꾸물대고 있으니 아마도 퍽이나 딱하게 겼을 것도 같다.


  



결국 11시에 퇴원 허가를 받았지만, 실제로 병원을 나선 것은 12 30분이 넘어서였다. 조리원 연계병원 점심시간이 겹쳐, 예약된 진료시간은 오후 2.  사이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활용해야만 했다.


일단 집에 들러, 두껍고 존재감 강한 산모패드를 생리대로 교환한 후 5분 거리의 시댁에 넘어가서 시부모님께 아기를 보여드렸다. 두 분은 나를 보자 (정확히는 아기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셨다. 그 바람에 나까지도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여든을 목전에 둔 아버님과 일흔 중반의 어머님,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그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보는 손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어머님께서는 꽃다발을, 아버님께서는 아기의 이름이 써진 금일봉을 주셨다. 그 와중에도 태어난 지 갓 24시간을 넘긴 아기는 바구니 카시트에 담겨 정신없이 잠만 잔다.


헤드 보호용으로 기저귀를 써보려다 포기한 흔적이 담긴 사진


두 어르신께서는 차마 아기 한 번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시고 손발만 살짝 만져보실 정도로 조심스러우셨다. 일정이 워낙 빡빡한 관계로 총알같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급히 병원으로 이동했다.


1시 30분, 이번엔 친정엄마와 병원 대기실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 대신에 근처 대도시 조리원을 선택하는 바람에 더욱 분주해야만 했다. 실제 거리로는 가까워도 시경계를 넘어가는 일이니 말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얼마나 일찍 집에서 나섰는지, 한 시간 이상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일단 소아과에 접수를 하고, 채혈실과 검사실에서 아기 응가와 콧속 분비물을 채취했다. 변을 본 기저귀를 가지고 오면 검사가 수월하다고 안내를 받았는데, 이 녀석이 응가를 하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덕분에 아기는 생후 31시간 만에 직장과 콧구멍을 면봉으로 쑤셔지는 수모(?)를 겪었다. 담당 직원은 아기의 변을 보더니 몹시 당황했다. 태어난 지 만 하루 된 아기라서 태변이라고 대답하니 더 당황해하셨다. 아기가 출생 후 만 하루 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엄마인 내가 어제 출산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출산 후 하루 만에 이렇게 외출해도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뭐, 어쩌겠습니까. 님네 병원과 조리원 시스템이 막 출산한 우리를 이렇게 길바닥에 나서게 만들었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짜증 낼 번지수는 이 곳이 아니라서 그냥 웃음으로 넘어갔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기는 변을 봤고, 배고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아기 먹을 분유, 기저귀 등이  가방까지도  안에   주차타워에 주차를 하고 내린 초보 엄빠.   기저귀를 싸맨  배고픈 아기가 울고 있는 시각, 초보 아빠는 주차타워의 차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 다행히 아기는 약간의 황달기를 제외하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듣고, 조리원 입소를 허락받을  있었다.


여름 뙤약볕 아래, 주차된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던 영감님이 이 더운 날씨에 애를 데리고 나와서 고생을 시키냐는 훈수를 두었다. 어제 출산하고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갓난쟁이를 데리고 나와 길바닥에 서 있는 것도 힘든데, 킬킬킬. K-훈수라는 게 그렇지요. 불필요한 관심 사양하겠습니다, 영감님.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아직도 조리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거 진짜?






조리원의 첫날밤, 지옥 같은 모자동실 24시간



내가 사는 소도시의 유명한 조리원들은 병원과의 연계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지 않았다. 좋은 후기를 쓴다는 서약서(?)까지 받고 퇴원 선물을 주는 등의 좋지 않은 이야기도 많이 들렸고. 시 경계를 넘어 인근 대도시 조리원을 염두에 둔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아래의 열 가지 이유로 임신 13주 차에 이미 예약해 둔 조리원이었는데, 그랬던 만큼 연계 병원 아닌 곳에서 출산한 산모들에게 안전상의 이유로 깐깐하게 구는 것도, 불편하긴 하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계약을 할 그 당시에는 말이다.



1. (산부인과 쪽으로 유명한) 준종합병원 부속 조리원이기에 부인과와 소아과의 연계 의료서비스를 믿을  있다.

2. 조리원 근무 직원분들의 대다수가 전문 조산사와 간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경력도 많은 숙련된 인력이다.

3. 신생아 케어가 철저하며, 단순한 돌봄 서비스 제공만이 아니라 모유 수유  신생아 케어를 산모에게도 철저하게 교육시켜준다.

4. (주변 유명 병원과 조리원에 비해 낙후된 시설이 그간 단점이었으나,) 최근 신축 건물로 옮겨 시설  설비도 훌륭하다. (특히, 신축 건물 1층에 침대 대리점이 있어,)  룸의 매트리스가  등급과 상관없이 해당 브랜드 침구 최고급 라인이라고 한다.

5. 밥이 맛있다.  년이 지나도 집에서 설거지하면서 조리원에서 먹은 밥맛이 생각날 정도로 밥이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6. 직원들이 모두 친절하고 자상하고 배려를 잘해준다는 소문도 자자하다.

7. 비용도 지역의 다른 곳에 비해 20% 이상 저렴하다.

8. 집과 남편 직장에서의 위치도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9. 남편을 제외한 외부인 출입/면회 금지다.

10. 후기와 평판이 아주 좋다.


이 조리원은 코로나가 없던 시절에도 남편만 출입이 가능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만연한 지금에는 남편조차도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덕분에 조리원 3주를 예약한 집의 경우 아기 아빠는 신생아 시절을 모두 조리원에서 보낸 아기를 만나게 되는 웃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계약 당시에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외 출입금지 규정은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 결코 장점이 아니었다.


조리원 연계 병원에서 출산하지 않은 나는, 연계 병원 소아과에서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아야만 입소가 가능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 24시간 아기와 내가 조리원의 캐어 하에서 이상 없다는 추가 검증까지 끝내야만 신생아실에 합류할 수 있었다. 결국 출산한 이튿날 밤을 나 혼자서 아기를 보살피며 보내야만 했다. 46세 초산 산모. 새벽에 출산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병원에서 하루 만에 퇴원한 상태. 새벽 내내 아기가 기저귀 때문에 운다는 사실을 몰라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상태. 그런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는 가차없는 규정 때문에 다시 한번 기나긴 밤이 내게 찾아왔다.  


조리원측에서는, 일반실을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틀을 특실에 배정해주는 방식으로 약간의 성의를 보여주긴 했다. 특실은 신생아실 바로 맞은편 방인데, 식당과 모유수유실과 같은 층이라서 다른 층에서 오가는 불편함이 없고, 도움 요청시 즉각적인 지원을 받을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해당 조리원에는 특실이 여러  있었는데, 신생아실과 같은 층에 있는 특실은   . 이런 장점 때문에 다른 특실들보다도  비싼 방이었다. 그런 방을 챙겨준 것이다.


이 특실 배정으로 인해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고는 조리원 측도, 나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임시로 배정받은 방은, 구조상 어른 침대 옆에 아기 트롤리를 놔둘 수가 없었다. 원래 조리원 룸이라는 것이, 24시간 모자동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지 않은가. 보통의 경우는 하루 2시간 남짓 머물렀다가 다시 신생아실로 가기 마련이니. 성의없이 배치된  방의 가구 배치에서 아기 침대의 위치는 에어컨 바람과 강한 방의 조명이 닿는 곳이었다. 나는 트롤리에서 아기 바구니를 통째로 들어 올려 침대 옆자리에 눕혀야만 했다.



경험이 없던 나는 아기 기저귀 갈기와 수유를 침대 위에서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4킬로 이상인 아기 바구니를 트롤리 위에 올렸다가, 다시 어른 침대로 옮겼다가, 또 트롤리로 가져갔다가, 다시 침대 위로 올리기를 수회 반복하며 밤을 보냈다.  육아하시는 분들이 "손목이 너덜너덜해진다"라고 말하던 게 무엇인지를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이동한 일반실은 침대 바로 옆에 아기 침대를 위치시킬 수 있고, 에어컨 바람도 직접 닿지 않는 위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찌나 허탈하던지...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전화기까지 고장이었다. 결국 분유를 요청할 때마다 바로 앞방이긴 하지만, 아기 혼자 방에 두고 마스크 끼고 신생아실까지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바뀐 환경 탓인지, 엄마의 능력치 미달 때문인지, 아기는 1시간 간격으로 울어댔다. 병원에서는 신생아 수유 텀은 2시간이라고 하던데 말이다. 병원 퇴원 전 마지막으로 먹인 분유가 겨우 25밀리였는데, 조리원에서 처음으로 받은 젖병에는 60밀리의 분유가 담겨 있었다. 이 곳 아기들은 모두 4~5일에서 일주일 이상을 더 자란 아기들이다 보니 먹는 양도 더 많은 것이 당연했다. 생후 2일째 조리원에 입소한 내 딸아이는 아마도 조리원 최연소 아기였지 않았을까.


미숙한 나의 능력으로는 40밀리도 채 먹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1시간 정도 지나면 다시 배고프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수유 텀이 1시간이라는 것은 한숨도 잘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1시간 간격으로 분유 먹이기 10분, 트림 20분, 아기 재우고 쪽잠 자기 20여분을 보내면 다시 울어대며 동일한 과정이 반복된다. 아기가 울면 일어나서 기저귀를 확인하고, 아니면 마스크 끼고 신생아실로 가서 분유 더 달라고 요청하고, 기다린 후 젖병 받아서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고, 또 쪽잠... 이렇게 밤을 보내다 보니, 정말 이 밤이 끝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연 밤이 끝나기나 하는 것일까.  조금 과장하면, 출산하던 그날 밤 보다 이 밤이 더 힘들었다.




그렇게 오지 않을  같은 아침이 드디어 왔다. 반쯤 기절한 상태에서 왔다. 조리원 실장님과 신생아실 담당자분이 침대에 쓰러져 있는 나를 놔두고,  "//" 아이를 신생아실로 데리고 가는데, 도저히 일어나서 배웅을  수가 없었다. 안도와 해방감, 아쉬운 마음은 정말 손톱만큼도 없는 상태로 아이를 보냈는데, 갑자기  그렇게 누워서 보낸  새끼가 보고 싶어져서 눈물이  쏟아졌다.  코미디 같은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호르몬이 사람을 이렇게 우습게 만드는구나' 이성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고 소리내 울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는 기분, 그래도 어쩌겠는가. 1 전에 헤어진  새끼가 애틋하고,  그래서 눈물이 나는  말이다.


그렇게 아기는 신생아실로 갔고, 출산 후 대학병원에서부터 시작했던 48시간의 모자동실이 마침내 끝났다.



46세에 엄마가 된다는 것



정말로 많은 일이 일어났던, 길고도 쉽지 않았던 48시간.


이 48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예비맘에서 초보 육아맘으로 가까스로 전직을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은 엄청나게 달라졌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라질 것이다. 여전히 내 새끼에 대한 애틋함보다는 눈앞에 닥친 미션을 완수한다는 느낌으로 하나하나 해야 할 일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하다. 그러다 보면 24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이러다가 금방 할머니 되겠구나, 그런 생각마저 드는 매일매일.


물론,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정말로 순하고 돌보기 쉬운 아기다. 신생아 주제에 집에 온 첫날부터 5시간 통잠을 내리자더니, 50일부터는 8시간, 60일부터는 11시간을 잔다.  분유고 젖꼭지고 주면 주는 대로 넙죽넙죽 가리지 않고 잘 받아 먹는다. 조리원에서조차 먹성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3개월인 현재 키 상위 3%, 몸무게 상위 1%로 6개월 아기 평균 사이즈가 되어버렸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아기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를 다 하고 있는 아이이다.


모두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46세 초산 임산부의 출산. 너무나 수월하고 순탄하고 쉬워서, 사실은 지금도 얼떨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그렇다.


남자들의 삶을 단순화시키고 깎아내릴 때 "인생 최고의 업적이 군대인 사람"이라는 표현을 흔히들 사용한다. 이 표현의 여성 버전은 "결혼하고 애 낳은게 벼슬인 사람"이다.



그런데, 겪어 보니 나는, 내가 "마침내" "드디어" 출산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퍽이나 자랑스러웠다. 인생에 있어서 무언가 커다란 성취이자 업적을 달성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시험관 시술을 통하여 힘들게 임신을 하고, 비교적 짧은시간 산통  정상분만으로 어렵지 않게 낳았지만, 그렇기에  자랑스럽고 자신감이 생긴다고나 할까.


출산  처음 한달간은 아드레날린 과잉분비로 내내 뿌듯하고 둥둥 떠서 지냈던  같다. 사실 모성애는 만들어진 신화이자 강요라고 생각하고, 아직도 아이가 낯설게만 여겨지고 그렇다. 애틋한지 아닌지 갸웃갸웃하기도 하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그래도 당연히  새끼인 만큼 쳐다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모르는 희한한 경험을 매일 하게 된다. 울면 속상하고, 한밤중에 "~"라고 울기 시작할 , "~"이라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벌떡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나중에는 울기 ,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할 ,   일어나서 아기를 살펴보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여전히 젖병의 분유를 깨끗하게  먹이는 것도 힘들고, 트림시키는   힘들고,  물리고 유축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낯설고 힘들기는 하다. 그래도  아이를 길러내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좀더 자라난다는 것을 느끼는 매일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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