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구룡반도에서 장국영 찾기 - 몽콕
늦은 오후에 도착해 알찬 반나절을 보낸 첫날을 뒤로하고, 금방 잠에 드니 어느새 둘째 날이 밝아왔다.
온전한 홍콩을 온몸으로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이 된 것이다! 꽤나 피곤했지만, 그건 나에게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부터 생각해 놓은 코디 착장으로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아침부터 서두른 이유는 바로 오리지널 홍콩 아침풍경을 느낄 수 있는 차찬탱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는데, 이유의 이유라고 할까. 아침을 먹어 속을 든든하게 채워야 했던 이유는 역시 오늘도 장국영의 흔적을 찾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속이 든든해야 두 다리도 튼튼하게 버틸 수 있을 테니.
언젠가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한국에서 하루에 두 끼도 먹을까 말까 한데, 여행을 하러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전날 몇 시에 자든 상관없이 이른 아침 일어나 조식을 챙겨 먹고, 하루 3끼 아니 어쩔 때는 5끼를 먹는 일이 허다하다고. 또 웃긴 건 아침에 조식 식당에는 본인일행을 포함한 한국인들이 대다수일 때가 많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친구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아침밥보다는 아침잠을 선택한 나는 학창 시절에도 하루에 2끼를 먹는 것이 나에게는 디폴트 값이었다. 그래서 가끔 병원을 방문하여 약을 처방받을 때, '하루 3번 식후 후에 드세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아.. 내일부터 3일간은 일찍 일어나는 시련이 펼쳐지겠구나..'라는 웃픈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홍콩의 아침 풍경들을 구경하며, 또 아침메뉴와 함께 마실 홍콩 하면 떠오르는 빨간 염소 잔에 담긴 따뜻한 밀크티를 상상하며 빠르게 침사추이의 거리로 나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코너를 도니 어느새 오늘 나의 첫 끼를 책임져 줄 Kowloon Restaurant이 눈에 들어왔다.
수시로 구워져 나와 빈틈없이 채워지는 다양한 종류의 빵들과, 이미 매장을 가득 채운 손님들의 모습을 보니 혹여나 했던 음식에 대한 걱정은 집어넣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 좋게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Kowloon Restaurant의 특징 중 하나는 메뉴가 정말 많다는 것인데, 토스트부터 마카로니 수프, 라면 종류까지 다양하여 취향껏 고르면 된다. 더하여 모든 메뉴 밑에 영어표기까지 해주니, 외국인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다. 매장 앞에서 많은 사람들을 홀린 빵을 먹을지, 홍콩 차찬탱 하면 떠오르는 연유 토스트를 먹을지 고민하다 가장 무난할 것 같은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비프 앤 누들'과 함께 빼먹지 않고, 따뜻한 밀크티를 시켰다.
회전율이 빠른 차찬탱답게 곧바로 메뉴가 나왔는데, 내가 가장 기대했던 귀여운 염소 잔에 담긴 밀크티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 곧바로 '고기와 면'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을 가졌었던 메인 메뉴는 역시 생각했던 그대로였는데, 라면사리 위에 돼지갈비 같은 고기가 올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추가금액을 지불하여 시켰던 계란프라이도 그 위에 턱 하니 얹어져서 나왔다.
제대로 된 밀크티는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긴장하며, 작은 염소잔을 기울였다. 물론 맛이 좋아, 금방 그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지만 말이다. 메인메뉴는 그냥 먹을 만했었는데, 다른 손님들을 보니 마카오식 돼지고기 번이나 마카로니 수프를 먹는 분들도 계셔서 다음번에 다시 방문한다면, 돼지고기 번을 먹어보려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인 몽콕을 가기 전, 박물관/미술관 러버인 나는 홍콩역사박물관에 잠시 들렀다가 가기로 했는데 박물관 역시 식당에서 매우 가까워 든든하게 채운 배를 살짝 가볍게 만들어 주기 좋았다.
홍콩역사박물관에서 몽콕 카두리 애비뉴 32A까지는 걸어서는 40분 정도, MTR과 버스는 약 25분 정도 걸렸는데 나는 홍콩의 또 다른 명물인 2층버스를 타고 몽콕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최근에 수도권에 잠깐 거주할 일이 생겨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 익숙해진 2층버스지만 저 당시에는 2층버스는 내게 신기한 존재였기에 많은 선택지 중 빠르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나의 루틑는 [7번 버스를 타고 VICTORY AVENUE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
장국영이 살았던 몽콕 카두리 애비뉴 32A는 엄청난 부촌으로 유명한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그였기에 그가 여기에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더하여 부촌이라 그런지 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데, 그들은 주로 자동차로 이동했을 테니 언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가 살았던 곳, 그가 걸었던 장소를 내가 간다고 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느새 도착한 VICTORY AVENUE 정류장에서 내려 신호등 하나를 건너고, 또 그의 집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물론 많은 생각과 함께.
한 5분 정도 걸었으려나, 눈앞에 보이는 언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으니 금세 바뀐 신호등은 나에게 얼른 언덕 위로 올라가라며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장국영의 옛날 집은 꽤나 안쪽에 위치하여 있었기에 몇 개의 건물들과 주택들을 지나가야 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집값으로 일명 '닭장 집'이라고 불릴 만큼 높고 빼곡한 전형적인 홍콩 건물이 아닌, 평창동에서나 볼 법한 큰 주택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만들어져 있었다. 또 언덕하나 올라왔을 뿐인데,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오피스텔 같은 건물을 지키는 경비원 한 두 분과 주민 한 두 명만 볼 수 있었다. 참 여유롭다. 그저 언덕하나만 올라왔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드디어 도착한 장국영이 생전 거주했던 몽콕 카두리 애비뉴 32A가 있는 곳에 찾아왔다. 프라이빗 로드라고 적힌 표지판을 시작으로 여러 집이 마치 줄을 서있듯 주르륵 위치하여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장국영의 집은 끝쪽에 위치하여 있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묻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그곳을 왜 가는 거야?'
물론 장국영이 세상을 떠나 이젠 그가 거주하지도 않고, 연인 당학덕이 이 집을 팔아버려 이젠 장국영과는 연관 없는 다른 이가 살고 있을 집이었지만. 그를 만나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이 생에서는 만날 일이 없을 나이지만. 내가 그곳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제는 정말 희미해진 그의 흔적을 홍콩에서 조금이라도 찾고 싶기 때문이었다.
유진작가님는 아쉬운 마음에 메모지에 글을 써 문틈 사이에 끼워놓고 나왔다고 책에서 말하셨는데, 나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집에 메모지를 놓고 가기보단, 내 전공을 살려 내가 쓴 그 글을 노래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프라이빗로드 끝에서 하염없이 그의 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었다.
'일을 마치고, 저 문을 열고 그가 웃으며 집에 들어갔을 텐데'
'저 집에서 TV를 보며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을 거야'
'저 창문을 열며 집안을 환기를 시키고, 아침마다 상쾌한 공기를 마셨겠지?'
"... 어?? 창문 열렸다!"
한 5분 정도 수많은 생각에 잠겨있었을까? 갑자기 2층의 창문이 열렸다.
물론 장국영이 창문을 연 것도 아니고, 그 집에 사는 가정부 혹은 현재 집주인이 창문을 열었겠지만 그냥 왜인지 마음이 뜨거워졌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저 창문을 열었을 장국영을 상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올라왔던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어느새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사람들과 커지는 소리/소음들. 하지만, 그때 내 귀에는 소리도 소음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으니.
떠난 지 21년이 지나고 올해 4월 1일 그의 22주기가 다가온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 속에 남아있는 장국영인데,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을 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상상으로나마 해본다. 아, 아무래도 2001년생인 LesliE 마음속에 장국영이 평생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