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장국영에 대한 기억은 언제부터 였을까
홍콩이라는 봄비가 나를 꽤나 적셨을 시기인 2020년 1월 말,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스스로에게 졸업선물로 ‘혼자 떠나는 대만여행’을 선사하였는데, 매일 매일 방문할 장소를 찾느라 밤잠을 설쳤었다.
'대만에 가면, 지우펀도 가보고! 아 온천도 가봐야지! 나는 우라이온천으로!"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근 2~3년간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코로나가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깨닫지 못했다.
왜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데, 첫 여행지가 대만이었냐고 묻는다면 혼자서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안전을 최우선을 두었고 대만과 일본 중 대만을 택했다.(중학교 때, 진로선생님이 보여준 '그 시절,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영향이 있었다고 독자들에게만 몰래 밝히는 바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기도한 지우펀에서 1박을 하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홍콩을 가보고싶다!라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다. 허나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우리를, 아니 전세계를 뒤덮었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의 시작
사실 내 여행이 계획 되어있던 2월까지는 국경봉쇄가 시작되지 않았다. 내 주변에도 가족여행으로 유럽을 다녀온 친구도 있을 정도였으니까.(모두 알고있듯, 이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부모님과 이모들의 걱정과 반대로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모든 것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단, 한 줄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정말 고생했다. 아직 코로나의 심각성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터라 항공사는 수수료를 물고 취소해야했고 숙소는 학창시절 12년 열심히 배운 스킬로 외국인 직원과 통화해가며 간신히 모든 금액을 환불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생생해 떠오른다. 이메일을 불러달라고 말하는 데 @를 영어로 할 줄 몰라 심장이 떨리던 순간을
‘I’m fine thank you. And you?
그리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학교 측에서 비대면 수업으로 전면 변경한다는 이이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코로나 이전에 찍어 놓은 영상으로 수업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럼 등록금도 깎아주시나요? 제대로 된 학교 생활을 즐길 수도 없는데 지금 대학교를 진학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미 대학교 원서는 접수한 상태였고, 수능도 열심히 잘 보고 나왔다. 아, 문제의 생김새를 꼼꼼하게 잘 보았다는 뜻이니 오해없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꽤나 큰 결심을 했다. 오프라인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들을 누리지 못한 채 코로나 전과 같은 등록금을 지불하고 싶진 않았다. 부모님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는 뜻이다. 2020년도 초 자칭 효녀 레슬리는 아빠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선택을 하고 만다.
'아빠! 나 대학교 진학을 미뤄야할 것 같아'
물론 아빠의 대학 진학을 권하셨다. ‘대학을 가야하는 101가지의 주장(약간의 과장이 포함되어있으니 오해없으시길 바란다. 우리 아빠 착하다)’에 맞서며,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아빠를 설득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을 공들였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온라인 수업이라도 먼저 대학교를 간 친구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친구들은 일어나 비몽사몽 방한켠에서 출석체크를 위해 노트북을 켜고 교수님과 랜선 동기들을 만날 때, 나는 내 방 한켠에서 책들을 펴 수많은 위인,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때 내 심장을 뛰게한 한 책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바로 스타벅스 창업자이자 전 CEO인 하워드 슐처의 "온워드(Onward)"였다. 그의 경영철학과 스타벅스의 가치관, 세계적인 기업의(신세계 주인이 되기 전이었다) 방법들을 글로 읽고나니 열정이 끓어올라 그들의 모든 것을 내 몸으로 직접 경험하여 배우고 싶었다.
여기서 잠깐, 장국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냐 왜 갑자기 하워드 슐처이야기를 하는 건데?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허나 나의 이름이 레슬리가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빌드업이 필요하니, 또 나의 인생의 꽤나 중요한 서사이니 조금만 참아주길 바라며.. 독자들에게 양해 구한다.
차근히 지원메일을 넣었고, 면접에서도 하워드 슐처의 자서전을 읽고 영감을 받아서 지원했다는 내용을 어필한 결과... 결과는 합격. 2021년 3월 2일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출근한 첫 날 나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스타벅스 에서 불릴 이름 정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름을 정하는 게 어려워 점장님에게 몇가지 후보를 추천받기도 한다던데,
나는 바로 머릿 속에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레슬리(LesliE)"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레슬리는 장국영의 영어이름이다. 추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전국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 레슬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나 하나였다는 것을 알고 왜인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떄까지도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홍콩영화에 관심을 가졌었기에 여명, 양조위, 유가령, 장만옥 등 많은 배우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름을 정할 때, 딱 떠오른 게 레슬리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의식 속에 나는 이미 장국영에게 미쳐있었을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장국영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확실히 내가 스스로에게 레슬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 후 부터, 장국영에 대한 내 관심도와 애정이 급등하는 주식처럼 급격하게 상승했으니까. 만약 내가 그때 Leslie가 아니라 Tony(양조위의 영어이름)나 Maggie(장만옥의 영어이름)로 지었다면 나의 애정의 대상은 달라졌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이 마이네임 이스 레슬리, 와츄얼 네임?’
P.S 홍콩영화 덕후라면 누구나 알 법한 공간, 샤로수길의 아비정전. 곳에는 왕가위 홍콩영화의 무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식당이 있었다. 화양연화 속 레스토랑 신의 배경이었던 ‘골든 핀치 레스토랑’을 떠올리게 하는, 홍콩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폐업하기 전, 한 번 더 찾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많이 아쉽다. 언젠가… 내가 차려볼까. 미리 예약 주문 받습니다^^